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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물질의 방 Feb 22. 2022

"한 문장의 선동"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괴벨스는 "선동은 한 문장이면 족하지만, 이를 뒤집기 위해서는 수백 장의 근거자료가 필요하고, 그 자료가 준비될 때쯤이면 모든 이들은 선동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고 전해진다."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해 폭침한 천안함 사건만 슬쩍 들여다봐도 이해할 수 있다. 천안함이 침몰된 후 선동가들은 여러 주장들을 펼쳤다.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는 근거 없는 터무니없는 주장들이었고, 그 주장들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 정부는 국외 전문가들을 포함한 합동조사단을 꾸려 오랜 시간에 걸쳐 북한의 소행임을 밝혀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선동가들의 주장은 계속되고 있다.



인간의 삶에는 언제나 선동가들이 함께해왔다.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아간 소피스트들이 그랬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처형받게 한 이들이 그랬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그럴듯하게 들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근거 없는 주장일 뿐이다. 허나, 동물로써의 인간은 본디 달콤하고 즉각적인 쾌락에 빠질 수밖에 없기에 선동가들은 대중들에게 원하는 것을 듣게 해 주며 그들의 이익을 취한다.

1줄에 불과한 선동은 오물과 같아서 단 한 방울만 떨어져도 그 물을 오염시킨다. 오염된 물을 정수시키기 위해서는 훨씬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불가에서는 연꽃을 정토화라 부른다.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그 위로 꽃을 피어낸다는 의미로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환하게 피어올라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을 담고 있어 불교의 상징적인 꽃이다.

1줄에 불과한 진실은 연꽃과 같다. 아무리 혼탁한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도 결국 진실의 꽃을 피워낸다.

선동과 진실은 두 가지 모두 믿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스스로 취약함을 알기에 어떤 존재에 기대고 싶어 하며, 이는 믿음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열길 물속은 알 수 있어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르기 때문에 권위에 기댄다. 동네 바보형의 이야기보다 명문대 교수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동가들은 그럴듯한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바탕으로 선동을 하게 된다. 선동은 인간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현자들은 옷을 갖춰 입어야 하는 이들을 경계하라고 하였다.



진실도 믿음에도 비롯된다. 선동가들이 기대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아닌, 바로 진리에 대한 믿음이다. 우주와 소우주인 인간의 만고불변의 원리가 바로 진리이고, 진정으로 우리 인간이 믿음을 가져야 할 대상이다. 진리는 복잡하지 않고 간결하며, 인류 역사 속에서 여러 성인들이 같은 이야기를 다른 언어로 표현해두었다.

그 이야기 또한 전수되는 과정에서 정치의 형태로, 종교의 형태로, 권위로 치장한 선동가들에 의해 위협을 받기도 했고, 진리가 선동가들에 의해 잘못 전파되고 있는 어이없는 상황까지도 벌어지고 있다. 특히 종교가 그렇다.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의 조계종 중심의 한국불교는 고타마 싯다르타의 가르침과는 매우 거리가 있다.

진리는 복잡하지 않고, 허황됨이 없으며, 애써 꾸미려 하지 않는다. 1줄의 진실 그 자체로 큰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 진리이다.

서두의 예시로 돌아가 보자. 괴벨스의 "한 문장의 선동"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100장의 논리가 아니라 "한 문장의 진실"이다. 이는 진리를 가까이하는 마음가짐으로부터 시작된다.




첫인상에 좌우되지 말라.
거짓은 늘 앞서 오는 법이고,
진실은 뒤따르는 법이다.

- 발타자르 그라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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