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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물질의 방 Mar 11. 2022

천상천하 유아독존

종교는 무교, 불교철학을 공부하는 불교도로 22살 때부터 16년간 살아왔다. 그간 불교철학에 관심을 갖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어깨 너머로 나름의 지식을 쌓았다고 생각했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지원을 결심했을 때에도 불교의 발원지에서 불교철학에 대한 이해를 보다 깊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었다.

4개월이 지난 지금 처음의 그 희망 이상으로 불교를 비롯한 철학적 사고의 틀을 확장되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 봤자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니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고, 다른 생각을 접하면 기존의 생각을 깨트리고 다시 세우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제는 "유레카"를 외치며 나름의 만족을 느낌과 동시에 또 깨져버릴 것이 예상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이 매일 떠오른다.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가지 이론이 있을 때, 보다 단순한 이론이 타당하다는 "오컴의 면도날"의 비유를 바탕으로 기존에 가졌던 생각들이 잘려나가는 경험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27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불교방송(BBS) 유튜브에서 이중표 교수님의 연기법 강의를 장장 10시간에 걸쳐 들었는데, 불교의 핵심 원리인 연기법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고 가장 큰 수확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오도송의 진정한 의미였다.

과학이 발전을 거듭하면 할수록 불교의 가르침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흥미롭다. 양자역학의 이중 슬릿 실험이 위 오도송을 이해하는데 핵심 키워드이다. 이중 슬릿 실험은 관찰자의 관찰이 입자의 움직임에 영향을 준다는 것으로 기존의 고전 물리학에서의 원자로서 존재하는 물질의 특성을 넘어서는 이론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 또한 관찰자인 "나"로부터 펼쳐지는 것이고, 이 의미가 하늘과 땅 사이에 나만이 존재한다라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나타낸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다른 종교에서는 유일신 사상이라 여길 수 있으나, 붓다라 불리는 고타마 싯다르타는 중생 모두가 그 본성을 깨달으면 스스로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며 자신을 신이라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것이 깨달음의 종교인 불교의 특징이고, 내가 불교를 공부하면서도 무교인 이유이기도 하다.

"하늘과 땅 사이에 나만이 존재한다"라는 어구에서 "나"는 각 개인을 의미한다. 외부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고, 어떤 것이 보이고, 어떤 냄새가 난다 해도 결국은 내가 자각하기에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자각하지 않으면 그것은 없는 것이고, 나아가 내 존재까지도 그러하다. 얼음과 물의 비유를 흔히 드는데, 내가 스스로 나라고 생각하는 실체는 흐르는 물 가운데 얼어있는 얼음이고 흐르는 물은 우주이다. 얼음은 얼음인가? 물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나 또한 그 실체가 없다는 큰 가르침이다.
불교에서의 "나"는 "무아"를 의미한다. 힌두교에서의 "나"는 "참자아"를 의미하는 것과 달리, 불교에서는 나 또한 어떤 조건에 의해 잠시 머물러 있는 우주의 일부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해한 원인과 결과에 의해 발현되는 "연기법"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다. 글과 말로 보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 구절 한 구절 꼭꼭 씹어 스스로 깨달아야만 가까워질 수 있다. 공자께서도 말씀하셨다. "배우기만 하고 익히지 않으면 그 또한 위태롭다."

이렇게 글로 장황하게 풀고 있으면서도, 한쪽에서는 나름의 뿌듯함과 동시에 한쪽에서는 또 깨질 생각이라는 마음도 함께 든다.

"말과 글이 끊어진 곳에 부처가 있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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