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수저는 부모를 향하지 않았다
기사는 기회의 박탈, 노력과 능력에 대한 합당한 보상에 대한 사회의 응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지금의 2030 세대, 소위 90년대생으로 불리는 이들이 직장인이 되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기성세대와 그들이 만든 사회의 구조가 얼마나 뒤틀려있는지 다시금 환기시켜주었다.
그런데 왜 나는 그리고 대중은 ‘기성세대’라는 단어에 이토록 민감해졌을까. 이는 아마도 현재 기성세대의 대명사 격으로 불리는 386세대(현, 586세대)가 민주화라는 미명 하에 일군 기형적인 사회적인 구조와 그 안에서 그들이 누린 불합리, 불공정, 내로남불 그리고 안하무인적인 태도 때문이 아닐까.
남용된 권력은 시민들의 입을 막았고, 지나친 재산권 침해와 조세정책은 서민들의 발을 묶었으며, 과도하게 퍼주는 복지 정책은 청년들의 눈을 가리고 사고를 막아 불투명한 미래를 생산 중이다.
그리고 이제 막 사회 속으로 들어와 경제활동을 하고 제 목소리를 내는 20대 청춘들은 이제 이 같은 기성세대의 행태를 ‘불공정’이라 부른다.
불평등에 대한 불만은 비교에서부터 시작되고 비교는 타인으로부터 기인한다. 물론, 불만과 분노는 개개인별로 내재된 경험과 가치 인식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타인과의 비교 사유가 그들의 재력, 인맥, 권위에 기반한 무임승차 때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는 단순 비교에 의한 열등감이나 부러움이 아닌 ‘불공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현대의 청춘들에게 ‘공정’을 가장 중요한 삶의 화두로 만들어버렸다.
따라서, 청년들의 수저 계급론이 지향하는 ‘탓’은 애초에 자신들의 부모를 향한 것이 아니다.
권력과 재력의 정점에 있는 기성세대가 휘두른 무소불위의 불공정은 아무것도 없이 바닥부터 시작하는 무수히 많은 젊음의 피와 땀과 눈물을 헛되게 하였고, 그들의 열망과 소망과 열정은 지지 기반을 위한 땔감으로 쓰였으며, 부모의 권력과 재력을 기반으로 수십 계단을 먼저 올라간 권력의 자녀들이 호령하는 갑질에 상처 받은 청춘을 대량 양산해내며 결국 전 국민적인 공감을 얻은 ‘시대의 분노’를 생산해냈다.
이들의 땀과 눈물은 진실했고 그들의 성공은 공정한 과정을 통해 이뤄졌으며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따라서, 불공정의 불합리한 파편을 온몸으로 받아낸 청춘은 ‘공정한 성공’에 대한 축하에 결코 인색하지 않다. 이들에게 공정한 성공은 이 시대에 꿀 수 있는 최대의 꿈이자 희망이다.
사실은 그 돌파구는 이 글을 보며 저릿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주체 못 할 만큼 끓어 넘치는 열정을 발산하고 싶어 하는 2030 세대 자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