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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Sep 22. 2024

입학 첫날, 말 타다가 생긴 일

웃겨도 절대 입꼬리 하나만 올리지 말자. 하나와 두개 의미 차이는 크다

남편과 내가 입학한 첫날,

학교 실내마장에서 처음 말을 타던 날이었다.

그날은 만학도들만 실내마장에서 말을 타는 자유 기승시간이었다.

전공 교수와 조교는 실내마장 한가운데 서서

만학도들 말 타는 모습을 지켜봤다.


같이 입학한 동기 만학도들 대부분은 사회에서 취미로 최소 2,3년

많게는 10년 가까이 말을 타다 입학한 사람들이었다.

그중 몇은 이제 막 승마를 배우기 시작한 사람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능숙하게 오랫동안 말을 타오던 만학도들은

대부분 정통 승마가 아니라 몽골식 말타기를 했다.

(이를 굳이 분류를 하는것은 전공 교수가 말타기와 승마는 다르다고 늘 강조했기 때문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클래식 전공자가 몽키 매직 부르는 이박사를 음악 전공자로 칭하지 않듯이

뭐..그런 느낌이랄까?


학교에서는 유럽식 정통 승마를 교육했고 그러한 승마를 추구했다.

그러다 보니 십수년 말타기를 해온 사람들의

자유분방한 말타는 자세와 방식은

그들 보기에 그냥 웃겼던 모양이다.


그 만학도들이 제 아무리 능숙하게 말을 타더라도

제멋대로 말을 탄다는 인식이 매우 강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학교에서는 그렇게 말 타는것을

굉장히! 굉장히! 굉장히!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승마 구력이 길어서 말을 더 능숙하게 타는 만학도들일수록

교수나 조교가 더 싫어 한것 같았다.

어쨌거나 올림픽 마장마술 선수처럼 우아하게 타는게 아니라

몽골 사람 말 타듯이

산으로 바다로 외승나가 막 달리던 자세로 제멋대로 타고 있으니 말이다.


만학도들을 오해하는 것중 또 하나는

만학도들은 말을 거칠게 타서 말을 괴롭힌다! 라는 말이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그 말은 다시 생각해도 정말 웃긴 말이 아닐수 없다.


노래 하나를 불러도 뽕짝도 있고 가곡도 있고 롹도 있고 하는것인데

그게 뭐 대단하다고

정통 클래식한 승마만 제대로 된 승마라고 생각하냐 이 말이다.




자.

그들이 몽골식으로 말타는 걸을 싫어하는 이유 다시 정리해보자.

첫째, 말타는 기본 자세가 엉망이고 웃기다.라는 것이고

둘째.그렇게 말 타고 냅다 달리기만 하면 그건 말을 거칠게 다루는것이니

그렇게 말타는 인간들은 말을 함부로 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에는

팩트도 있고

(말타는 기본자세가 나쁘다는)

심각한 선입견도 있었다.

(저렇게 말타는 인간들은 말을 함부로 대한다! 함부로 대할것이다! 함부로 대한다더라!

함부로 대한것 같더라! 함부로 대할지도 모른다! 함부로 대할 작정일것이다!

함부로 대하고 싶을 계획일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그럴것이다!

함부로 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분명히 함부로 대하자고 결심하고 있는중일 것이다!)


이런 심각한 선입견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점점 사실을 왜곡하고

급기야 그 왜곡된 내용이 팩트라고 단정지어버리고는 끝이다.

이미 누군가는 그런 인간이 되어있는 거다.

참 어이없고 무서운 일 아닌가?


몽골식으로 거칠게 말을 타는 만학도들은

말들을 아끼지 않는 인간들이다.라는

얼토당토 않는 결론에 도달아

만학도들은 이런 인간들이야.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만학도들을 그룹채로 낙인 찍는다.


이러한  왜곡된 신념과 단정은 근래에 생긴것이 아니고

학교 생활 해보니, 수년간 많은 만학도들을 겪으면서

자리잡은 인식인듯 했다.

교수들이나 조교나 어린 현역 학생들에게 말이다.

그건 나에게는 아주 진짜 개똥 같았다.

같은 맥락에서 만학도인 나 역시,그러한 근거없는 판단에 이유없는 피해자가 되곤했다.


교수들이나 조교의

(조교는 실습마장에서 가장 독보적인 권력을 가진 인물이다.

일반 대학의 친절하고 사분사분한 조교를 연상시키지마라.)

만학도들에 대한 이와같은 편견은

내가 4년 학교생활 하는 내내

아주 지랄같은 경험들을 하게 만들었다.


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나 할말 마아안타!-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날 학교 실내마장에서는

취미로 승마를 오래 해온 만학도 몇 명이 말을 타고서

마장을 이리저리 자유롭게 크게 동선을 쓰며 운동을 했다.


걷기와 가벼운 뛰기를 하면서 말 몸이 풀리도록 워밍업을 하다가

실내 마장 벽 테두리를 따라 크게 돌면서

이제 막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헛! 핫! 소리와 같은 구령을 포함해서 말이다.


마장 한가운데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교수와 조교가

그 우렁찬 구령을 듣더니만

순간 서로 얼굴을 마주봤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이다.


몽골식 승마할 땐

이러한 구령이 습관화되어있지만

정통 승마에서는

헛! 핫! 이럇! 충!같은 구령을 쓰지않는다. 절대로!

다만 혓소리로 끌끌,ㅉㅉ소리만 내는데

그것이 음성부조( 말타는 사람이 입으로 소리를 내어서,

말이 반응하여 행동하도록 신호를 주는 것)의 전부다.


유럽식 승마방식으로 승마를 배우지 않은 사람들은

보통 말을 탈때 사극의 주인공들처럼 헛!핫!충!같은 구령을 흔하게 쓴다.

뭐.이러한 구령을 붙인다고

누구 하나 죽어 나갈 일도 아닌데,

학교에선 그런 방식으로 말을 타는걸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굉장히! 굉장히! 굉장히 싫어했다.


이번에는 그들이 말을 달리게 만들어서

실내 마장 벽 테두리를 따라 빠르게 다그닥 다그닥 달렸다.

학교에 입학하기전부터 그들은

늘 그렇게 말을 빨리 달리도록 타 왔기 때문에

지금 학교 마장에서도 신나게 달리고 있을 뿐이었다.

말타는 자세나 모습이 약간 불안정해보이긴 했지만

그들이 말 타는 방식이 결코 틀린 것은 아니었다.

말타는 방식의 차이였을 뿐.


그런데 교수와 조교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학교에선,

유럽식 클래식한 승마를 최고로 쳤다.

우아한 승마 말이다.

웨스턴 식의 승마나 몽골식의 승마는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달까?

그게 노골적으로 표현이 되는 곳이었고

승마를 교육시킬때, 말을 탈때, 지켜볼때,

누가 잘타고 못타는 지 판단할때,

굉장히 보수적인 관점이 기준이 됐다.


그들이 입으로는 헛!핫!과 같은 구령을 붙이며

이제 막 신나게 말을 몰아 다그닥 다그닥 달리고 있을적에

난 그순간

봐서는 안될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들이 신나게 달리고 있을때

전공 교수와 조교의 시선이 다시 한번 더 마주치더니

말타는 이들 방향과 반대쪽으로

그러니까, 교수와 조교가 서있는 그 사이 방향으로

둘이 동시에 마주보며 살짝 몸을 비틀어 돌렸다.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말타고 있는 그들이 자기의 표정을 못보도록

얼굴을 15도 정도 살짝 숙이더니

피식!하면서 서로 한쪽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웃었다.

그 웃음은 비웃음이었다.

지금 제멋대로 신나게 말을 타고 있는

그 만학도들을 향한 비웃음 말이다.


그 비웃음 속에는

지금 당신이 말을 굉장히 잘 탄다고 생각하는거지?

당신 지금  말타는 자세 진짜 웃겨! 엉망진창이거등?

이런 뜻이 들어있었다.

아주 노골적인 비웃음이었다.

입학 첫날, 첫 기승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말타던 만학도 그들은 교수와 조교의 표정을 보지못했지만

불행하게도 난 그들의 비웃는 모습을 봐 버렸다.

교수와 조교의 비웃음 대상이 내가 아니었지만

그것은 내게 트라우마처럼 남아서

학교 생활을 하는내내 나를 자기검열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나이를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으나 공개하자면

교수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 40대 중후반이었고

조교는 이제 막30이 될 참이었다.

그날 말 탄 사람들은 대체로 60대 초와 50대 중,후반이었다.


비웃음의 트라우마는 꽤 집요하게 나를 괴롭혔다.

나는 그들이 수업중에도 아니면 자유기승시간에도

지켜보고 있다 싶으면

내가 말타는 모습을 보면서 비웃을테지.라고 생각이들어서

항상 기가 죽은채 말을 탔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는 당연히 내 실력만큼 편안하게 말을 타지 못했다.

매번. 4년 내내 그랬다.


모든 일이 그렇다.

자기 능력을 백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기 확신과 자신감이 필수라는 건 기본 지식이다.

전공 교수들은 본인 수업때 시간이 날때마다

승마란 모름지기 담력과 호연지기를 길러야 실력이 느는것이다.라고 매번 얘기했다.


크큼! 제가 한말씀 드리지요.

실력이 부족한 학생을 보고

지도자인 교수가 뒤돌아 비웃는데

학생이 무슨 수로 담력을 키우며 호연지기를 키웁니까?

교수니이임. 예???




그 날 비웃음을 보고나서

그자리 내가 탄 말위에서 난 딱 얼어버렸다.

-난 쫌 많이 소심한 인간이다.-


그렇지 않아도 처음 경험해보는 학교 시설 실내마장이었고

그렇지 않아도 처음 타보는 학교 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처음 보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아도 입학 첫날이어서 잔뜩 긴장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 와중에 교수의 비웃음을 보게 되었으니

이도 저도 못하고 딱 자리에서 긴장하고 얼어버린건

당연한 일이었다.


말은 아주 예민하고 민감해서

지금 자기가 등에 태운 사람이

얼마나 긴장했는지, 떨고 있는지, 덤덤한지, 의연한지

오로지 말 등 피부의 감각으로도 다 느낄수 있다.


그날 나를 태웠던 말은

바싹 위축되고 얼어버린 내 심리상태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이런 경우 말이 취하는 다음 행동은

말 타는 사람을 바로 무시한다.

-뭐야. 얘. 쫄았네에- 하는것이다.


그 다음은 말탄 사람의 신호를 그냥 모른척 한다.

말이 사람의 신호를 모른척 한다.

절대로 모른척 한다.

어떠한 신호를 줘도

말이 사람을 모른척하기로 작정하면

네 발을 바닥에 딱 붙이고 그 자리에서 꿈쩍도 안한다.

말은 도무지 아무것도 안한다.


그날 내가 그랬고

그날 나를 태운 말이 그랬다.



그날 당황스럽게 만든 에피소드는 비웃음 사건이 끝이 아니었다.

비웃음 사건이 1부였다면

그 남자의 등장은 2부였다.

그래. 아무렴!

입학 첫날이니까

이런 에피소드는 많을수록 드라마틱한 법이지!


비웃음 사건으로 내가 바짝 쫄아서 얼음이 되어있을 때

입학동기인 남자 만학도 한사람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나에게 조언을 한답시고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처음 본 남자였다. 또 한 마리의  깐따비야 또라이종 외계인 등장인 것인가!)


아. 말이 당신을 무시했네!

말 옆구리 빵 차요. 더 쎄게! 하더니

나더러 고삐 쥔손을 이래라 저래라 했다.

당신 지금 낀 반지 당장 빼라.

당신 반지 끼고 고삐잡다간 니 손가락 다 나간다.

와 같은 말도 안되는 참견을 했다.


저기요. 너님. 나 아세요?

아니이

교수도 가만히 지켜보고 있고 조교도 가만히 지켜만 보고있구만은

너님이 뭐라고 나한테 이러세요오.

너님, 뭐 돼요?


이제 그 참견씨는 쩔쩔매고 있는 나 앞에서

말타는 실력을 자랑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자기가 얼마나 말을 잘 타는 사람인지 시범을 보이듯 잘난척 뻐기면서 이런 저런 말타기 기술을 구사해댔다.

(  킁! 재밌네! 이 생명은 또 뭐람?)


그 순간 난 혼자 조용히 확신을 했다.

여기는 분명히 안드로메다 깐따삐아 별인갑다.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이 짧은 두시간만에 이렇게 다양한 별종들을

(별종이라쓰고 또라이종이라 읽자!)

만날수 있겠는가 말이다.


 참견씨가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참견을 하면서

내 앞에서 온갖 잘난척 뽐을 내며 말을 탈때

저 건너편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남편이 생각했단다.

-저 쉐낀 또 머야?

 왜 내 마눌한테 가서 찝쩍대? 미쳐쒀???-


 참견씨는 내 앞에서 한참 잘난 척 하더니만

마장 저 구석에서 내가 있는 자리까지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말을 몰아 쏜살같이 달려왔다.

나 이렇게 빨리 달릴 줄도 안다?! 라는듯이!


퉤!


역시나

교수와 조교가 그 참견씨를 봤고

역시나

같은 자세와 같은 방향으로 몸을 틀어

역시나

같은 입술 한쪽 꼬리를 치켜들어

 참견씨를 비웃었다.


킁!

쌤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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