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희 Sep 16. 2020

심심한 인간

케이블카에서는 어떤 대화를 나눌까?

 오늘도 바다에 혼자 갔습니다. 원래는 '거북섬'이라고 불리는 바위섬에 자리 잡고 앉아서 바닷바람을 쐬려고 했는데, 오늘은 이곳을 모두 막아놨더군요. 모처럼 찾은 바다였는데 그냥 돌아가기 아까워서 해변으로 향했습니다. 해변은 올해 해수욕이 모두 끝났다고 알려주듯 흙을 커다란 기계로 온 곳에 엎어 놓은 상태였습니다.     


 앉아있을 만한 적당한 자리를 찾던 차에 불룩하게 쌓인 모래더미 앞에 나무 그네가 두 개 있었어요. 저는 놀이터에서 그네를 가장 좋아하던 아이였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해서 모래사장에 발을 푹푹 찍으며 그네에 다가갔습니다. 조금 더 더운 여름이었다면 바다를 찾은 많은 이들에게 양보해야 했을 자리였지만, 오늘처럼 한가한 바다에는 오롯이 저의 자리였어요.     


 그네에 앉아서 까딱, 까딱 다리를 움직여 스스로 그네를 밀고 있었는데 멀리 허공에 떠 있는 케이블카가 보였습니다. 케이블카는 작은 종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아주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중이었어요.     


 문득, 끊임없이 움직이는 케이블카에 ‘아무도 안 타고 있을까? 타고 있다면 안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주 뜬금없는 궁금증이었습니다.     


 저는 케이블카에 대한 경험을 아무리 떠올려도 한 번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기억마저 흐릿해서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누구와 주고받았는지 떠오르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궁금해졌어요. 저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이거 타고 저녁 먹으러 가자.”

 “뭐 먹을래?”

 “따끈한 국물이 있는 건 어때?”     


 “아, 생각보다 무섭네.”

 “이거 중간에 멈추면 어떡해?”

 “야, 무서운 얘기 하지 마.”     


 “사진 예쁘게 안 나온다.”

 “오늘 좀 흐려서 그런가 봐. 이쪽에서 찍으면 그래도 좀 낫지 않을까?”     


 제가 한 상상은 이 정도가 다였습니다.     


 아무래도 “저 바닷속에 케이블카를 따라서 하염없이 헤엄치는 물고기가 있을까?” 따위의 대화는 아무도 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터무니없는 상상을 걷어내고 남은 건 아주 심심한 것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저 제가 평범하고 심심한 인간이라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상상을 하는지도 모르겠네요. 순식간에 저는 한가로운 해변의 그네를 차지한 기쁜 마음에서 어쩐지 쓸쓸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후에 케이블카를 타게 되는 날에 이 메모를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함께 탄 사람과 저녁거리, 고소공포증, 못 나온 사진같이 심심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이야기 끝에는 오늘 했던 생각을 말할 겁니다. 상대방은 “맞아, 인간은 심심해. 그리고 너도. 그리고 나도.”라고 나의, 우리의 심심함을 심심하게 인정해주는 사람일 테니까. 그러면 쇠와 유리로 된 그 작은 공간에는 심심한 사람 둘과 심심한 이야기들로 꽉 채워서 온기가 돌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면 그때 저는 ‘아, 심심함도 둘이면 온기가 있는 거구나’ 깨닫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에 마음을 주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