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타메일의 슬픔
나는 유부남들의 하소연을 듣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아마도 작년 초였나, 초등학교 동창인 유부남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었다. 쌍둥이 남아 둘을 키우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하소연을 한참 들어줬다. 주머니 사정이 상대적으로 넉넉한 내가 저녁식사 값을 흔쾌히 치렀다. 친구의 ‘생의 최전선에서의 찌듦’에 비하면 결혼 상대를 찾으려 만남의 굴레를 반복하는 나의 신세는 그다지 고생도 아닐 터였다. 나는 언제든지 삶의 형태를 선택할 수 있고, 반면에 그는 결혼하여 책임질 입이 여럿인 가장이라는 결과를 무를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함께 살아온 동네를 제법 걷다가 횡단보도를 만났다. 육중한 트럭이 빠르게 지나갔는데, 타이어에 밟힌 배수구 뚜껑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르르 떨었다. 나는 이런 것에 공포를 느끼는 편이다. 회전하는 무거운 유리문이나 박자가 어긋나는 에스컬레이터 같은 것들 말이다. 어릴 적 486 컴퓨터로 몇 번 플레이 하지 않고 어려워서 포기했던 2D 도트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가 나의 이런 조건반사에 영향을 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친구에게 조금 뒤로 오라고 했다. 영화 <데스티네이션>에서 저런 거 튀어 날아와서 죽는 거 기억나지 않냐며 섬뜩한 얘기를 지껄였다. 친구는 공허한 눈빛으로 답했다.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죽겠다고.
친구를 긍정적인 사고의 세상으로 회유하기는커녕, 나는 일리가 있다고 동조했다. 친구야 그거 게임에 나오는 대사 같다. 무슨 게임? <다키스트 던전>이라는 게임 해봤어? 어 해봤지, 아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
친구와의 대화를 오래도록 생각했다.
나는 회사 생활이 지독하게도 싫었다. 싫지만 어디서든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그 어디서든 곧 퇴사하고 싶어졌다. 그 조직에서, 자신의 위치에서 할 만큼 최선을 다했기에, 퇴사를 생각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경력의 오랜 공백을 마치고 두 번째 회사로 공공기관을 선택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제는 나의 가정을 꾸리고 싶어서였다. 어느 공기업의 면접관은 10년 뒤 모습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것이라는 나의 대답을 비웃었다. 나는 대기업을 다니던 시절에는 오히려 가정을 꾸릴 각오가 전혀 서질 않았다. 연말마다 타의로 회사를 그만두는 윗사람들을 봤기 때문이다. 모두가 지켜야 할 가정이 있었다. 나는 사내 정치나 아부를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조직이 나를 지켜주는 곳. 어떤 사태나 질병으로 내가 무능해져도 나의 신분이 보장되는 공공기관에 속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뒤로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오랫동안 나는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업무와 사람과 기형적인 조직문화가 너무 싫었다. 정년 보장이라는 장치 외에는(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강력한), 장점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모든 것을 감내할 각오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각오를 발휘할 기회가 내게 오지 않았다. 영영 사용 시점이 도래하지 않아 내겐 쓸모없는 육아휴직 제도, 나는 결혼하지 못 하는 남자.
그래서 지금은 언제든 잘릴 수 있는(혹은 여러 방법으로 직원을 내보낼 수 있는) 그런 조직으로 다시 이직하여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결혼하지 않았으니 이런 선택도 할 수 있는 거다. 지켜야 하는 몸덩이는 오직 나에게 속한 것 하나뿐이니 홀가분했다. 여차하면 기백만 원을 벌어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곳에서도 열심히 일했다. 주도적으로 일하고 체계를 개선하고 사업을 따내고 성과를 만들었다. 그런데 어떤 임원이 나에게 주말에도 나와서 일해달라 했고 나는 대답했다. 그렇게까지 일해야 하면 저는 여기 안 다닐 거예요.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히 다하며 살면서,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이제는 회사에서 잘려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지킬 처자식 때문에 부당한 처우에도 한마디 못 하고 삭히는 다른 직원을 보며 나는 이런 못된 생각을 하는 거다. 해괴한 일하는 방식과 멍청한 나르시시스트들을 겪을 때 이런 상상을 한 번씩 해보는 거다. 나의 모친은 나의 퇴사와 이직을 평생 반대해 오셨다. 그것이 제대로 된 부모의 역할일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서 나를 잘라버렸다면, 나는 외려 기쁜 마음으로 훌훌 떠날 수 있는 거다. 그런 경우가 닥친다면 나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퇴직급여를 갖고 어딘가로 ‘한달살기’를 떠날 것이다. 부모도 나를 막을 핑계는 없으리라. 사장이 자신의 사업장에서 나를 버리겠다는데 어쩌겠습니까요. 어머니. 잠깐 쉬었다가 다시 취업할게요, 이러는 거지 뭐.
인생에 그런 시련이 닥친다면, 나는 석가모니의 말씀대로 떠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거다. 인생은 폭풍 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나는 혼자서 비바람을 뚫고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거니까. 그래 봐 봐, 알고 보면 결혼하지 못 한 내가 의외로 이만큼이나 무적이란 말이지.
2023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