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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Sep 16. 2020

달에 마음을 주는 이유

무조건의 다정함


 ‘달을 좋아하시나요?’

 이 질문에 나는 "네."라는 단순한 대답이 아니라 "그럼요. 아주 애정 합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달에 관한 애정은 내 유년기부터 이어진다. 어릴 적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둥그런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께서는 갖은 둥근 것의 이름을 내 얼굴에 비유하셨다. 찐빵, 쟁반(꽃이 중앙에 그려진 은색 양은 쟁반이다.), 오백 원‥‥‥. 이 중에 ‘달덩이’가 있었다. 나는 달덩이로 불릴 때마다 컴컴하고 좁은 마당에서 까치발을 들고 올려다보던 달을 떠올렸다. 태양도 아니면서 환하게 빛나던 것. 노랗기도 희기도 한 빛은 장난치듯 어린 마음을 간질였다. 나는 ‘달덩이’였기에 하늘에 떠 있는 달덩이를 밤새 찾았고 좋아했다.


 물론 나뿐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달에 마음 한 번씩 주지 않았을까? 태양은 너무 환해서 직접 눈으로 볼 수 없고, 우주 공간에 수없이 떠 있는 별들은 도시의 밤하늘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직접 볼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밝고 가까운 것은 달밖에 없으니, 살면서 수없이 눈과 마음에 담는 것이다. 그래서 달에 관한 노래, 글, 사진이나 그림은 인터넷에 잠깐 검색해도 순식간에 쏟아진다. 또 과거 인간이 달에 발을 딛기 위해 노력을 쏟아부은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달에 관한 애정과 열정이 없는데 긴 연구를 수년간 했을 리 없다. 달 표면에 발자국을 새긴 지 수십 년이 지난 요즘에도 ‘슈퍼문’, ‘블러드문’, ‘핑크문’ 같은 ‘○○문’과 관련한 각종 기사가 인터넷을 도배한다.


 달을 보며 많은 이가 입을 모아 예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달이 단순히 예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예쁘다는 생각은 아주 순간적이라서 눈을 깜빡이는 그 몇 초 사이에 사라진다. 이후 이어지는 측은함과 낮의 해와는 다른 따뜻함이 내가 느끼는 진짜 달의 매력이다. 어릴 적에는 마음을 간질거리게 하는 게 매력이었는데 자라면서 마주하는 달에는 더 깊은 매력이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매력은 자꾸 달을 보고 싶은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밤 산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달 때문이다. 산책이나 정처 없이 걷는 일을 원래 좋아하긴 하지만 밤에 걸으러 나가는 이유의 가장 큰 이유는 달을 보기 위해서니 이미 말을 다 했다고 본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오늘은 달이 어디에 떠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한다. 당장 달이 눈에 안 보인다면 ‘오늘은 조금 걸어야 보이겠구나’하고 달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종종 하늘을 올려다보며 달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달에 마음을 홀랑 빼앗긴 사람처럼 다닌다.


 하루는 달이 보이지 않던 날이었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조금 걸으면 보일 것이라는 생각에 천천히 걸음을 디뎠다. 그런데 그날은 유독 걸어도 걸어도 달이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것이다. 이제 막 가을이 온 듯 바람도 선선하고 하늘도 깨끗했는데, 중간에 당연히 걸려 있어야 할 빛은 어디로 갔는지 텅 비어 있을 뿐이었다.

 “오늘은 꽝이다.”

 상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즈음에는 기분 좋게 만드는 선선한 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졌다.

 글의 서두에 잠깐 말한 것처럼 나는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 하지만 마당은 마당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좁은 편이다. 이 집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다. 아이였을 때보다 키가 컸으니 예전보다는 마당에서 달을 보는 게 수월해졌다. 하지만 달은 지붕 뒤로 숨기 일쑤라 너른 하늘에서 달을 보려고 자주 밤에 나갔던 것인데 이렇게 허탕을 치다니. 집에 들어가서 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렇게 집과 이어지는 오르막을 오르고 있었는데 문득 뒤통수가 따가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입에서 ‘아!’ 하는 탄성이 나왔다. 맑은 하늘 가운데에 걸음마다 찾았던 달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달은 나를 한참 마주하며 말했다.

 “나는 여기에 계속 있었어.”


 내가 말한 측은함과 따뜻함은 여기서 나온다. 위성으로 행성 하나를 돌며 자기가 있고 싶은 자리에 영원히 붙박여 있지 못하고 동쪽에, 서쪽에 빙글빙글 도는 신세가 나와 비슷해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스스로 ‘왜 살아가야 하나’라는 질문에 진짜 답을 내리지 못해서 ‘그냥 살지, 그냥’ 이런 바람 같은 대답으로 한 자리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세상을 빙글빙글 떠돌 듯 다닌다. 가끔 이러다가 튕겨나 ‘멀리, 멀리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는 게 아닐까’라는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달은 나처럼 측은한 신세임에도, 나보다 큰마음을 지녀서, 나같이 추운 마음들을 달래려 한다. 뜨겁고 눈 부신 태양의 빛을 빌려 적당한 온도와 은은한 빛으로 만들고는 추운 마음을 가진 이들의 등허리와 머리를 찬찬히 쓸어주는 것이다. 쓸어주고 위로하는 것이다. 우리가 달의 존재를 눈치채든 그렇지 않든, 어두운 밤에는 자신이 분주히 빛을 내려 춥지 않게 해주겠다고. 이러니 달에 마음을 온전히 줄 수밖에 없다.


 나랑 비슷한 신세면서 너는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졌냐고 물으면 그저 다정하게 나를 바라본다. 이렇게 무조건의 다정함과 따뜻함으로 나를 위로하는데 내 마음이라도 내어주지 않으면 나는 무뢰배 같은 인간이 될 것이다. 누가 무뢰배가 되고 싶을까. 그러니 내가 달에 마음을 줄 수밖에.




커버 이미지 출처: Photo by Aron Visual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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