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서울에 오다
한달살이가 6년+a살이가 돼버렸다
2017년 9월. 28인치 캐리어 하나. 서울행 무궁화 열차를 탄 내가 가진 짐의 전부였다.
태어난 곳이 서울/경기인 사람이라면 전혀 이해하지 못할, 태어나보니 서울/경기 외 다른 지역이었다면 충분히 공감할 얘기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이 얘기를 하면,
서울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본다.
"무궁화? 언제 올라온거야? 80년대?"
지방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고생했네"
KTX를 타도 되는데 시간이 2배 이상 걸리는 무궁화 열차를 선택한 이유는 두가지였다.
1. 무궁화 열차는 객석이 넓고 승객이 많지 않기 때문에 큰 짐을 들고 타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2. 싸다(KTX와 비교하면 1/3~1/4 수준)
사실 두 번째 이유가 더 컸다. 9개월간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내게 6만원은 너무 큰 돈이었으니까.
지방에서 태어나 평생을 지방에서 살던, 태어나서 서울이라곤 딱 5번정도 가본 내게 서울행은 큰 도전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달만 살고 내려와야지. 생각? 계획? 했다. 이유없이 서울로 무작정 향한 것도 아니고, 이유를 만들어서 갔다. 특허청에서 주관하는 실무자 양성교육. 서울에서 이 교육을 듣고 내려가면 바로 취업할 곳이 생기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했으니.
처음 자리잡은 곳은 구로디지털단지 역 앞 고시원이었다. 왔다갔다 차비가 부담스러워 인터넷으로 사진만 보고 결정한 곳. 입구에 섰을 때 약간 당황했다. 조용하고 한적한줄 알았더니 (서울에 그런게 어디있겠냐만은) 지하는 노래방과 마사지샵, 1층은 식당과 술집, 2층이 고시원으로 되어있는 건물이었다.
이제와서 새로운 곳을 찾을 수도 없고, 고시원이니 한달만 버티면 되겠지.. 들어가서 생전 처음 마주한 고시원 내부는 더 충격적이었다. 그나마 내가 살던 곳은 사장님이 상주하며 관리를 하시기 때문에 깨끗한 편이었는데, 깨끗하고 좁았다. 내 방이라며 문을 열었는데, 양팔을 옆으로 펼치면 벽과 벽이 만져졌다. 침대는 살면서 누워 본 어느 자리보다 좁았다. 심지어는 우리 집 쇼파가 더 넓은 것 같았다.
아니야. 불평하지 말자. 여기에 익숙해지자. 서울까지 왔잖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남이라는 알을 깨고 나왔다는 기분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살아보니 나쁘지 않았다. 나중에는 그 좁은 공간에서 잠도 자고, 공부도 하고, 영화도 보고, 심지어는 요리도 해먹었다.
무엇보다 고시원의 불편함은 서울에 산다는 편리함으로 금방 채워졌다. 태어나서 처음 살아본 서울은, 좀 과장해서 "신세계"였다.
처음 자리잡은 구로디지털단지는 지금 생각해도 여러 곳으로 접근하기가 좋은 곳이었다. 20대 중반이 가는 곳이 뻔하지 않은가? 홍대, 신림, 강남. 모두 30분 내외로 접근할 수 있는 곳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강공원도 가보고, 한강라면도 먹었다. 매일매일 친구들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지 않으면 공부를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왜 공부를 했나 싶지만 학생때의 관성이 남아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한달만 살다 떠나는 게 아쉬워졌다.
그래서 막연히, 취업이 되면 취업을 해 볼까? 서울에서 취업이 되려나? 되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한달짜리 교육이 끝나기 직전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한달만 서울에 더 있어볼게. 여기서 취업준비 한번 제대로 해보려고. 한달 안에 취업이 안되면, 그 때 내려갈게"
우리 부모님은 너무나도(?) 경상도 사람이기 때문에, 다 키운 자식이 기반도 없이 서울에 가는 걸 달가워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달이라는 기간제한을 두는 강수(?)를 둔 것이다.
내 말을 들은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해봐."
당시에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태어나고 자란 경남으로 정말 한달만 살고 내려갔다면?
너무 의미심장하게 말한 것 같다. 어느 비극 소설의 서론처럼 보이네.
사실은 그 때 서울에 남은 건 참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24인치 캐리어 하나로 시작한 짐은 늘고 또 늘어서, 이제 이사를 하려면 짐차를 2대는 불러야 할 정도가 됐다. 이사비용(KTX비용) 6만원에 벌벌 떨던 내가, 얼마 전 이사를 할 때는 100만원이 넘는 돈을 썼다.
아주 훌륭하지는 않지만, 이정도면 잘 하고 있는거라며 만족하다가
문득 내 얘기를 하고싶어졌다.
나는 서울에서 살고있는 평범하고 통상적인 30대 회사원. 지방에서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