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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Sep 22. 2024

생계형 말타는 만학도 대학생이 되다.

절박한 자는 게임에 임하는 자세가 다르다.

남편 마장을 처음 방문한 날

마장에서 돌아온 나는

저녁 밥을 먹다가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 승마가 그렇게  좋으면 차라리 제대로 배워보는게 어때?

원한다면 독일 가서 살아보면서

정석으로 정통 승마를 하나하나 배워보던가.

(선수를 할건 아니지만)

아니면 대학을 다시 가서 승마 전공하고

승마 전문 지도자 자격증들도 따고 말이야.


그의 얼굴에서 그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던지

잠시 황홀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말했다.

에이. 내 나이에 무슨 독일이야.

하긴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한번 해보겠다만

다 늙어서 지금은 아니지이.

근데, 대학가서 승마 전공해보는 건 한번 생각해볼게.


그때 나는 남편에게 이와 같은 말을 했었고 남편은 그와 같은 말을 했었다.

위 문장의 모든 행동 주체는 남편을 가정하고서 말을 한것이다. 내가 아니고!

독일이며.

대학이며.


그렇게 한달이 지났을때

남편은 정말로 ㅇㅇ대학에 원서를 제출했다.

그날 저녁 남편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누울. 나 대학에 원서냈다.  

오. 그래? 잘했네애.  

근데 마누울. 나 니 원서도 같이 !

아놔!

뭐냐아! 

아. 내 원서는 왜 냈어어!!!


마눌.나 혼자 대학 다니면 재미없으니까

너랑 같이 다닐라고 니 원서도 냈지이.

아.이런 젠장!

아. 누가 대학 다시 가고 싶대에에?!

나한테 상의 한번 없이 이래애?!


진심으로 짜증이 났다.

말이랑 바람나서 마장 차렸다고 폭탄선언 했을 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강도의

당황스런 타격감이었다.


해맑은 미소로

마눌.니 대학 원서도 내가 냈다!라고 하는 말은

훗날 결론적으로,

마눌. 나혼자 가면 심심할 것 같아서

마눌 니 지옥행 티켓도 같이 끊어놨어!

참고해.

이건 논스탑 직행이드라! 내지의 뜻을 포함한 말이었다.

그 날을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남편을 향한 거칠고 심한 말이 절로 내 입에서 맴돈다.


그만큼 중년 나이가 돼서 다시 해본 대학생활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고 힘들었다.

그때 학교에서 사람들로부터 얻은

내 마음속 상처들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치유되지 못했다.




난 그렇게 남편에게 속아서!

강제로!

남편의 원 플라스 원처럼!

다시 대학에 들어 갔다.

남편이랑 나는 정통 승마를 전공하고

말에 대해 자세하게 배우는 학부,

생계형 말타는 만학도 대학생이 되었다.


내 나이 이제 50을 막 바라보는 나이에

남편이 내 동의 없이 제출해버린

대학 원서 덕분에(우쒸!)

남편( 자발적)과 나는(강제적) 만학도 대학생이 된 것이다.


그래도 얼마나 착한 마눌인가 보라.

인생 2막, 말과 함께사는 인생에 동행하마.라고

남편에게 선언한 이후로

나는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갖춰야 할 것들을 생각하며

하나씩 차근차근 우리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장에서 승마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그저 말을 잘 탄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승마를 지도하기  위해선

전문성과 전문 자격을 갖추는 것이 가장 필요했고 중요했다.

그래서 대학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당한 곳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남편이 내 동의없이 등을 떠밀긴했으나

이미 남편과 인생 2막 시선을 같이 하기로 작정한 이상, 순한 양처럼 대학 생활을 그냥 받아들였다.

내가 감당해야 할 운명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열녀다. 열녀!-


남편때매 강제로 입학은했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새롭게 펼쳐지는 인생 길. 문 앞에서

누구나 가져봄직한

20살 청춘때와는 다른, 적당한 희망과 설레임이 있었다.

그때까진 그랬다.

(입학 첫날 부터 그 맘을 비웃듯 무너져 버리긴 했지만)


우리 학번은 입학 동기중에 만학도가 유독 많았다.

이 대학 이 학부의 특징이기도 한데,

사회에서 취미 생활로 승마를 해오던 사람들이

시설도 좋고 강사진도 좋고 좋은 말들도 많으니

대부분 취미생활 연장선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대학교에 입학을 하기도 했다.


우리 학번에서 그런 만학도들은 약 10명 남짓했다.

그중엔 안드로메다 깐따삐야 별에서 온 또라이종 외계인들도 있었다.

새삼스러울건 없다.

어디에나

깐따삐야 별 또라이종 외계인들은 있는 것이다.


만학도들이 우리 부부와 다른 점은

그들은 취미생활로 입학했고

우리는 여기서

전문 승마 지식과 기승술을 배우고

자격증도 졸졸이 따서

내 가족들과 내 말 13마리, 개와 고양이 3마리를

먹여 살리는데 보탬이 되고자 입학했다는 차이다.


취미와 생계의 동기 차이는

그 일에 대한 마음가짐과 태도의 차이를 만든다.

우린 취미가 생계로 바뀐 케이스이긴 한데

어쨌건 생계로 이 문제를 바라본다

우린 뭐든 열심히 해야되는 것이다.

취미로 돈을 쓰긴 쉬워도

생업으로 돈을 번다는 건 어려운거니까 말이다.


중동사는 만수르처럼 돈이 많아서

마당에 사자 몇 마리 호랑이 몇 마리를 맘껏 풀어두고

개처럼 키울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겐 없었다.

남편은 만수르가 아니었다.


우리가 선택한 인생 2막,말과 함께 사는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일단

 분야에서 반드시 전문가가 되어야 했다.

예전엔 취미었지만 지금은 생업이 된것이다.

어찌 열심히 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취미형 만학도들의 태도엔

거만함과 느긋함이 있었고

생계형 만학도인 나는

절박함과 조바심이 있었다.


취미형 인간과 생계형 인간은

게임에 임하는 자세부터가 다른 법이다.


취미형 만학도  대부분은 슬렁 슬렁 요령을 피우며 학교를 다녔다.

본인이 사회에서 얼마나 한가닥씩 하는 인물인지

돈이 얼마나 많은지.슬쩍 슬쩍 자랑질도 하며

그런 맛에 학교생활을 하는것 같았다.


비록 남편에게서 등 떠밀려 들어오긴 했지만

기왕 다시 들어온 대학교였다.

그들과 다른 생계형 만학도인 나는

그만큼 그들과 달리 절박했기에

현역 어린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말을 탔고,

공부했다.

정말로 진지하게 학교생활을 했다.


나는 남편 마장에서

전문 지도자가 되야 할 사람이었다.

자고로 지도자란,

어떠한 분야든간에 이론과 실기를

촘촘하게 빠삭하게 꿰차고 있어야

지도자 명함이라도 파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 학부에서 만학도는

그렇게 학교 생활을 하면 안되는거였다.

내가 순진했다.

내가 멍청하게도 눈치가 없었다.


만학도는 응당 슬렁 슬렁 학교를 다니면서

어린 현역 아이들 점심 밥도 척척 사주고

저녁에 한자리에 모다 불러서

술도 한번씩 거창하게 사주는 그런 만학도여야 했다.


위와 같이 열심히 해야 할 이유에다

한가지 더해서

일단 쀨 받으면 몰입력이 엄청 쎈 인간이였다.

내가 발동이 잘 안걸리는 과.라서 그렇지

일단 점화가 됐다 치면

그때 나는 앞뒤 따지지 않고 무조건 저스트 고!다.

진짜로 화력이 겁나 쎄진다.

난 집중력과 몰입력이 엄청난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나는 그러면 안되는거였다.


내 개인사를 알 바없고

내 개인사를 굳이 내가 말할 필요없는

사람들이 말했다.


그냥 슬렁 슬렁 취미로나 학교를 다니지

당신은 왜 열심히해서 문제를 만드냐.했다

그러다 당신,이렇게 말 타다가 죽는다.

와 같은  악담도 거리낌없이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내가 전공 교수들에게  들었던 말이다.


교수나 조교 혹 어리거나 나이 많은 학생들은 나에게 말했다.

ㅇㅇ쌤.

(학교에서 나이 많은 만학도들을 도덕적 차원에서 대우하는건 딱 이 호칭 하나였다.

00씨도 아니고 00댁도 아닌 00쌤.이다. 고맙다!)

. 왜 열심히 하는데요? 대충해요. 슬렁 슬렁.


적당히 슬렁 슬렁 대학을 다니면 될 일이지

왜 기를 쓰고 배우려고 하는지

어린 학생이고 늙은 학생이고

조교고 교수곤 간에

나만 보면 죄다 되려 지고 들었다.


왜 기를 쓰고 열심히 하냐고?

여기서 배운 걸로

내 남편 마장 도와줘야되니까.

그걸로 내 새끼들도 키워야되니까.

그리고 말들 먹여살려야되니까 그렇다.

왜? 꺄.

어쩔래!

싸우자!!!

(라고.입 밖으로 내 뱉은 적 없는 속엣말.)


나이든 학생은

열심히 하는 것도 죄가 된다는 걸

난 이곳에 와서 알았다.


어릴적부터 50살이 다 되도록

더 열심히 살아라. 소리는 들어봤어도

왜 열심히 하냐고 욕 먹는건

이 학교와서 처음이었다.


그건

상당히

매우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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