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내가 만만해 보여?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 '만만한 그들'에 대하여

by Rooney Kim

처음 고등학생이 되어 등교한 날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따로 운동을 하진 않았지만 제법 운동한 듯 보이는 덩치에 강한 인상(그 시절엔 나도 모르게 항상 눈을 치켜뜨고 인상을 쓰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런 사실도 사진을 보며 나중에야 알게 됐다) 때문인지, 새로 만난 반의 친구들은 내게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며 서로 인사도 하고 말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친한 친구들이 생겼고, 그제야 친구들이 나에 대한 첫인상을 알려줬다.


‘마, 니 처음에 덩치도 있는데 인상까지 써서, 어느 중학교 짱 먹고 나온 줄 알았다 아이가.’
‘인상이 왜 그리 드릅노, 좀 웃어라 짜슥아.’
‘그래 맞다. 첨엔 좀 쫄았는데 알고 보니 별거 아이데 ㅋㅋㅋ’

(마산 사람입니다)


돌이켜보면 학생 때는 보통 첫 학기에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만만해 보이지 않는’ 방법을 찾아 자신을 새롭게 무장한다. 운동을 하기도 하고 기선 제압을 하기 위해 ‘나대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 시절, 중학교 1~2학년의 첫 학기는 거의 모든 반에서 매일 같이 싸움이 나며 서열이 정리(?)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1년간의 학교 생활이 녹록지않기 때문이다. 물론, 싸우지 않는 친구들도 많다. 나도 그랬고. 하지만 입학 첫날 서로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는 기싸움은 상당했던 것 같다.


새 학년, 첫 학기 남중학교는 보통 '서열'이 정해지는 시기였다. '만만'하면 털리는(?) 그런 시기 말이다.

중학생이었던 그때의 나는 스스로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누굴 만나면 그렇게 나를 소개하곤 했다. 하고 싶은 것은 많아 이것저것 많이 하고 다녔지만, 뭔가 단체 생활에서는 내성적인 사람이 더 멋있고, 그런 이미지가 안정적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점점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부터 성당을 다니며 학생회 활동을 했었는데 단체생활을 하면서 느낀 바가 있었던 것이다. 가령, 평소 내성적이고 조용하던 친구들이 성당에 나오는 횟수가 뜸해지다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더 이상 아무도 그를 찾지도 기억하지도 않았는데, 평소 외향적이고 활달한 성격의 친구는 하루라도 자리를 비우면 다들 그를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그가 보이지 않게 되면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되자.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내가 사라져도 나에 대한 기억은 그리움으로 남겠구나.’


그래서 나는 점점 적극적으로 성당 학생회 활동을 시작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나섰고, 궂은일은 도맡아서 했다. 그러다 보니 주변 형, 누나들이 더 쉽게 내게 다가와서 무슨 일이든 맡겼고 나는 모든 사람들(구성원)에게 좀 더 ‘쉬운’ 사람이 되어갔다. 그렇게 고등학교 1년이 지났고 이듬해 성당 학생회 회장 선거 후보였던 나는, 중학부 학생회장을 지냈던 강력한 회장 후보를 예상외로(?) 쉽게 제치고 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 물론, 이후에도 ‘만만한’ 스타일로 학생회 활동에 기꺼이 임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과 더 잘 어울린 건 두 말하면 잔소리다. ‘만만’해지니까 누구든지 더 쉽게 다가왔다.


그런데 도대체 만만하다는 것은 어쩌다 ‘부정적’인 의미로 굳어졌을까?


‘만만하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형용사: 연하고 보드랍다.

형용사: 부담스럽거나 무서울 것이 없어 쉽게 다루거나 대할 만하다.


그렇다. 나는 스스로 사전적인 의미의 만만한 사람이 되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저 사전적인 의미일 뿐, 동시에 ‘만만하다’가 우리 삶과 사회에서 쓰이는 현실적 의미와 쓰임새는 완전히 다르다.


사회적 의미로 통용되는 ‘만만하다’ 의미는 다음과 같다.


만만하다: 다루기 쉽고, 함부도 대해도 되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쳐도 그만이다.


좀 거칠게 표현한 것 같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위의 정의보다 더한 경우도 많이 보게 되기에 비교적 자체 검열해서 정리했다. 그럼, 학창 시절 학생회 활동을 하던 나는 만만 하다의 사전적 의미로서의 ‘만만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사회적 의미로서의 그저 ‘만만한 사람’이었던 걸까?


입장에 따른 만만한 사람의 역할


사람마다 성격과 특성은 다르다. 거기에 취향이 보태지면 사실 사람 성격의 종류는 인구수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하다. 비슷한 성격이라도 때, 장소, 상대방에 따라 달라지고, 계절, 날씨, 밤낮, 그 날의 바이오리듬에 따라 다른 행동을 취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성격’은 있다. 단, 그 사람의 본성으로 내재되어있는 배려심, 참을성, 매너, 눈치 등에 따라 그 ‘성격’이 드러나냐 드러나지 않느냐에 따라 ‘성격이 센 사람’ 또는 ‘융통성 있는 사람’으로 나뉘게 된다. 그런데 사람의 성격은 오랜 시간을 두고 다양한 상황을 겪어봐야 정확하게 알게 마련인데, 우리는 어떻게 단기간에 개개인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을까?


만만해 보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떤 '색깔'을 가져야 했다.

바로, 이 세 가지 특성으로 사람의 성격을 어느 정도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말투(목소리), 표정, 태도’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하루에서 수 일만 지내보면 위 세 가지를 통해 한 사람의 성격과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우습게도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이 사람에 대한 판단과 동시에 가장 큰 카테고리 둘 중 하나로 자동 분류되는데 그건 바로,


‘성격 있는 사람’과 ‘만만한 사람’이다.


잠깐, 여기서 단순히 ‘성격’과 ‘만만'으로 나누었다고 해서, 성격 있는 사람은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거나, 만만한 사람은 카리스마나 ‘성격’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위 세 가지 특성에 따라 내가 이 사람과 어떻게, 얼마나 깊이 지낼 수 있느냐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정의하는 ‘성격’과 ‘만만’이니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길 바란다. 이에 대해 깊이 있는 얘기를 나누기 전에 위 세 가지 특성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말투(목소리)

누구를 만나면 우리는 인사를 하고 서로 소개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며 상대방의 성격을 파악하게 되는데, 이때 목소리는 상대방의 성격을 파악하는 큰 요인이 된다. 목소리가 작거나 힘이 없으면 보통 소심하거나 내성적이라고 생각하고, 목소리가 크거나 카랑카랑하면 외향적이고 압도한다는 느낌을 주게 마련이며, 일정한 속도, 리듬감 있는 말투, 반톤 높은 따뜻한 말투는 듣는 이로하여금 호감은 물론, 계속해서 얘기하고 싶어 지게 만든다. 반면, 감정이나 배려심이 느껴지지 않는 차갑고 딱딱한 말투(톤이 일정하거나 낮음)는 자칫, 버릇없게 들리기도 하는데, 이는 식당, 카페, 병원 등 대고객 서비스를 수행하는 곳을 방문하게 되면 서비스 직원의 목소리 톤을 통해 그 차이를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표정

개인적으로 나이 들수록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 중 하나가 표정 관리다. 원래 잘 웃는 얼굴도 아니었는데 그나마 시간이 지나니 좀 나아지긴 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 명에서 수 십 명의 사람들을 만나는데, 보통, 대화를 나누기 전 얼굴 표정을 보고 상대방의 기분을 파악한다. 마찬가지로 처음 만난 사람도 얼굴 표정을 통해 대략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소위, 웃는 상, 따뜻한 미소를 지닌 얼굴은 우리도 쉽게 다가가지만, 험상궂은 인상, 찌푸린 상, 울상 등은 가까이 다가가기도, 그다지 친해지고 싶지도 않은 느낌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표정과 성격이 다른 경우도 굉장히 많지만 그만큼 표정의 영향력이 크다는 말이다.


행동

제아무리 밝게 웃고, 조곤조곤 따스한 말을 전하더라도, 마주쳐도 인사를 잘하지 않는다거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피하거나, 약속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를 달리 생각하게 될 것이다. 반면, 험한 인상과는 달리 먼저 달려와 인사하고, 식사시간마다 사람들을 챙기고, 약속에 매번 먼저 나와 기다린다면, 인상과는 다른 의외성에 더 매료될지도 모른다.


자, 그럼 이제 현실을 들여다보자.

눈치채셨겠지만, 위 분류에서 ‘작은 목소리(내성적)’, ‘따뜻한 말투’, ‘웃는 얼굴’,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는 태도’는 ‘만만한’ 카테고리로 분류되고, ‘차갑고 딱딱한 말투’,’ 찌푸린 상’, ‘사람들을 피하는 태도’는 ‘성격 있는’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그리고 참 우습게도 이를 통해 어떤 이들은 사람들이 나를 쉽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한다며 슬퍼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려워하고 피해, 세상이 살기 편하고 자신이 모든 사람들의 위에 있다고 여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 주변의 사람들의 성격을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눈 뒤, 또다시 세부적인 카테고리로 나누어 세분화된다는 것이다.


만만한 사람이 세상을 살린다


누구나 사회적 의미로서의 ‘만만한 사람’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사회는 ‘만만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물론, 사전적 의미로서의 ‘만만한 사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전적 의미의 만만한 사람도 직접 그 입장이 되어보면 자신이 사회적 의미로서의 ‘만만한 사람’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든다. 그만큼 '만만한 사람’이라는 자리는 정말 ‘슬기로운 사람’이 수행해야 하는 어려운 포지션이다.


대표의 입장

대표가 되면 모든 직원들을 쉽게 대하고 명령하듯이 일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대표도 사람인지라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특성에 따라 자신의 머릿속에 각 직원을 크게 두 분류로 나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대하는 태도도 눈에 띄게 달라져서 자칫 오해를 살 수 도 있다. 평소 시키는 일도 군말 없이 곧잘 하고 많은 일을 맡고 있는 직원들에게는 더 자주 일을 시키며, 더 많이 기대한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더 쉽게 호통 치기도 하고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평소 좀 불편하고 대하기 어려운 직원에게는 덜 일을 시키고, 덜 기대하기에 조금만 잘하게 되면 칭찬하지만, 그만큼 많은 일을 시키지도 않는다. 이러다 보니 얼핏 보기엔 ‘성격’ 있는 직원으로 분류되는 게 회사생활이 편하게 들릴 테다.


어쨌든 대표가 말을 편하게 걸고 싶은 직원이어야 대표도 마음이 편할 테다.

하지만 사람의 심리는 각각의 관계 및 복합적인 관계 속에 작용과 반작용이 얽혀있는 복잡한 구조다 보니 보이는 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당장의 이익을 위해, 속담 중 소위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듯이, ‘성격 있는 놈’은 떡 하나 더 줘서 서로 마음 상하는 일 없게 하여 쓸데없는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고, '주마가편()'처럼 이미 잘하고 있는 ‘만만한’ 직원에게는 관심도 있고 애정도 있기에 역설적으로 더 쉽게 대하고 더 많이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제아무리 요즘은 직장 생활보다 ‘나’를 더 중요시하는 시대이긴 해도, 직장에서 인정을 받고 대표의 마음을 얻는 건 어렵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대표는 ‘만만한 직원’ 덕분에 좀 더 숨을 쉴 수 있다. 마음 편하게 일을 맡기고 자신이 못하는 것을 요구하며 함께 나아가길 바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직원은 월급도 받고 인센티브도 받으니 인지상정이다. 요지는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이 ‘만만한 직원’이 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일은 똑 부러지게 하고 실적을 많이 내는 직원이라도 ‘항시 말투가 딱딱하고 인간적인 교류가 없으며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직원’에게 쉽게 마음이 열릴 리가 없다.


재밌는 건, ‘만만한 대표’도 비슷하게 작용한다. 대표가 너무 똑똑하거나, 만사 모든 것에 관여하고 아주 디테일한 업무까지 지시하고 감독한다면 거기에 남아날 직원은 거의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고, 처음에는 조금 못 미더워도 ‘직원에게 책임과 권한을 주어 스스로 일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대표에게는 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사람들이 쌓일 것이다. 대표가 먼저 자신을 ‘만만하게’ 드러내어 직원들을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들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동료도 마찬가지다.

매사에 칼 같고 똑 부러지며 융통성이 없거나, 항상 자기 말만 하고 직설적인 말투로 쏘아대는 동료는 쉽게 친해지기 힘든 반면, 웃으며 다가오고, 먼저 인사하며, 고민거리도 잘 들어주는 동료는 쉽게 친해지고 어느새 의지하게 된다. 우리가 이런 부류의 동료에게 마음이 열리는 이유는 단 하나, ‘만만한 사람’(사전적 의미)이기 때문이다.


먼저 다가와주는 선배에게 마음이 열리고, 쪼르르 달려와 살갑게 인사해주는 후배를 더 챙겨주고 싶은 것도 같은 이치고, 친구 사이에도 고민도 더 잘 들어주고 무리한 요청을 하지 않는 친구를 더 가까이하고 싶은 것도 같은 이치다.


부모님은 다를 것 같은가?

오죽하면 속담에도 ‘우는 아이 젖 더 준다’고 하고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할까? 예나 지금이나 사람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소중한 자식이지만 같은 자식이라도 조금 더 정이 가고, 조금 더 편한 자식은 따로 있다. 부모님과 사소한 일상에 대해 자주 대화하고, 심부름도 곧잘 하며,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잘 들어주는(공부, 직업이 아니라 ‘부모님이 사 온 옷 잘 입고, 밥 맛있게 먹고, 가끔은 응석도 부리는’) 정도만 하면 된다. 그리고 부모님은 나이가 들수록 그런 자식에게 더 기대고 의지하게 된다. 단순히, 경제적 의미의 의지가 아닌 심리적 의미의 의지 말이다.


사전적 의미의 ‘만만한 사람’은 결국, 나를 편안하게 해 주고 내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언제든지 그 사람에게 마음이 열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치열한 사회 속에서 사전적 의미대로의 적절한 수준의 ‘만만한 사람’이 된다는 건, 자칫 잘못하면 우스운 사람 또는 무시해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만만한 사람’이면서도 우스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딱, 두 가지만 기억하자.


만만하되 결코 얕볼 수 없는 사람


먼저, ‘능력’이다.

여기서 능력은 다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한데 회사라면 ‘업무 능력’이고, 학교라면 성적, 취미 활동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직장인이든 학생이든 사실 더 세부적으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자기 할 일도 잘하고 있는 사람’ 정도로 보면 되겠다. 평소에 웃는 상에 싫은 소리 하지 않는 사람이라 쉽게 무시당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해도, 본인의 일을 잘하고 전문성이 있다면 쉽사리 넘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테다.


그다음은 적정한 선, 즉, 자신만의 ‘기준’이다.

직장 생활을 예로 들어보자. 항상 밝고 누구에게나 친절해서 사람 좋은 A라는 직원이 있다. 그의 상사는 자신의 업무 성과를 위해 A에게 타 팀의 아이디어를 몰래 훔쳐보고 오라고 지시했지만 A는 오히려 웃으며 거절한다. 자신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또, 상사가 자신의 분기 목표를 무리하게 달성하기 위해 A가 업무와 전혀 관련 없는 일을 사적인 시간까지 할애해서라도 하길 원한다고 할 때, A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일은 자신의 포지션과 전혀 무관한 ‘업무 외’ 업무라는 판단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내 업무’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이를 무리하게 진행할 경우, A의 개인 사생활은 물론, 본인의 주 업무에 까지 영향을 미치므로 큰 시각에서 봤을 때 무리한 업무량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자신만의 기준이 뚜렷하면 그 누구도 쉽게 '반칙'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경우, 이 ‘만만한 사람’은 본인 업무에 대한 능력, 자신감이 있기에 제 아무리 막무가내인 상사라고 하더라도 쉽게 그를 내칠 수도 없고, 남에게 험담을 할 수도 없다. 이유인즉, 이 ‘만만한 사람’은 좋은 성격 덕분에 이미 동료는 물론, 대표님에게도 인정받아 그 누구도 그를 욕하지 않으며, 이미 본인의 업무는 잘 해내고 있는 중이라 모든 사람이 함께 일하고,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 속의 모든 ‘만만한 사람’은 거칠고 차가운 세상에서 집단 내, 집단 간 윤활유 역할뿐만 아니라 성장 원동력 수준의 에너지를 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답답하던 현실에 돌파구가 되고, 팍팍한 삶 속에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며 때론, 대놓고 칭얼거려도 재치 있게 받아 위로해주는 사람.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혹은 글을 읽는 내내 떠올린 누군가 일지도 모른다. 만약,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는데 평소 약간은 무시하거나, 가볍게 생각했다면 얼른 마음속으로 사과하고 그를 응원해주길 바란다. 당신 옆, 가족 내, 우리 팀 중, ’만만한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부드럽게 돌아가게 하는 소중하고 커다란 톱니바퀴이기 때문이다.


자, 이쯤 되면 만만한 사람이 좀 되어볼 만하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모든 이미지: https://unsplash.com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1 제3자의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