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이는 초주검이 된 얼굴로 얼굴에 핏기 하나 없이 바짝 마르고 긴장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우물쭈물 댔어. 그런 정선이의 모습을 본 엄마는 도대체 정선이가 어떤 말을 할지 몰라 오히려 정선이 보다 더 긴장되었지. 사실, 정선이는 꼭두새벽부터 레드 로즈 빌라의 전세 사기를 당한 사람들 총 15명과 만나 이런저런 정보를 나누고 연락처와 소송을 위한 서류 작업 등을 마치고 경찰 신고를 통한 공공 CCTV 확보 등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고 오느라 많이 지친 상태였어.
“사실.. 나 판교에 투룸 있잖아.. 그거..”
“엄마!”
정선이가 겨우 힘들게 입을 떼자마자 벌컥하고 정환이 방문이 열렸고 곧 정환이가 바깥으로 뛰쳐나왔어. 그러자 엄마와 정선이는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정환이를 쳐다보았지.
“어, 우리 아들, 왜? 뭐가 필요해? 배고파?”
그러자 정환이는 누나를 슬쩍 한 번 쳐다보고는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다가 아무 말이나 해대기 시작했어.
“아니, 그.. 어, 맞아요. 배.. 나 배고파. 밥 줘요.”
“응, 그래그래, 그런데 지금 정선이가 뭔가 중요한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누나 얘기만 듣고 밥 차려주면 안 될까?”
그러자 정선이가 정환이를 돌아보며 눈을 반쯤 감고는 치켜뜬 채 말했어.
“정환아 너, 요즘 말 많아졌다고 칭찬했더니. 오랜만에 내가 엄마랑 중요한 얘기를 하려는데 진짜.”
“누나.. 미안, 하하. 내가 사춘기가 늦게 왔는지. 배가 너어무 고파.. 미안해.”
“사춘기랑 식욕이랑 무슨 상관이야. 알았어. 엄마, 내가 차릴게. 엄마 쉬어.”
곧, 엄마랑 누나는 정환이를 위해 이른 저녁을 차리기 시작했고, 그런 모습을 보며 안심이 된 정환은 다시 방으로 들어갔어.
‘형 말대로 누나의 얘기를 막았으니까.. 나 잘한 거겠지? 형, 나 잘했지?’
“정도령님, 지금까지 현황 브리핑 바랍니다.”
“네, 대왕.. 아니, 정민님, 우선, 사기꾼 놈들은 오늘 오전에 추가 대출 10억을 진행했고요. 이제 은수라는 사기꾼 재철의 친구 놈이 잔금으로 5억원 정도만 송금하면 계약이 끝나게 됩니다.”
정민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어.
“그런데, 이 자식들이 순순히 속아 넘어갈까요? 등기부등본? 그거랑 건축물대장, 토지대장.. 뭐 그런 거 떼면 다 나오잖아요?”
“나오죠.”
“아니, 그럼 어떻게 속여요?”
정민은 뭔가 대단한 속임수나 비법을 기대하고 한 질문에 김새는 정도령의 답변을 듣자 당황스러웠지.
“지금 쟤들은 구름 위에 있는 기분 일거예요. 약 38억 원을 투자하고 곧 50억 원이 되는 물건들을 계약하는 데다가, 민간 확정이 발표 나고 기사가 나면 곧 100억은 그냥 찍을 거거든요. 그리고 나중에 싹 갈아엎고 조합설립 인가나고 사업시행 인가 그리고 착공하면 아마 못해도 150억에서 200억까지 갈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지금 청류동 50채 있는 곳으로 반경 100미터 내로 9호선이 지나간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거든요. 이건 진짜 기밀이에요.”
정도령의 답변을 골똘히 듣던 정민은 뭔가 그럴듯한, 제대로 큰 판이라는 걸 감지하고 재차 질문했어.
“아니, 그래도요. 그럼 계약 당일에 그 서류들은 어떻게 할 건대요?”
“조작해서 줘야죠. 그리고 링크로도 줄 겁니다.”
“링크로 들어가면 다 보일 텐데요? 실제 집주인이 누군지?”
“에이~ 순진도 하셔라. 코인으로 수천억 원을 가지고 있는 분이 그런 것도 참. 다~ 방법이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하하.”
“사장님, 그럼 내일 우리가 사무실로 가서 계약서 원본, 등기부, 건축, 토지 대장 다 확인하고 잔금 치르고 도장 찍으면 끝이죠? 아침 일찍 갈 테니까 기다리세요. 누가 열 배액 배상해준다면서 계약 파기 밀어부친 다고 해도 받아주면 재미없습니다.”
동수는 전화를 끊고 철민과 함께 서류를 만들기 시작했어. 위조문서를 만드는 건 처음이라 긴장됐지만 정도령의 계획을 듣고 나서는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일종의 정의구현을 하는 거라 거리낄 게 없었던 거야.
“철민아, 이거 다 끝나면 넌 얼마나 받기로 했어?”
동수는 사기꾼 잡기 프로젝트 이후 정진이와 철민이를 도와준 수고비는 어느 정도나 줄지 갑자기 궁금해졌던거야.
“그거야 나도 모르지. 정진이 아들 정민이가 그렇게 안타깝게 가고.. 가뜩이나 정진이가 경식이한테 무리하게 투자해서 그 사달이 났는데.. 정작 정진이 집에서는 친구에게 사기당한 줄 알아. 물론, 경식이도 무리하긴 했어. 결국 그 자식의 욕심 때문에 수십억짜리 펀드가 날아갔으니..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사기당했다고 느낄 수도 있겠어. 그래서 난 그냥 아무 욕심 없이 도와주는 거야. 잘 끝나면 정진이가 밥이라도 거하게 사겠지. 정진이가 그래도 항상 통은 컸잖아. 의리도 있고.”
철민이의 설명에 동의한다는 듯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던 동수는 그래도 궁금증이 남아있는 듯 계속해서 질문했어.
“그래도.. 나도 이거 생업을 잠깐 며칠 쉬고 하는 건데. 수수료 정도는 주겠지?”
“얼마나 생각하는데?”
“나 중개업자잖아. 사실, 35억짜리 계약하는 건데, 이게 만약 내가 직접 계약 성사시키는 거였으면.. 하하하”
동수도 말을 뱉어놓고는 민망했는지 그냥 실없이 웃고 말았어.
“야, 박동수. 너 지금 요율대로 수수료 받으려고 했어?”
“알지 알지, 지금 친구 도와주는 거. 그래도 한.. 그래도 음, 오백, 오백은 받아야지. 거, 보니까 정민이가 가족들한테 50억 원 남기고 간 거 갔던데. 와, 대단해. 그렇게 간 건 안됐지만. 나도 우리 아들이 나한테 5억, 아니 5천만 원이라도 떡하니 안겨주면 참 좋겠다. 하하하. 야, 농담이야. 그런데 그 정도는 받아야지. 나 지금 내 부동산 일도 내팽개치고 하는 거야. 알지?”
“그래, 이거 잘 끝나면 내가 정진이한테 말해볼게. 사실, 니 말도 맞아. 이렇게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데. 내가 내 몫은 안 받아도 좋으니까 넌 꼭 챙겨 달라고 할게.”
“고맙다. 니가 나보다 정진이랑은 훨씬 친하니까 좀, 말 좀 잘해줘.”
“은수, 너 할 거야 말 거야? 난 대출 20억에 지금 수수료까지 33억 4천만 원 들어갔다. 5억 더 올랐는데 너 안 들어가면 내가 마저 신용땡겨서 들어가도 돼. 야, 몇 달 뒤에 내가 1~200억 원대 부자가 돼도 부러워서 이불이나 차지 마라. 낄낄낄”
은수는 주변 상황, 부동산의 정보, 재철의 거침없는 투자 방법 등에 휩쓸려 어느새 자기도 이 판에 뛰어들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
“한다. 그래 5억, 내가 지금껏 죽도록 일해서 모은 거 열 배로 키워보지 뭐. 야, 집주인 계좌번호 보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