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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차로 첫 장거리(?)탄 날, 그리고 오늘

2020년과 2023년

by 방구석 공상가

나는 왜 차를 샀을까? 뭐에 씌였던 것 같다. 평소에는 관심을 가지고 본 적 없던 지나가는 차들 하나하나를 살펴보고, 심심하면 차종을 찾아봤다. 어쩌다 그랬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심지어는 운전 경력이 많지도 않았다. 면허경력은 8년, 하지만 실제로 운전을 해 본 횟수는? 대략 10번? 20번? 정도 되지 않았을까.


그냥 차를 사고싶었다. 조건은 딱 하나. 소형 SUV. 왜냐면, SUV는 타고 싶은데 중형이나 대형은 비싸니까.

차를 사던 당시에는 소형 SUV가 한창 흥할때라 선택지가 많았다. 막 트레일블레이저가 출시된 시점이었고, 셀토스, 코나, qm3, 트랙스, 니로.. 하지만 내가 선택한 건 그중에 가장 인기가 없는, 지금은 단산마저 된 스토닉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느낌이 좋았다. 운전석에 앉는 순간 이 차가 내 차구나 하는 생각? 또 가장 빨리 받을 수 있는 차이기도 했다. 다른 차들은 다 몇개월씩 기다려야 하는데, 스토닉은 지금 당장이라도 가져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차들이 다 늦게나오는 와중에 이 차만 빨리나온다고, 그것도 전월 재고가 남아있다고 하면 "안팔리나보네"라고 생각했을텐데.. 그 때는 재고 할인을 해준다고 하니 그냥 좋았다. 거기다 이런저런 할인을 엄청 해준다고 해서, 결과적으로 요즘 나오는 캐스퍼 보다 싸게 샀다.


그렇게 싸게 산 차에 돈을 참 많이도 썼다. 락폴딩(차 문을 잠그면 사이드미러가 자동으로 닫히는 기능)도 넣고, 거금을 주고 유리막코팅을 하고, 때때마다 디테일링세차를 맡기고, 소모품도 자주 갈고..


그나마 차에 필요한 잡다한 물건들은 마침 생일 언저리에 차를 출고한 덕에, 생일선물로 한 살림 마련했다. 그랬으면 큰일날뻔.


내 집은 꿈도 꾸기 힘든데, 내 차는 살 수 있어서 그랬던것 같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써보는 거금. 서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내 차'가 생겼다는 만족감. 할부를 덕지덕지 껴서 실제로 내 소유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앞바퀴 한쌍정도 밖에 안되는데도 그렇게 좋았다.

이제는 차를 탄 지 4년 쯤 됐고, 주행거리도 어느덧 5만을 바라보고 있다. 연식과 주행거리를 보면 알겠지만, 정말 많이 타고 다녔다. 틈이 나는대로 시간이 나는대로.


이 글은 화성시에 위치한 궁평항에서 쓰고 있는데, 차를 받고 처음으로 장거리(?)운전 차 온 곳이다. 당시 살던 곳에서 1시간 정도 걸렸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옆동네 마실 기분으로 올 수 있는 거리지만, 그 때는 국토대장정을 할 때 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물론 처음이 어렵지, 이제는 편도로 400km를 달려야 하는 본가에 매년 두번씩 꼬박꼬박 운전을 해서 다녀온다. 계절별로 한두번 정도는 3시간 이상 걸리는 곳으로 여행도 다닌다.


차를 끌고 처음 본가로 갔을 때는, 무슨 장원급제해서 가마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괜히 벅차오른다(?) 물론 이 차를 탄 지도 꽤 지났기 때문에, 이제는 차를 탈 때마다 뿌듯해 하지는 않는다(처음에는 그랬다). 그래도, 첫 장거리를 온 곳에 몇년만에 다시 오니 새삼 이 차를 타고 처음으로 혼자 드라이브를 했을 때, 그 때의 기분이 다시 떠오른다. 장소와 상황이 주는 매력이라고 해야할까. 그 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글을 쓰면서 든 생각인데,

내가 그렇게 차를 사고 좋아했던 건 "차"를 사고 굴릴 수 있다는 게 성공의 지표였기 때문인 것 같다.

지방에서 올라와 월세살이를 하는 내가, 그래도 적당히 원하는 것 먹고 원하는 것 사면서 적당한 차도 굴린다는 거.

서울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어떠한 지표.

그래서 갈수록 첫 차에 관심을 잃어가고, 자꾸 더 크고 비싼차에 눈을 돌리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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