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不在)

by 여름

당신의 존재는 나에게 상처였다.

나을 새 없이 헤집어놓아서 덧나기만 하는 상처.


내 삶에서 가장 푸르게 빛나야 했던 시절에, 당신은 없었다.

나의 가장 큰 결핍이 당신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이제는 인정한다.


어렸을 때, 언뜻 흉가로 보일 법한 허름한 집에서 살았다. 형편 없는 자물쇠에 산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새 컴퓨터를 도둑맞기도 했다. 쥐가 나오기도 했고, 뱀이 나오기도 했다. 앞마당에는 김장김치를 묻어두고 꺼내 먹었. 형제가 많은 엄마 덕에 나도 사촌들이 많았다. 그 많은 사촌들과 함께 사계절을 지루할 틈 없이 보냈다. 들판에 핀 꽃을 따다 소꿉놀이를 하고, 페트병에 구멍을 뚫어 물총을 만들었다. 쥐불놀이를 하겠다고 빈 깡통을 주워다가 불을 붙였고, 하얗게 쌓인 눈밭을 뒹굴며 눈싸움을 했다.


손꼽히게 행복했던 순간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에 당신은 없었다.

당신은 늘 곁에 없었지만, 존재다.


내게서 무엇을 앗아간지조차 모르는 그 안이함이 나를 메마르게 했다. 마음의 빈 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할 지 몰라서 닥치는 대로 쏟아부었던 날들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삶이 다 하는 순간까지 아마도 '나'는 미완성으로 남을 것 같다. 마지막 조각인 당신의 부재로.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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