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3이었던 나는 막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입 준비를 하던 중 3 내내 집 안 분위기가 딱히 좋지는 않았다. 그 해 들어, 부모님이 예전보다 더 자주 다투시는 모습에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시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어머니를 통해서 부모님의 이혼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당시, 1~2년간 자주 다투시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이혼하실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터라 아주 조금은 예상했었지만 그래도 그게 그렇게 빨리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조금 더 놀랐던 사실은 그 해 초반에 이미 이혼을 하셨는데 나의 고입 시험 때문에 숨기고 계시다가 시험 이후에 말씀하셨었다는 것이었다. 이혼 소식을 전하며 미안해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이렇게 말한 기억이 있다.
‘괜찮습니다. 두 분의 뜻이 있는 거니까요.’
그때는 그저 최대한 의연한 모습을 보이는 게 부모님을 위하는 길이라는 생각에 그랬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슬픈 소식에는 그냥 울어도 되고 막 슬퍼했어도 됐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이렇게 말하는 게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사실,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이 정도 일은 이겨낼 수 있다고 스스로 믿었다.
나 스스로는 부모님의 이혼을 받아들이고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새롭게 사귄 친구들에게 굳이 그런 이야기를 먼저 꺼낼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사실을 모르는 친구들도 있다.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꺼낸 건 대학교에 입학하고 짧은 시간에 굉장히 가까워진 친구에게 단둘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하던 도중 털어놓은 게 전부였다.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꺼내지 않은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무도 묻지 않는데 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었지만 친구들 앞에서 부모님을 떠올리며 ‘이혼’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지만 해도 눈물이 솟구칠 것 같은 경험을 두세 번 하고 나서는 더더욱 그 사실을 입 밖에 꺼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제 부모님의 이혼은 내게 아무런 아픔도, 가슴속에 묵혀 둔 걱정도 아닌 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나의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음에도 그 어떤 부모보다도 부모의 역할을 잘해주셨기 때문이다. 이혼 후 1년이 지난 후, 한두 달에 한 번은 형과 함께 다시 아버지를 만나서 밥도 먹고 용돈도 받았다. 대학을 대구로 가면서 이 패턴은 바뀌긴 했지만 대학 기간 내내 대학교 등록금과 적지 않은 용돈을 모두 지원해주셨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이혼하시면서 아무것도 없이 다시 맨손으로 모든 걸 시작하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직 어렸던 형과 나를 길러내시며 집안 살림, 아르바이트와 함께 여러 도시를 거친 수 번의 이사 등 녹록지 않은 삶을 견뎌내셨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 상황을 이혼한 가정이 맞이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이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각자의 역할 이상으로 다하시느라 두 분 모두 재혼도 하지 않으셨고, 나는 거기서 더 빨리 어른이 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간이 제법 흘러 이제 내 주변에도 이혼을 한 사람들도 꽤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흔해졌기 때문에 나는 마침내 ‘부모님의 이혼’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비로소 나를 마주 보다
시간이 흘러 나는 결혼을 했다. 와이프와 나는 무척 잘 맞았지만, 누구나 겪듯이, 결혼 이후 사소한 차이로 다툼이 자주 발생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전에 이를 중재할 누군가의 필요성을 느낀 와이프의 제안으로 한 상담소에서 부부 상담을 받기로 했다. 그전까지는 상담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 혹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만 받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던 나는 상담을 받고 나서 ‘제3자의 역할’에 대한 엄청난 중요성과 필요성을 몸소 체감하게 되었다. 그 상담의 시작은 부부가 아닌 남편과 아내 개별 상담부터 시작되었다.
아내가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한참 눈물을 쏟아냈다. 매우 화목하고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내였지만 그 나름의 고충과 고민은 있었던 터였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어 담담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어느새 중 3 시절, 부모님의 이혼을 이야기하려는데 그 ‘이혼'이라는 단어가 좀처럼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유인즉,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아내는 우리 부모님을 상황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완전히 나의 개인사를 제3자에게 공식적으로 털어놓는 경험이 처음이어서인지 몰라도 나는 쉽게 입이 열리지 않았다. 곧 상담사는 '다 괜찮으니 털어놓으라'는 마법의 한 마디를 내게 건넸고 나는 입을 미처 떼기도 전에 눈물을 쏟아냈다. 그렇게 펑펑 울어본 것도 처음이었고, 누군가가 있는 곳에서 우는 것도 처음이었으며, 그렇게 울어야 마음의 상처가 해결되는 것도 처음 깨달았다.
그 시절, 중3이었던 나는 울면 안 될 것 같아 울지 않았고, 34년 만에 비로소 그때 펑펑 울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우는 것, 특히 타인 앞에서 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울어야 하는 일이 있으면 다 털어놓고 다 쏟아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삶이라는 긴 여행을 살아가는 중요한 기술 중 하나다. 에너지에 총량의 법칙이 있듯, 눈물에도 총량의 법칙이 있다. 오늘 눈물을 꾹 참더라도, 그 눈물은 언젠가는 흘려보내야 할 감정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걸 가장 효과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은 언제나 ‘제3자’다.
인내에도 쉼은 필요하다
자신의 불우한 사정이나 고민, 걱정을 병적으로 숨기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나 사건 자체가 부끄럽거나 무작정 숨기고 싶어서 말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이들이 그런 얘기를 했을 때 타인이 보일 반응에 대한 두려움 또는 이로 인해 그들에게 괜한 걱정거리를 함께 나누는 게 아닌가 하는 민폐를 기피하는 습관에 기인하는 경우가 꽤 많다.
어쩌면 개인적인 고민이나 고통은 그저 혼자 스스로 삭혀서 넘겨버리는 게 진정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라는 경험의 산물일 수도 있고 그러한 몇 번의 동일한 과정을 거치며 ‘자신은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이라고 판단해버리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사람으로 굳어져간다.
‘지금 울지 않으면, 나중에 피눈물 난다’
아니 조금 더 과장을 보태자면 화병을 넘어서 우울증이나 정신병이 올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정신건강의 측면에서 봤을 때 울어야 하는 때가 있고 누군가에게 털어놓아야 할 부류의 이야기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매일 또는 자주, 특정 인원에게 사소한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라는 말이 아니다. 본인이 제아무리 정신력이 강력하고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어딘가에 무엇을 털어놓을, 즉, ‘생각과 감정을 배설’할 어떤 장치나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도 장(위, 대소장)과 다를 바가 없다. 무언가 들어왔다면 나가야 하는데 그게 ‘상한 것’이나 ‘혼자 소화하기 힘든’ 무언가라면, 내장을 돕기 위해서 소화제, 위장약, 지사제 등을 먹어 처방을 하듯이, 뇌 (마음)의 정리와 탈출구를 열기 위해선 그걸 ‘털어놓을 누군가’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걱정과 근심을 쏟아낼 때는 제대로 다 털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제3자의 역할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 친구, 선생님 등은 왜 안될까? 대부분 이런 경우, 우리의 ‘걱정’은 개인적인 문제일 때가 많다. 그렇다면 그 문제는 자신의 가족들에게는 자신과 당사자의 문제일 수도 있고 또는 당사자가 입 밖으로 꺼내기에는 매우 민감한 프라이버시일 수도 있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가장 가까운 사람은 사실, 좋은 상담사가 되긴 어렵다. 게다가 이런 비밀이나 걱정을 듣고 나면 ‘편견’이 생기게 마련이다. 따라서, 힘들 때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걱정을 털어놓는다는 건,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이 쌓아온 이미지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반면, 제3자는 나도, 그도 서로에 대한 과거 이력이 전혀 없고 그 이후로도 없을 예정이다. 따라서, 내가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그저 현장에서 휘발되는 정보에 불과하다. 누구의 가슴에 쌓이지도 않고, 쉽사리 퍼져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도 않는다. 백지장에 마구 낙서하고 버리면 그만인 그런 상황이다. 게다가 상대방이 전문가라면 그의 의견은 어쩌면 앞으로 살아갈 나의 지침서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안전함과 절대적인 믿음 덕분에 내 가슴에 쌓인 걱정과 화는 사그라들고 앞으로 살아갈 나의 길은 한층 더 편안하게 닦인다.
이는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의 큰 증거이자 이유가 된다. ‘나’라는 존재는 살아가면서 타인과 관계를 맺게 되고 거의 모든 관계에는 기쁨과 동시에 걱정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문제들 중 상당수는 ‘나와 너’가 해결하기 힘든 제3자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렇게 인류는 집단에 집단을 거듭하며 발전해왔고 문명을 이룩했다. 그리고 작은 집단부터 국가, 민족이라는 거대한 집단에 이르기까지 관계의 불통을 해결해주는 열쇠는 바로 집단 내 관계 사이 혹은 외부에 존재하는 ‘제3자’였다. 그것이 바로 제3자의 영역이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고 살아갈 방법을 찾고 싶다면 당장 누군가를 찾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어보길 바란다. 그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정답을 찾을 것이다. 제3자의 영역에서는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풀린다. 마음을 옥죄고 있던 실타래가 녹아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힘을 얻고 다시 나아갈 방향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