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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Jul 01. 2017

Sanctuary: Medium 7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지키는 사람들

"네..?"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설마하는 마음도 없지않아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이 한 마디를 듣자마자 나는 곧 지금까지 그녀가 해준 가슴이 따뜻한 말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느낌이 듦과 동시에 궁상맞고 지루했던 내 삶에 새로운 자극이 되는 모험과 같은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도 살짝들었기 때문이었다. 저승의 길목을 지키는 사람이라니!


'터벅 터벅. 쿵. 쿵.'


마들란의 등 뒤 왼편으로 난 어둠에 쌓인 복도 사이로 무엇인가가 천천히 하지만 서서히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둘 만 있던 공간이라 다른 누군가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딱히 하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그 묵직하고 무거운 발소리가 사람의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만큼 이질적인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들란, 저.. 저건."


"아, 인사해요. 제가 기르는 사슴이예요. 아까 여기로 오라고 불렀는데 이제서야 왔네요."


어둠 속에서 서서히 그 얼굴을 드러낸 건 다름아닌 사슴이었다. 사슴, 바로 그 사슴이었다. 지난 새벽에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그 순간에 내 호텔 방 앞 정원으로 난 길과 이어진 숲 속에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대자연, 우주와 교감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큰 뿔을 가진 바로 그 사슴 말이다.


"이 아이랑 이미 만난 적이 있죠? 저도 놀랐어요. 얘가 나에게 말도 하지않고 태주씨를 만나러 갔었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이죠? 제가 꿈에서 봤던 사슴과 정말 거의 똑같은 사슴은 맞는 것 같은데.. 이 사슴이 그 사슴이라구요?"


"네, 태주씨가 제 직업에 대해서 궁금해할 때만 해도 그냥 모른 척 넘어가고 그저 태주씨의 청춘과 삶에 대해서 응원만 해주려고 했었는데 말이죠. 지금은 조금 달라졌어요. 이 아이의 이름은 스피니예요. 굉장히 섬세하고 영적인 힘으로 충만한 사슴이죠. 스피니가 나에게 말을 하지도 않고 태주씨를 찾아간건 어떤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스피니는 영적으로 매우 뛰어나요. 영물이라고 하죠? 사슴 자체가 무병장수를 의미하고 하늘, 우주와 교감하는 능력이 있다는 속설도 있는데 스피니는 그 중 그런 능력이 더욱 뛰어난 친구라고 보면 되요."


스피니는 그 커다란 눈을 꿈뻑이며 나를 한 번 쳐다보았다가 마들란에게 다가가더니 뿔이 그녀에게 닿지않도록 조심스럽게 자신의 얼굴을 마들란에게 갖다대고는 슬며시 부벼댔다. 마치 아기 사슴이 어미사슴에게 애교를 부리며 인사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마들란이 저승의 길목을 지킨다는 것과 영적인 사슴 스피니 등 보통의 식견을 가진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쉽지않은 것들이 순식간에 다가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마들란이 얼른 그것들에 대한 설명을 해주기를 바랐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보통사람들과 해본적도 없지만 만난지 얼마 안 된 태주씨에게 하게 될 줄은 저 역시도 몰랐어요. 우선, 스피니의 역할이 컸어요. 스피니가 태주씨를 선택한 건 태주씨가 영적으로 맑고 강한 사람이라는 뜻이거든요. 아마도 태주씨가 제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요? 제가 영적으로 맑긴 맑..죠. 맑다는 기준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이라면요.. 아무튼 그런데 제가 뭘 하겠어요? 전 지금 복잡한 삶에서 벗어나 아니, 도망쳐와서 그냥 아무것도 하지않고 쉬면서 미래에 대한 설계가 필요한 한낯 흔한 젊은 이 중 하나일 뿐인걸요? 그리고 전 아직도 마들란의 직업이 뭘 뜻하는지도 모르겠고 무엇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흔한 동네의 할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분명히 노망난 늙은 이라고 생각하며 자리를 피했겠지만 이건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여전히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리고 어떤 말을 할 지는 모르겠지만 생추어리라는 공간과 선하고 밝으며 아름답게 나이 든 그녀의 모습 그리고 그녀의 말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숫사슴 스피니 까지.(세상에 꿈에서 본 줄 알았던 그 사슴이 진짜였다니) 나는 이제부터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믿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 그냥 그녀를 믿기로 한 것이다.


"저승의 길목을 지킨다는 말이 정말 우습고 허무맹랑하게 들린다는 것은 저도 알아요, 태주씨. 하지만 이젠 어떤 운명적인 것이 태주씨와 생추어리를 묶고 있는 것이 보여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을 수가 없네요.


나는 이제 그냥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답답하고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탈출구가 필요했던 나에게 평소 관심이 있던 사후세계와 영혼의 대한 이야기만큼 매력적인 이야기 소재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브리나, 기억나죠? 어제밤이 그녀의 장례식이었죠. 제 동생의 영혼도 저승으로 가는 문턱까지 제가 잘 인도하고 왔어요. 그녀가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본게 아티틀란의 호숫가에서 였어요. 태주씨가 거기서 제게 말을 걸었잖아요? 태양의 석양과 함께 사브리나의 영혼도 저 세계으로 건너갔어요. 지금쯤 아주 행복하게 훨훨 날아다니고 있을거예요. 보통 사람들이 죽으면 중력에서 벗어나 마음껏 날 수 있기 때문에 이승 여기저기를 마음껏 날아다니거든요. 바로 그게 제 역할이예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자신이 인지를 하고있든 아니든 그들이 이승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지않고 저승의 길로 잘 인도해주는 역할 말이예요. 그리고 생추어리가 그런 영혼들을 불러와서 저승의 문 안쪽으로 보내는 장소랍니다."


그녀의 간단한 설명이 끝나자마자 나는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건 내가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충격이 공포스러운 충격이 아니라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마냥 상상만했던 세상에 대한 발견과 비슷한 것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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