상진이의 등.

by 시안

형니임. 나 술 한잔 주소오.


한참 대낮인데

아저씨는 새벽부터 술을 마셨나보다.

벌써부터 거나하게 취해있는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우리 집 마당에 들어섰다.


형니이임.

나 술 한잔 주소오.


아저씨가 술이 떡이 된 채

우리 집을 찾아와

저런 소릴 하는 걸 보니

또 명절이 다가온 모양이지.


구정이나 추석이나

명절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면

아저씨는 꼭 저렇게 술에 취한 채

우리 집 마당에 들어와

평상 위에 풀썩 앉았다.


아저씨가 명절 때마다

형님. 나 술 한잔 주소오. 하고 나타나면

우리 아버지는

아이고, 이 사람아.

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먹었어?라고 말했다.


우리 아버지와 엄마는

그 아저씨가 술에 취해

큰소리로 울거나

막무가내 고집을 피우며 주사를 부려도

화를 내거나 쫓아내거나 하지 않았다.

내 기억으론 단 한 번도 없다.


아저씨는 신세한탄을 하다가

평상 위에 대자로 누워 잠이 들곤 했다.

날이 추울 땐

아버지는 잠든 아저씨를 등에 업고서

아저씨 집으로 데려다주었고

추석 때처럼 춥지 않을 땐

잠든 아저씨 배 위에 아버지 잠바를 덮어주었다.


아저씨는 내 단짝 친구 아버지였다.

어릴 적부터 쭈욱 한동네에서 자란

내 유년시절 단짝 친구,

이건 상진이 얘기다.

상진이는 우리 옆집의 옆집에 살았다.


왜 상진이 아빠는 명절만 다가오면

저렇게 술을 마시는 걸까.

나는 궁금했지만

엄마나 아버지에게 물어본 적은 다.


그때 비록 내가 어린 나이긴 했지만

어른들이 말해주지 않아도 그건 알았다.

명절이 올 때마다

상진이 아빠가 정말 괴로워한다는 걸.


상진이는 할아버지 집에서 아빠랑 살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아빠. 그리고 누나.

4살 적 내 기억에도

상진이는 엄마가 없었다.

원래부터 엄마가 없는 친구였다.


한해 한해

구정과 추석, 두 번의 명절을 거쳐가며

나와 상진이도 한 살씩 자랐다.


우리가 국민학교 2학년쯤 되었을 때였던가.

집집마다 고소한 전 부치는 냄새가 담장을 넘어올 때

그날 상진이는 우리 동네에 있던

중학교 운동장 플라타너스 나무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 혼자 울고 있었다.


상진이는 몸을 앞으로 말고

두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은 채

조그만 등을 들썩이며 울었다.


상진이는 마음껏 울기 위해서

할아버지 집을 나와

학교 운동장 나무 밑에서

울고 있는 것 같았다.


학교 운동장은 우리 집 바로 뒤에 있었다.

나는 우리 집 담 밑에서 학교 쪽을 바라보다가

울고 있는 상진이를 보게 된 거다.


어.

상진이 운다.

나는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상진이 할아버지는 지역 유지였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어르신이었다.

할아버지 머리는 2대 8 가르마로 빗어

포마드를 발라 흔들림 없이 앞머리를 고정을 했고

옷차림은 늘 품위 있고 격식을 갖춘 모양새였다.


상진이가 살던 할아버지 집은

어린 우리들에게 훌륭한 놀이터였다.


수백 년 동안

집안 대대로 관리되어 내려오는

훌륭한 한옥 본채와

본채에서 몇 걸음 걸어 내려앉은

앞마당엔 커다란 사랑채가 본채와 11자로 나란했다.


본채와 사랑채 사이엔

금잔디가 곱게 깔린 잔디마당이 있었고

마당 한편엔 붉고 검은 잉어들이 헤엄치는

자그마한 연못이 있었다.


부지런한 손길로 반들거리는 본채의 마루와

여러 칸의 방들.

비단처럼 고운 잔디 마당과 연못.

포마드냄새가 배어있던

사랑채 할아버지 서재방과

할아버지가 받은 감사패가 즐비했던 사랑채 방들을

돌아다니며 우린 놀았다.


상진이 아빠는 그런 우리에게

아주 좋은 놀이 친구였다.

술에 취해 있지 않을 땐 말이다.

아저씨는 우리랑 보내는 시간을 좋아했다.


상진이 아빠를 생각하면

박제해 놓은 족제비가 생각난다.


그건 상진이 아빠 방안 문틀 위에 놓여있었다.

밝은 갈색의 뻣뻣한 털과

기다란 꼬리

얄상하게 생긴 족제비 얼굴과

반들거리던 플라스틱 벌건 눈.

그 족제비가 살아있는 것 같아서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모른다.


상진이 아빠는

내가 족제비를 무서워하는 게 재밌었던지

언젠가는 박제된 족제비를 내려

내 얼굴 앞에 다 들이밀며

웍!!!!! 하며 놀라게 했다.


그날 내가 얼마나 놀랐던지

나는 벌러덩 뒤로 주저앉아서

아주 큰소리로 울었다.


상진이 아빠는 집안의 장남이었다.

공부를 정말 잘해서

그 시절에 초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아주 수재였다고 들었다.

상진이 엄마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상진이는 엄마와 아주 일찍 헤어졌다.

우리 엄마말을 빌리자면,

상진이가 아주 애기 때 헤어졌다했다.


집안의 자랑이던 장남,

상진이 아빠는 상진이 엄마랑 헤어지고 나서

어느 때부턴가

집안에 틀어박혀서 술을 마시더니

점점 폐인이 되어갔다고 했다.


상진이 아빠 방안에는

아주 두껍고 딱 보기에도 읽기 어려운

전공서적들이 늘어선 탑들처럼 쌓여있었다.

아저씨 방안에는 책상과 몸 누윌 공간을 빼고는

온통 책들이 빼곡했고 바닥에서 뒹굴었다.


상진이 엄마가 떠나버려서 아저씨가 슬픈걸까?

젊고 수재이던 아저씨를

철저하게 좌절하게 만든

무엇때문이었을까.

아저씨는 왜 세상으로부터 도망쳤을까.


상진이 할아버지 집을 찾아오는

상진이 삼촌들(작은 아빠들)은

딱 봐도 외양이 번들거리고

사회에서 한가닥씩 하는 사람들 같았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상진이네는 상진이 아빠를 빼고

모두 다 성공한 자식들 같았다.


나도 세상 눈치쯤 알아차릴 나이가 되어

명절마다 상진이의 작은 아빠들이 타고 온

반짝거리는 차들과

상진이 할아버지집에서 새어나오는

왁자지껄한 그집 식구들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미리 걱정했다.

상진이 아빠와 내 친구 상진이를.


상진이는 영리하고 착해서

늘 1등을 차지하는 모범생이었다.

나이에 비해 철이 일찍 들어서

점잖고 겸손했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상진이를 칭찬했다.


동네 내 단짝 친구들은

함께 자라면서

각자 부모로부터

상진이와 비교당하며 혼난 적이 많았다.

상진이가 얼마나 착한 아이인지,

우린 얼마나 한심한지를.


그런데도 신기한 게,

나는 그런 비교를 당하면서도

한 번도 상진이가 밉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건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상진이 누나가 일본으로 간다고 했다.

언니는 이제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며

엄마랑 같이 살 꺼라고 했다.

상진이 엄마가 일본에 계신다는건 처음 알았다.


상진아. 너는 안 가?

너도 일본 가서 살지. 왜.

상진이가 짧게 답했다.


그럼 아빠가 혼자 남잖아.

누나가 엄마랑 살면

나는 아빠랑 살아야

아빠한테 의리가 있는 거지.

그렇게 상진이는 아빠 곁에 남았다.


우리가 대학 입시를 마치고

마음이 홀가분해졌을 때

오랜만에 단짝 친구들이 다시 모였다.

상진이 할아버지 사랑채 서재방이었다.


이제 우리는 덩치들이 커져서

그런 우리에게 사랑채 방은 아주 작았다.

복닥복닥 어깨를 붙이고

큰 이불 하나를 덥고서 모여 앉았다.


이런저런 싱거운 농담과

가벼운 웃음과 왁자지껄한 대화가 오갈 때쯤,

상진이가 말했다.


나.

우리 아빠랑 같이 죽으려고 했다?


뭐?

우린 놀라서 그렇게 물었다.

언제!


작년 구정 때.

아빠가 또 술에 취해서 인사불성되었는데

그날은 정말 너무 화가 나더라.

참을 수가 없었어.

아빠한테 소리를 질렀다.

아빠 정신 좀 차려봐!

계속 이렇게 살 거면

차라리 나랑 같이 죽자.

그날이 아마 내가 처음으로 아빠한테 화낸 날일걸?

아빠가 흙투성이가 된 채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거든.


아빠를 등에 업고 무작정 걸었다.

그날 밤에 아빠를 업고 내가 어디로 갔는 줄 알아?

동네 옆 저수지로 갔다.

아빠.

차라리 나랑 같이

저 저수지에 빠져 죽자.

나도 더이상 이렇게 살기 싫어.

그런데 아빠가 그러더라.

상진아.

춥다. 집에 가자.

아빠.

우리 집이 어딨어!

그 집이 우리 집이야?

거긴 우리 집이 아니라 할아버지 집이잖아.

우리 집이 어딨어?

우리 집이 어딨냐고!

아빠랑 나는 집도 없어. 우린 집도 없다고.


그 뒤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갔던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평소 입이 무겁고 감정을 감추고 살던 상진이가

그날 단짝 친구들 앞에 툭 던져놓은

그 말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슬펐던지.


상진이 얘기를 들으며

슬쩍슬쩍 눈물을 닦고

울지 않은 척 애쓴 기억만 난다.


상진이와 아저씨가 그날 어떻게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했는지.

저수지 둑에 둘이 등을 대고 누워

밤새 울었다 했던가.

싸웠다했던가.


상진이와 아저씨는

저수지에 빠져 죽지 않고 돌아왔다.

상진이는 돌아오는 길에도

술 취한 아버지를 등에 업고 걸었으리라.


티비에서 귀향길 소식이 전해지는 뉴스를 볼때면

나는 항상 상진이와 술 취한 아저씨가 생각났었다.

그리고 가끔

술 취한 아버지를 업고

저수지를 향해 죽으러 가는

고등학생 상진이의 여린 등이 떠오른다.


그건 시간이 흘렀다고 그냥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 상진이는

그때 상진이 등에 업혀있던

상진이 아빠보다 훨씬 더 나이 들어 있겠다.


행복하니?

꼭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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