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내 친구 서영이 차가 어김없이 마장으로 들어섰다.
시간도 정확했다.
걔는 늦거나 너무 이르지도 않게 딱 7시면 나타났다.
매일 아침 친구가 나타나서 하는 말은
늘 이랬다.
친구야아. 일어나. 돈벌어야지.
더위가 가시자마자
친구는 아침 운동을 하자며 날 볶아댔다.
말똥 삽질과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수천수만 가지의 마장 일을 거들다 보면
체력은 바닥났고
시간만 되면 눕고만 싶어졌다.
마장 일에 치이다 보면
내가 말 타며 운동할 시간은
짬도 나지 않을뿐더러
말을 타고 싶은 생각은
개똥만큼도 들지 않았다.
하루 종일 회원들에게 승마 수업을 하고
마장 곳곳에 쌓인
말똥 산맥을 치우느라
하루 종일 삽질을 하다 보면
말을 탈 체력도 마음도 생기지 않는 거다.
내 체력은 말똥 삽질에 모두 소진되었다.
내가 체력이 달려서 축 처져있을 때마다
내 친구는 말했다.
친구야아. 일어나. 돈벌어야지이.
( 엠병할.)
돈을 벌려면 체력이 좋아야지.
말을 타라니까안.
지쳐있기도 했지만
육체와 마음의 게으름 나태지옥에 있던 나는
집요한 내 친구의
친구야아. 일어나. 돈벌어야지.에
두 손을 들고 항복했다.
아. 알았다고.
말 탄다고.
그렇게 마장에서 아침 기승은
친구 등살에 코가 끼어
마지못해 삐적삐적 시작되었다.
그래도 내 친구는 의리는 있었다.
아침 일찍 내가 말을 타도록
나를 들들 볶아 말을 타게 만든 다음,
나 혼자 외롭게 말을 타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자기도 내 옆에서 말을 탔다.
날이 좋으면 매일 아침마다.
말들 아침 식사 시간 6시와
내 승마 수업 첫 타임 9시 사이에
친구와 나는 아침 운동을 했다.
말이 밥을 여유 있게 다 먹을 즈음,
7시 20분에 장안(말을 타기 위해 말에 장비를 갖추며 준비하는 것)을 시작해서
첫 수업 시작 전까지
40분 남짓 말을 타는 거다.
각자 장안을 마친 말을 끌고
마장 운동장으로 들어가 말 위에 올랐다.
우리가 운동을 할 땐
운동장 한가운데 센터에는
음량이 빵빵한 성능 좋은 블루투스 스피커와
움직이는 피사체를 추적하며 360도 회전촬영하는
피보가 설치되어 있었다.
블루투스 스피커는 서영이가 선물해 준 거다.
우리 마장에는 수업을 할 때나
말을 탈 때마다
다양한 장르 음악이 흘렀다.
그렇게 틀어놓은 음악들은
수업을 하는 나를 위해서도
수업시간에 말을 타고 있는 회원들을 위해서도
회원들을 등에 태우고 운동하는 말들에게도
일상을 후레쉬하게 만들어주는 즐거움이었다.
우린 그걸 노동요. 라 불렀다.
그런 즐거움을 아는 친구의 선물이었다.
(요런. 센쓰쟁이 같으니라고.)
회원들이 운동할 때
말 발걸음소리가 요란하더라도
운동장 구석까지 아주 생생하게 음악이 들리는
아주 좋은 스피커였다.
말과 함께 운동을 할 때
음악을 틀어놓으면
말 등위에 앉은 사람도 그렇지만
말들도 듣는 귀가 있어
음악을 들으며 걷고 뛰고 달렸다.
그럴 땐 말 발걸음은 경쾌했고 신이 났다.
내 말들이 듣는 음악은
장르도 다양했다.
최신 라틴 음악 리스트들부터 시작해서
그해 최고 베스트 팝 리스트들과
최신 K POP들이 유행 따라 쿵작거렸다.
국내외를 넘나드는 힙합음악들이 흘러나왔고
날씨가 꾸무럭거리거나
아주 쨍한 날이면
멋진 클래식 음악들도 흘러나왔다.
어떤 날은 마장 한가운데에서
프랑스 뮤지컬 가수들이 노래했고
어떤 날은 데이비드 가렛이
이리저리 뛰는 말들 사이에 서서
그의 멋들어진 긴 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며
화려하게 바이올린 활을 켰다.
세카이노 오와리와
x 재팬의 보컬 토시도
마장 한가운데에 서서
내 말들을 위해 노래했고,
종종 에미넴과 칸예도
오른손은 사타구니에 올리고
왼손은 하늘로 까딱거리며
우리말들 사이에 서서
풕. 풬.예아.거리며 랩을 했다.
내 친구 서영이와 내가 말을 타고 있을 때
마장 한가운데에 삼발이 위에는
우리 움직임을 추적하며 촬영하는
피보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피보위에 고정된 내 폰 카메라는
그날 운동하는 우리 모습을
360도 회전하며 영상에 담았다.
운동을 할 때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는 건 꽤 중요했다.
그날 말을 탈 때
자세가 어떠했는지
말의 발걸음과 움직임은 어땠는지
영상에 담긴 그날 운동 모습들을 분석하고 복기하는데 쓰였기 때문이다.
피보는 내 운동시간뿐 아니라
내 수업 시간에도
회원들의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빙글빙글 회전하며 회원들 말 타는 모습을 촬영했다.
그 영상들은
그날 저녁 회원들 단톡방에서 공유되었다.
내 친구 서영이는
내가 다시 대학에 들어가 사귄
만학도 시절 친구였다.
서영이는 나와 10살 차이 나는 동생이었다.
우린 성격도 유머코드도 잘 맞았고
평소 하는 푼수짓들도
너무 쿵작이 잘 맞아서
둘이 만나면 늘 느훼헤헿 웃느라 바빴다.
우린 금세 베프가 되었다.
키도 비슷하고
체형도 비슷하고
풍기는 이미지 역시 비슷해서
(사람들 가라사대.)
모르는 이가 우릴 처음 보면
친자매냐고 묻거나
우리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을 땐
쌍둥이냐고 물었다.
(친구야. 화내지 마라. 난 분명 마스크를 쓸 때.라고 먼저 전제했다.)
친구가 나를 부를 땐
언니야.라는 호칭보다는
친구야. 라든가 내 이름 세 글자를 불렀다.
( 머리에 피도 안 마른...저..저.ㅂ.버르장머ㄹ...)
당장 죽어나갈 것 같은 말똥 삽질들과
교수들과 조교의 갑질이 판을 치던
하드코어 같던 대학생활이었다.
그러나
착하고 말랑말랑한 서영이 덕분에
나는 그나마 숨을 쉬고 웃고
행복한 순간을 느끼며 지냈다.
나이 들어 다시 들어간 대학생활이
아니꼽고 치사하더라도
당장 때려치우지 않고 끝까지 버텨낸 건
오로지 내 친구 서영이 덕분이었다
(친구야. 기분 좋지? 한잔 해.)
내가 지도자 자격증 시험을 치를 때마다
매번 큰 비가 쏟아졌었다.
재수 삼수하던 삼 년 내내 그랬다.
서영이는 극도로 예민해진
내 곁에 다가오지도 못한 채
저 먼발치에 떨어져서
비속에서 시험을 보는 나를 지켜봤다.
장대비가 내리는 시험장.
오전에 종목하나를 또 불합격하고서
오후에 다른 종목을 앞두고
점심을 먹으러 근처 식당으로 내려가던 길.
내 차 앞유리에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지는 비를
와이퍼가 뻐걱 뻐걱 바쁘게 닦아낼 때였다.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된 채
또 불합격해 버린 내가 불쌍했는지
조수석에 앉아있던 서영이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는 척하며
얼른 눈물을 닦아냈다.
내 차 안에는
노트르담 드 파리 오리지널 테마 곡
대성당들의 시대 (Le Temps des Cathédrales)가 흘러나왔다.
그날 이후로
내 최애곡인 그 음악을 들을 땐
그날 비 쏟아지던 내 차 안의 공기와
나를 위해 울던 서영이의 눈물이 떠오른다.
말 인생에 발을 내딛고
내가 마장 먼지구덩이 속에서
고집쟁이 말들과 고군분투하며
거친 삶을 살아가는 동안,
나는 점점
감성이 버석거리는
드라이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서영이는 그런 내가
예민한 감성과 장난기와 유머를
잃지 않도록 즐거운 자극이 되었다.
서영이랑 있으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서영이도 장난기가 많은 친구였고
나 역시도 그랬다.
내가 친구를 웃기면
같이 크헤헤헤 웃다가
친구가 나를 웃기면
다시 같이 우헤헤헿 웃는 식이었다.
마치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음이 터지는
사춘기 소녀들처럼.
서영이는 우리가 마장을 하는 내내
가족처럼 때론 직원처럼
우리 일을 도왔다.
아무리 내 가족이라해도
서영이처럼 앞장서서
기쁜 맘으로 우리 일을 돕진 못할거다.
내 평생의 빚이다.
서영이는 남편과 나와 같이
말을 길들였다.
내 수업 진행을 돕는가하면
체험 파트 손님이 왔다싶으면
달려가서 상냥하게 체험을 도왔다.
말을 씻기고 먹이고 치료해줬다.
서영이가 잠깐 안보인다 싶으면
서영이는 어느새 마장 구석에 쌓인 말똥을 치웠다.
마장의 하루 일과가 끝나면
서영이는 나를 도와 삼발이 수레를 밀어
목을 쭉 뺀 채 우릴 바라보며
저녁밥을 기다리는 말들에게 다가갔다.
수레 가득 찬 사료와 건초들을 떼어내어
말들에게 저녁밥을 나눠주고 나면
오름 주변이 금세 어둑어둑해졌다.
우리는 팽나무 밑 화덕자리에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웠다.
친구가 선물해 준 성능 좋은 블루투스 스피커에
우리가 좋아하는 곡들을 켜두고서
불을 바라보면서 우린 차를 마시거나
유치한 초등생들처럼 킥킥거리며
마시멜로를 구워 먹었다.
그러다 보면
오름 능성이 위로 별이 뜨고
밤하늘에 별들이 차곡차곡 들어앉았고
별들 사이론 은하수가 기일게 뻗어나갔다.
우리가 지핀 모닥불은
활활 타오르다가
모닥불에서 감고 올라간 하얀 연기가
휘이 휘이 하늘로 올라가 은하수와 뒤섞였다.
서영이와 시간을 보내면
시간은 어찌 그리 후딱 가던지.
아침 7시에 시작된 하루는
금세 밤 10시가 되었다가 밤 12시가 되곤 했다.
추적추적 마장에 비가 내리면
마방에 들어간 말들이
넣어준 건초를 씹으며
푸르르릉 푸르르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 오름 숲 속에서는 비에 젖은 까마귀가 울었다.
마장 넓은 운동장엔 빗물이 고였고
운동장옆 좁고 낮은 도랑에는
빗 물이 돌돌돌 흘렀다.
비가 온다 싶으면
오늘은 마장 문을 닫겠지. 생각하면서
서영이는 라면과 떡볶이 재료를 사들고 찾아왔다.
라면과 떡볶이 재료를 내게 흔들어 보이며
짜잔. 친구야. 이것 봐라. 하며 내밀면
난 그렇게 반기며 화답했다.
그렇지!
바로 그것인 거시지!!!
비 오는 날은 라면인 거시지!!
마장 한 구석에 세워둔 텐트는
우리 놀이터였다.
비가 오면 우린 냄비와 가스버너를 들고 텐트로 들어가 라면을 끓여 먹었다.
투둑 투드둑 투두둑
그때 탠트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소리처럼 들렸다.
언젠가 남편이 마장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 놀이터 만들어줄게.
남편이 나에게 만들어 주마. 했던 놀이터는
그의 본디 마음과 다르게
나의 놀이터이기 이전에
내 삶의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마장은 내 삶의 전쟁터이자 고문장이었지만
내 친구 서영이 덕분에
아주 천천히 나에게 놀이터가 되어갔다.
그가 말했던 놀이터는
서영이가 완성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내 친구 서영이가 없었더라면
내가 이 마장을
내 놀이터 삼을 수 있었을까.
단언컨대
분명 그러지 않았을 거다.
초 겨울에 진입을 하는 건지
아침 마장에는 한기가 돌았다.
그날 나는 혜성이를 탔고
서영이는 미르를 탔다.
말들의 호흡소리,
친구가 자기 말에게 보내는
끌끌거리는 혓소리,
서로의 거친 호흡을 들으며 말을 탔다.
내가 마장 테두리를 따라 직선으로 달리면
친구는 나와 동선을 피해
마장 안쪽에서 원을 그리며 달렸다.
말의 호흡을 고려하면서
말을 걷게 하는 동안
서영가 말을 타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거나
내가 말 타는 모습을 서영이가 지켜봤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조용한 아침시간
서영이는 나와 말 타는 이 시간을 좋아했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말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는 서영이랑 단 둘이
이렇게 말을 탈 때였다.
몇 주전에
서영이랑 통화를 하다가
요즘 안부를 묻던 서영이가 말했다.
폰 앨범을 보다 보니까
언니랑 마장에서 지낸 사진이랑 영상이 정말 많더라고.
둘이 같이 말 타는 영상도 있고.
난 그 영상이 참 좋아.
정말 오랜만에 다시 봤는데 참 좋더라.
아. 그래.
그 영상이 있었지.
잊고 있었네.
전화를 끊고 나서
내 폰에 저장된 영상을 다시 들어다 봤다.
초 가을에 시작했던 아침 운동은
이제 초 겨울에 진입하고 있었다.
그날 말을 타던 우리 입과
말들 입에선 입김이 새어 나왔다.
그때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던가.
하마터면
잊고 있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