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호수에 고인다.
나는 내 방이란 걸 가져본 적이 없다. 우리 집은 내 방 하나를 내어주기에는 너무 좁아서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할머니와 함께 방을 쓰고 있다. 스무 해가 넘도록 내 방을 가진 적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나는 ‘나만의 공간’, ‘나만의 방’을 가지고 싶다는 욕구를 기본적으로 지니게 됐다. 이런 내게 자신이 건너온 여러 방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 ‘삶이 고이는 방, 호수’를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이 책은 ‘언리미티드에디션12-서울아트북페어2020’에서 만났다. 먼저 ‘언리미티드에디션12-서울아트북페어2020’를 이야기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가 이 행사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고 알게 됐다. 원래는 서울에서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는 도서 행사였지만 올해 전염병으로 인해 온라인에서만 진행한다고 했다. 이건 지방에 사는 내가 서울에서만 열리는 행사를 접할 좋은 기회였고 냉큼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갔다. 정말 많은 책 사이에서 이건 무조건 사야지 하는 책 몇 권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함수린 작가의 ‘삶이 고이는 방, 호수’였다.
처음에는 표지가 가장 눈에 띄었다. 도시의 주택가와 호수 사진을 이어놓은 것인데 이를 보고 도대체 집이랑 호수가 무슨 관계인가 했다. ‘삶이 고이는 방, 호수’, 제목을 보고서야 호수의 의미가 물이 고인 호수(湖水)라는 의미와 한 가구가 사는 방이나 집을 말하는 호수(戶數)라는 것을 깨달았다. 호수(戶數)에 삶이 고인다니,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고인다는 표현으로 호수(湖水)와 연결한 것, 개인의 삶이 묻어날 수밖에 없는 방에 그 삶이 고인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맘에 들었다.
책은 작가가 옮겨 다닌 여러 집과 그곳에서의 생활에 대해 다뤘다. 여러 원룸텔과 원룸, 투룸을 거치는 작가의 시간을 훑으며 느낀 것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그 환경에 맞춰진다는 것이다. 작가는 적은 돈으로 집을 구하다 보니 개인적인 방은 있더라도 어쨌든 사람들과 부대껴야 했다. 공동 부엌에서 라면 하나를 끓여 먹으려고 해도 가스레인지를 쓰기 위해 눈치싸움을 해야 했고 공동 욕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아침, 저녁으로 욕실에 사람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부지런을 발휘해야 했다. 그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자신이 사는 집에는 머무는 시간만큼의 추억만 모이는 게 아니라 그 환경에 맞추며 생기는 삶의 습관도 함께 고여간다.
그리고 유독 공감 가는 부분이 있었는데 집에는 없는 장점을 가진 곳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 그랬다. 작가는 투룸에서 친구와 살며 분명 이전보다 나은 공간에서 살게 됐지만, 마음은 아니었다. 좁은 방은 갑갑한 작가의 마음을 더 갑갑하게 만들었고 작가는 이를 피하려 집을 나와 숨 쉴 곳을 찾아다녔다. 집을 나와 숨 쉴 곳을 찾는다니.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내 이야기를 써둔 것 같다는 착각을 했다. 이전에 쓴 글에서 나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사는 집은 내 마음이 누울 수 없어서 밖에서라도 그런 공간을 찾는 것이라고. 자신만의 공간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은 어쩌면 닮은 데가 많은가 보다.
‘삶이 고이는 방, 호수’를 읽으며 단순히 남의 이사 기록만은 아닌 것 같다고 느꼈다. 작가의 기록은 독립을 꿈꾸는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내가 이렇게 느낀 것은 아마 각자의 삶은 다 어딘가 조금씩은 맞닿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래에 나도 집을 옮겨가며 생활한다면, 아니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사는 곳에 대한 기록을 많이 남겨두는 게 좋겠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처럼 내 기록도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