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부터 온 이야기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당신에게 물었다. 간절한 바람을 담아서. 그 순간에 당신이 내 손을 들었다면, 나는 모든 걸 감수하고 함께 갈 의향이 있었으니까. 내 비명과도 같은 질문에 당신은 잠시 호흡을 고르고 한숨 같은 한 마디를 던졌다. 그 안에서 당신은 이율배반적이었다고. 나는 그 단어의 뜻이 머리에 새겨지기도 전에 소리 없이 무너졌다. 끝내 자신의 안위를 선택한 당신을, 마지막까지 내 신뢰를 저버린 당신을 용서조차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고요하게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너무 오랜 시간을 끌어온 탓인지 어떠한 울음도 남지 않았다.
결국 당신도, 나를 이용하기 바빴던 거야. 당신의 편의를 위해 남기를 바랐던 거지.
그런 주제에 내가 느낀 이 실망과 좌절을 당신도 알고 있다고 말을 해서는 안되었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던 시간, 내가 쏟았던 애정과 신뢰. 그 모든 걸 무색하게 만들어놓은 당사자가 할 수 있는 말일 리 없으니까. 내가 쌓아온 모든 것들이 부정당한 내게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안 된다는 말은 잔인했고 당신의 편이 되어 달라는 말은 지독히도 이기적이었다.
치솟았던 분노는 어느새 스러지고 겨우 틀어막았던 마음의 공허가 걷잡을 수 없이 온몸으로 번져갔다.
결국 이 모든 일이 나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할게요.
나의 착각과 오만이 불러온 일인 것을, 인정할게요.
그렇지만 대체 나한테 왜 그랬어요?
그때 무슨 생각이었어요?
모든 게 무너진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요?
침묵으로 나를 저버린 당신에게?
나를 붙들 수 없었을 것이었다면 나를 말렸어야지.
내가 포기하도록 말렸어야지.
당신은 아니라 말했지만 내 세상에서는, 내가 살아온 세상에서는 그게 맞았어요.
그래요. 내가 헛된 꿈을 꾸었고 헛된 기대를 했죠.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고, 지긋지긋한 이곳을 떠날게요.
붙잡지도, 붙잡히지도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