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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Sep 12. 2020

달에 마음을 주는 것

(2020-09-09 Instagram)



며칠 전 밤 산책을 나왔습니다. 요즘은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시간이 늦은 밤 밖에는 없으니까요.


내 동네를 넘어 옆 동네로, 다시 나의 동네로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오른편 하늘에서도 왼편의 하늘에서도 흔하게 떠있던 달을 볼 수 없었어요. ‘오늘은 달이 없구나’ 처음엔 선선했던 산책길이 쌀쌀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나는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집과 맞닿은 오르막을 올랐습니다. 그러다 문득 등 언저리가 뜨끈해지는 게 아니겠어요?


그 온기에 이끌려 뒤를 돌았습니다. 뒤편의 하늘에 그렇게 찾던 달이 있었어요. 자신은 계속 여기에 있었다고 말하는 눈을 한참이나 마주 보고서야 나는 선선한 바람을 타고 걸음을 옮겼습니다.


뜨거운 태양의 열을 가지고 와 자신만의 은근한 따뜻함으로 만드는 힘. 그 온기로 어두운 시간에 깨어있는 이들의 등을, 머리를 쓸어주는 마음. 이런 것이 내가 달에게 마음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인가 봅니다.


오늘은 날이 흐립니다. 당장에 은근한 온기가 필요한데 하늘에는 희뿌옇게 보이는 구름만 바람에 설렁설렁 움직일 뿐이에요.


아마 오늘 밤에는 달이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나 봐요. 하는 수 없이 내 머리 위 어딘가에는 달이 떠있다고 생각하며 희뿌옇게 번진 마음을 달래야겠습니다.


그래도 달이 보고 싶어요. 달만의 온기로 마음을 달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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