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밥은 먹고 살아요
20대 초반, 한 모바일 게임에 빠져서 모임에 들어간 적이 있다. 당시 전국으로 퍼져있던 모임은 축소되고 또 모여서 현재 내 서울 인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첫 모임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법대생???????? 전혀 아닌것 같은데"
그렇다. 법대생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가지는 일반적인 이미지가 있다. 안경을 쓰고, 잘 꾸미지 않고, 딱딱해보이고, 찌들어있고.. 적다 보니 내 이미지에 너무나도 부합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첫 인상으로 법대생임을 유추하는 사람이 몇 없었던 걸 보면 내 이미지가 그래도 법대 출신 중에서는 세련된 편이구나 하는 자기위안(?)을 한다.
사실 지금은 이미 사회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법대 졸업하면 뭐 해서 먹고 살아요?"라는 질문을 받지는 않는다. 이미 내가 어떤 업종의 일을 하고 어느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기 때문. 다만 이렇게 만난 사람들도 나중에 내 전공이 법이라는걸 알면 깜짝 놀라곤 하는데..
얼마 전 놀랍게도 이 질문을 다시 한번 받았다.
법대 나오셨어요? 그럼 변호사에요?
아니요^^.. 그냥 회사 직원으로 다녀요.
아... 법대나왔는데 변호사 준비 안하셨어요?
그러게요 그때 할걸 그랬어요^^ 근데 뭐 지금도 만족해요
너무 오랜만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보니 또 새롭고 신선했다.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대답에는 전공에 관한 질문을 차단하는 나름의 노하우(?)가 녹아들어 있다.
사실 법대를 다니던 당시에는 나도 졸업을 하면 뭘 먹고 사는지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장 내일 내가 뭘 할지도 잘 몰랐으니까. 주변을 둘러보면 대부분은 법원직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외에는 경찰, 교정, 행정 등을 준비하고 있었다. 즉 대부분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말. 내 동기는 100명정도인데 (법대는 단대-단과이다 보니 사람이 좀 많다) 그중에 90명 정도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 일부는 4학년 쯤 되어서 공기업을 준비하거나, 또 일부는 전문직 자격증(내가 학교를 다니던 당시에는 사법고시가 이미 폐지되었기 때문에 사시를 준비하는 사람은 없었다)을 준비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나는 호기롭게도 그 중에 무엇도 선택하지 않았다. 물론 공무원시험을 중간에 준비한 기간은 있지만, 동기들에 비해서는 그 기간이 절대적으로 짧았다. 몇개월 해보고 시험 두세번 정도 치고나서,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하는 확신을 했달까.
결과적으로 나는 현재 사기업(왜 사기업이라고 하는지는 아래에서 설명)에서 마케터로 근무하고 있는데, 내 근황을 아주 오랜만에 들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마케터? 니가? 법대나오지 않았어? 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포인트는 '법대나오지 않았어?'인데, 사람들의 생각에는 법대에서 마케터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실제로 건너건너 들려오는 동기/선후배들의 소식과 다른 법대출신을 보면, 나와 같은 경우가 상당히 특이한 것 같기는 하다.
보통 법대를 나오면, 이렇게 먹고 산다.
1. 공무원, 공기업 등 '공'이 들어가는 직업을 가진다.
2. 사기업 중에서도 규모가 있는 곳에서 법무팀, 인사팀에 소속되어 있다.
3. 변호사, 노무사, 변리사, 법무사와 같은 자격증을 취득한다.
4. 법무법인 또는 노무법인에서 송무/실무를 담당한다.
5. 특허법인에서 상표, 디자인을 담당한다.
6. 전공을 버리고 전공과는 무관한 길을 택한다
그 비율로 보자면 1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2와 4, 그 다음이 3과 6, 마지막이 5 쯤인 것 같은데, 이처럼 '공기업'과 'OO법인'에 소속되는 특성 때문인지 그 외의 기업들은 '사기업' 또는 '그냥 회사'라고 칭하는 버릇이 생겼다. (나혼자) 재미있는 포인트는 내가 '사기업'이라는 단어를 뱉었을 때 법대생들은 아~하고 바로 이해를 하지만 비법대생(법 외의 전공자를 일컫는 법대생들의 단어)들은 '그게 뭐야'라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
그런데 생각해보면 법대생이 뭘 먹고 사는지에 대한 질문이나 인식은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대학을 졸업하고 본인의 전공을 100% 살려서 일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당장 마케팅을 하는 내 주위만 보더라도, 광고홍보학과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오히려 마케팅과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무슨 공학과, 무슨 교육과, 또는 음악, 미술, 창작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마케팅을 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체육했던 사람은 없는듯?)
그럼에도 법대를 나오면 뭘 먹고 사냐는 질문이 절로 나오는 건, 법대가 가진 이미지가 워낙에 세서가 아닐까. 법이 워낙에 어렵다 보니 살면서 법학을 공부하게 되는 일은 드무니, 그 어려운 법을 한번 공부해놓으면 끝까지 법으로 먹고 살거라는 생각이 자리하기 때문은 아닐까.
헉 반대로 '법'하면 떠오르는 직업이 판검사, 변호사 밖에 없는데 이 사람은 변호사를 할 것 같지는 않아서인가 ?! 이게 더 맞을수도 있겠다는 슬픈 예감이 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