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

by 여름

덮어두었던 기억들.

이제는 모두가 잊으라 말하는 것들.

구태여 나는 그것을 열어보았다.


핸드폰에는 습관을 넘어 광적으로 집착했던 녹음 파일들이 가득했다. 호출과 동시에 눌렀던 버튼.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설정해두었던 버튼들. 그때를 떠올리며 수많은 녹음 중 하나를 골라 틀어보았다. 오래전, 속기 알바를 했던 것이 이렇게 쓰게 될 줄 몰랐다. 약 50분가량의 녹음은 줄 바꿈 한 번 없이 A4 9장가량의 분량이 나왔다. 나의 한 두 마디를 빼고, 모두 그 사람 혼자 쏘아대는 말이었다.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나서야 내가 언제부턴가 숨을 멈추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굳이 이 작업을 실행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 녹취록은 어디에도 쓰일 일이 없는데. 괴로웠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상처만 받을 뿐인데. 나는 그저 또 다른 자해 방법을 찾아낸 것이었다. 내 스스로를 해할 방법이 모두 묶여 버렸으니, 기어이 다른 방법을 찾아낸 것이었다. 사람들은 한 번씩 내 손목이나 팔을 살피고,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우려했으니까. 나는 드러나지 않는 방법을 찾고야 만 것이다.


내가 그동안 그걸 들추지 않았던 것은, 당연하게도 괴롭기 때문이었다. 괴로울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잊히지 않는 목소리가 나를 옭아맬 것을 알았고, 그 상황으로 돌아가서 무기력하게 움츠러들 것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마음의 상처나 고통은 몸에 난 것과 다르게 다른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 않으니까. 혹여나 누군가 물어도, 괜찮다는 말로 선을 그을 수 있으니까.


어째서 이렇게 자신을 몰아세우는 방법만을 찾게 된 걸까.

어떠한 이유인지도 모른 채, 나는 점점 고요하고 깊은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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