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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Sep 19. 2024

인생 X 되기 시작합니다. 손잡이 꽉 잡으세요.

마눌. 마장에 한번 와봐

1초도 머뭇거림 없이 답했다.

싫어!


마눌. 그래도 우리 마장인데

당신이 와서 우리말들도 타보고 해야지

1초도 머뭇거림 없이 답했다

안 가!


남편은 자기를 홀린 말들을 데리고 나가

정분난 여편네와 딴살림을 차리듯

중산간 어딘가에서 마장을 차린 후에,

나에게 그걸 자랑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본인은 이제 말이랑 살아보겠다. 고 일방통행으로 내게 선언했던 바,

남편 홀려 딴살림 차린 첩년을 인정 못하는 아내처럼 나는

남편 마장에서 뭔 일이 일어나든 말든 외면했다.


마장 와서 우리말들도 타고 구경도 좀 해보라. 는

남편 말은 듣기도 싫었다.

시위를 하듯이

-바람난 남편 벌주듯이!-

몇 달이 지나도록

남편 마장은 들여다보질 않았다.

그만큼 난 남편의 결정에 화가 났었다.



남편 나 아들 딸,


우리 가족 넷은 말을 탄다.

남편의 승마천국 전도 덕분이다.

(큼. 그래 일단은 덕분이라 해두자!)

남편이 처음 승마를 시작하고 홀딱 빠져서,

자식 둘과 나를 승마천국으로 전도하지 못해

안달을 했다.


전국의 모든 집사님들 평생 기도제목은

길 잃은 어린양 같은 가족들이

어여 바삐 주님 전에 나아

예수 믿고 천국 가길 원하는 것이다.


그렇듯,

모든 분야의 신실한 신도들은

천국을 본 자기 믿음을 누군가에게  전도해야 할

사명감을 가진다.


처음엔 가족에게,

그다음엔 가까운 지인에게,

그다음엔 길거리에서

본인이 경험한 천국 같은 세상을 알리고자 말이다.


남편도 그랬다.

남편에겐 승마 천국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승마고 뭐고 간에

태생적으로 나는 몸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저질 체력 인간이었던지라

말 타자고 꼬시는 남편 말이 끝나기 무섭게

1초도 고민 없이 즉각 노!라고 했다.

-너나 하세요.-


전도사의 굳건한 믿음과 승마천국 세상에 대한 전도 의지가 확고하

1노 2노 3노 4 노가 쌓이더라도

기어이 대상자를 천국으로 전도해낸다.


처음엔 순진한 아들을 전도했고

다음엔 딸을 전도했으며

마지막으론 두 자식을 인질 삼는 전을 써서

n 노!! 를 줄기차게 말하던 마누라를 전도에 성공했다.

남편 바람대로

우리 가족 넷은 그렇게 8년간 말을 탔다.


취미로 말을 타긴 했으나

나는 남편이 원하는 그림처럼

말에 빠져들진 않았다.

취미는 취미인데 즐거움을 위한 취미라기보다

남편이 워낙 좋아하니 내가 시선을 맞춰주는 정도였다.

체력이 따라주지도 않았고.


나는 말을 타는 것보다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끄적이는 게 훨씬 행복했던 사람이었다.

기질적으로 그렇다.


승마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말을 좋아한 것도 아니었

그렇다고 또 몸 쓰는 운동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남편 꼬심에 넘어가

내가 말 타기로 결정한 것부터가 희한한 일이었다.

평소 내가 절대 안 할 짓을 한 거니까 말이다.


그건

 중년 인생이 요상하게 흘러가게 된

시작이었다.

내가 내 발등에 도끼질을 시작한 날이었고.


-니 인생  X 되기 시작합니다.

   손잡이 꼭 잡으세요.-


이이 땅!


말에 진심이었던 남편은

아예 한발 더 나아가

8년간 즐거운 취미의 완결 편처럼 마장을 차렸다. 그야말로 덜컥 이었다. 덜컥!


내 나이 진짜 50 됐다.

내가 예전부터 말했지?

이제부터 내 인생 내가 좋아하는 거 하고 살란다. 하면서 말이다.


-하아. 아니. 그래애.

그 말은 알겠는데,

마장 그 많은 일들은 혼자 할 수는 있고?-

아마도 남편은 자기 혼자 마장 일들 쯤이야 뭐.

거뜬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내 동의도 없이

우리 인생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그런 큰 일을

벌일 수가 있냐 말이다.



남편이 내게 상의 한마디 없이

마장을 차려버린 통에

나 역시 마장일에서

발을 빼도 박도 못한 처지가 됐다.


마지못해 승마를 시작했고

남편 눈높이 맞춘답시고 시작한

개인적으론 마뜩잖던 취미활동이

이젠 생업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가둬버렸다.

도망가지도 못하게.


솔직히 말하자면

남편의 그 결정은

그럭저럭 평온했던 남편과 나의 삶을

무척 힘들게 만들었,

가족 전체의 안정감을 흔들어 버릴 만큼

가족 모두를 경제적, 정서적인 위험에 빠뜨려버린

결정이자 판단이었다.


본인도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내 나이 오십 엔 나 하고 싶은 거 하고 살 거다. 를

실현시키기에는 가족들 희생이 너무 컸다.


그가 인생 2막으로 선택한 일은

불행하게도

3D 중에서도 최고봉 자리에 있는

거칠고 위험하며 안 되는 일이었다.


또한, 결국은

내가 발 벗고 나서서 그를 도울 수밖에 없었고

아이들은 갑자기 엄청나게 변해버린 생활을 불안해했다.


남편 자유 선언 한방에

우리 가족은 어느 날 갑자기 핵폭탄을 맞은 것이다.

나나 아이들이나.









#말이랑 #바람나 #한라산 #중산간에서

#딴살림 #차린 #마장

#승마천국 #승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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