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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Sep 19. 2024

인생 2막 말 인생. 동행해보기로 하다

지 인생 지가 조지겠다.는데 말릴 사람 없다.


마장을 차리고나서 몇 달이 지나도록

나는 여전히 마뜩찮은 눈 빛으로

틈나는대로 남편 뒤통수를 겨누고 있었다.


남편은 저녁에 집에 들어올때

회원 교육비라고 얼마의 돈을 내밀거나

오늘 체험승마해서 돈 벌었다. 하면서 몇장의 만원권을 내게 내밀거나 했다.


아주 쑥쓰러운 미소와

아주 약간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그는 저녁에 돌아와 마장에서 일어난 여러 일들을 얘기했다.

나는 시쿤둥하게 이야기를 들으며

아는체하지 않았다.

그가 얼마나 개고생중인지 말이다.


그는 나름 부족함없는 서울 촌놈으로 태어나

고생모르고 살았다.

여직,

평생 흙먼지 한번 뒤집어 쓴 적이 없고

낫자루 한번 잡아 본적이 없었던 그가

고생이 안될 턱이 있나.

물어보고 자시고 할것도 없었다.


그가

블루칼라 삶의 표본이자

체험 삶의 현장 성지이며

다큐 3일 프로에 합당한 장소인 마장에서

손에 익지도 않은 일손으로 일을 한다.


온 종일 흙투성이가 된 채

매일 거친 일을 하며

그가 고군분투중인건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는 어떠한 불평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여름에 승마장을 열었고

나는 남편이 못마땅해 침묵 시위를 했다.


그렇게 겨울이 왔다.

나는 마지못해 못 이기는 척

남편 마장에 처음 가 다.

딱 5개월만이었다.


마장 사무실이라고 하는 어설픈 콘테이나에는

고만 고만한 사무실 살림살이가 들어 앉았고

말을 타기 위해 필요한 안장이나 재갈고삐 같은 다양한 마장용품들은

낡고 터무니없이 부족한것들 투성이었다.


말을 가둬둔 마장 간이 운동장에는 비가 온 다음이여서 진흙탕 범벅이었고

그 속에 서있는 말들도 온탕 진흙을 뒤집어 쓰고 서 있었다.

둘러보니 한숨이 절로 났고

한편으론

도대체 앞으로 이걸 어찌 해나갈 생각인지 답답하고 화가 났다.


남편은 드디어 자기 마장을 방문해준 마눌에게

-죄사함 받은 어린 양처럼-

너무 감동이 되고 신이나서

이곳 저곳에 있는 시설들과 물품들을 자랑하기 바빴다.


그리고 귀한 공주님을 보필하듯이

본인은 이제 교육을 해야하니

당신은 사무실 따뜻한 난로옆에 앉아

불 쬐면서 기다리고 있어라.했다.

그리고는 서둘러 장갑을 끼며 나가서

준비된 말과 회원들이 있는 운동장 가운데에 서 수업을 했다.


콘테이나 사무실 난로옆에 앉아

유리창 밖을 내다보니 남편 수업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걸 지켜보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옷 매무새를 여미고 남편이 수업중인 운동장으로 나갔다.


가로세로 20미터 40미터 운동장 한 가운데에서 남편이 수업을 할때,

나는 그의 곁에 가까이 서서

그가 수업하는 모습과 회원들이 말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날 바람은 어찌나 날카롭고 차갑던지

바람막이 될 것없는 탁 트인 초원 한 복판에서 수업하는바 다름 없었다.

지켜보기 시작한지 20분도 채 되지 않았을때

나는 온 몸이 꽁꽁 얼고 발 끝이 감각이 없을 정도로 추위를 느꼈다.


거세고 거침없는 북서풍은

바람막이 없는 휑한 벌판을 맘껏 달려와 남편과 나를 온몸으로 휘몰아 때렸고,

언제 그랬냐는듯이 우리를 치고는

뻔뻔하게 슬그머니 초원 구석으로 슬쩍 도망갔다.


그날 마장 한가운데서 느낀 추위는

평생 내가 경험해 온 추위중에

가장 날것 같은 추위였고

가장 충격적인 추위였으며

손과 발을 어쩌지 못할정도의

난감함을 주는 추위였다.


그런 추위속에서 내가 언 손을 비비고

언 발이 아플지경이라 신발속 발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쉴새없이 하고 있을때,

남편은 돌하루방마냥 거뜬히 서서 수업을 했다.

회원들에게 종종 기분좋은 농담까지 곁들이며 말이다.


그도 역시 똑같은 추위를 느끼고 있을터,

그러나 그의 표정에는 즐거움과

그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느끼는  정직한 기쁨이 묻어났다.


그때의 추위와

추위와 상반된 행복함이 묻어나는 남편 표정이 새삼 떠오른다.


그 자리에서 나는 곧장

꽁해있던 고약한 심뽀가 슬그머니 가라앉았다.

그동안 남편에게 시위하듯이

마장을 차리던 말든 나는 모르는 일이고

당신을 홀린 말들이랑 잘 한번 살아봐. 했던!


그리고 그런 시위를 벌였던 내가

아주 조금 눈꼽만큼 미안했다.


일이 힘들고 환경이 열악한 와중에도

남편이 행복함을 느끼고 있는 포인트가 어떤것인지 나는 살짝 엿본것 같았다.

말을 타고 말을 돌보며 사람들에게 승마를 가르쳐주면서

남편은 그 자체로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남편이 원하는 인생2막의 삶이 이러한 것이고

그가 이러한 삶에 이렇게 행복해 한다면

하아. 쩝! 어쩔수 없다.

(이혼할게 아니라면, 앞으로 쭈욱 같이 살아야 할테니)


나도 그와 시선을 같이 하면서

내가 할수 있는 한

그를 도와야 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의 인생 2막 말 인생에 동행해보기로 했다.

-열녀 났네!


그날 결정 이후로

잠시도 잠잠한 적 없는  삶에

과거의 순진한 나를 강제로 쑤셔 넣는 꼴이 됐다.


우리는 이런 걸보고 지.인.지.조!라 한다.

(지 인생 지가 조진다.의 약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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