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현혹의 밤 1

by Rooney Kim

깊은 밤 대숲의 떨림은 평범한 날의 일면은 아닐 것이니. 잠에 든 자 깊이 들지 말고, 깨어있는 자 흘려듣지 말며, 길에 나선 자 혼자 가지 말라. 산중은 까마득하고 들판은 어지러우며 수중은 달아날 곳 없으니, 네 눈을 홀린 수풀은 보이지 않는 결계가 되어 끊임없이 헤매게 만들지니. 그저 날이 밝길 기다리라.




“자야, 자야! 또 악몽을 꾸는구나. 어서 정신 차려보거라. 일어나거라."


선준은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행장이를 연신 흔들어댔다. 하지만 행장이는 깊은 잠에 빠졌는지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행여나 행장이가 어찌 될까 걱정이 된 선준은 얼른 등불을 만들어 인근의 우물로 달려갔다. 차가운 물 한 바가지면 웬만한 주술도 깨울 수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던 것이다.


‘어푸, 어푸푸-‘


“자야, 이제 정신이 좀 드니? 악몽을 꾼 게로구나.”


“아재, 아푸푸, 아재 이게 뭐시단가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갑자기..”


한 숨 돌린 선준은 그제야 방문을 닫고 호롱불을 밝혔다. 때는 신시를 지나고 있었다. 아직 오경으로 깊은 밤 중이었다. 선준은 행장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선준의 부모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후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충청도의 성주사를 찾아 나선 지 벌써 사흘이 지나고 있었는데 그동안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못한 탓에 성인인 선준도 힘들었는데 행장이는 오죽했을까 싶었던 것이다. 산길을 다니며 주운 밤과 감 등으로 끼니를 때웠지만 한창 많이 먹을 때인 행장이의 성에 찰 리 없었다. 게다가 선준 자신 또한 기운이 달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제 저녁 무렵에나 남부 지방과 중부 지방을 잇는 추풍령 중턱에 버려진 산골마을을 발견했고 둘은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잡귀나 지박령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한 초가집의 안방에 드러누워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자야, 내가 방금 전까지 아주 요상한 꿈을 꾸었단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 들었던 꿈이었지.”


“워매, 어떤 꿈인지라? 빨랑 알려주시게요.”


선준은 이야기를 하려다 말고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잠시 문밖을 주시하며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행장이가 그를 보채려 움직이자 조용히 검지를 입에 갖다 대었다. 이에 선준의 행동에 무슨 연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 행장이는 잠시 머뭇대는가 싶더니 모기만큼 작은 목소리로 선준의 귀에 속삭였다.


“아재, 아직.. 꿈 속인디요. 히히히”


예상치 못한 행장이의 한마디에 놀란 선준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행장이를 바라보았다. 방금 행장이가 한 말과 행동이 바로 선준이 꾸던 악몽의 마지막과 꼭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 이것도 꿈이야. 그럼.. 그럼 어떻게 깨어난다.’


순간, 선준이 말릴 틈도 없이 행장이가 꺄르르하고 웃으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시각은 신시라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있을 때라 꿈속에 갇힌 상태에서 행장이가 어디로 갈지, 행여 호랑이에게 물려갈지, 산적에게 잡혀갈지 모르는 일었다.


“자야, 행장.. 행장아! 어디로 가느냐!”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몸조차 마음대로 가누기 힘든걸 보니 분명 꿈속이 맞는 듯했다. 분명, 잠에서 깬 지 일각은 지난듯한데 그것마저 꿈 속이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이런.. 제아무리 힘들었어도 장승이 쓰러진 마을은 들어오는 게 아니었어. 소천.. 아니 아버지가 항상 말씀하시던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축사과 축귀로 악령을 쫓아내고 혼령을 위로하며 백중에 많은 혼백을 저승으로 보내는 일을 천직으로 한 스님이었던 소천은 선준이 어린 시절부터 축귀와 관련한 것들을 종종 가르쳤는데 그중 평소에 가장 조심해야 할 것들 중 하나로 장승과 솟대 관리가 제대로 안된 고을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선준아, 이것 하나는 꼭 명심하거라. 마을 입구의 장승이 거꾸로 박혀있거나 눈알을 파놓고 구멍이 났거나 둘로 쪼개졌거나, 장승이 넘어진 마을은 절대 들어가서는 안된다. 그런 마을은 이미 망해서 아무도 살고 있지 않거나 혹여나 누가 있더라도 제대로 된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훗날, 너도 축귀를 하게 될 테니 이런 기본적인 것들은 꼭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거라.’


‘아버지..’


충청도의 성주사를 향해 사흘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뛰어왔고 이미 술시가 넘어 밤이 시작된 후 산 중턱에 있는 이 고을에 들어왔으니 사실 선준은 장승을 제대로 볼 겨를도 없었다. 선준은 잠에서 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보았다. 두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뜨기를 십 수 번 반복했고 뺨을 때리거나 우물물을 뒤집어쓰기도 했지만 여전히 꿈 속이었다. 그때였다. 선준의 보따리 속 일령이 새하얀 빛을 내뿜으며 일렁이기 시작했다. 선준은 일령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퍼뜩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공포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그동안 남을 위해 축사를 하고 악귀를 쫓으며 순간순간 마주한 공포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우선 그저 꿈에서 깨는 것에만 집중했다. 선준은 일령을 쥐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방 안으로 달려가 일령을 손에 쥐었고 순간 벼락을 맞은 듯 온몸이 짜릿해지며 두 눈이 저절로 떠졌다. 곧 잠에서 깨어난 선준은 일어나자마자 방 안에서 행장이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꿈속에서 밖으로 뛰어나간 행장이가 생각났다.


행장이가 정말 사라졌다니.. 행장이를 찾아야 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초가집을 박차고 나온 선준은 사방을 둘러보며 큰 소리로 행장이를 부르기 시작했다. 때는 묘시가 끝나가는 중으로 산너머 멀리서 동이 터오는 덕분에 흐릿하지만 사방의 실체가 아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 녀석 당최 어디에.. 어, 행장아!”


호롱불을 초롱불 삼아 들고 행장이를 찾던 선준이 멀리 마을 입구 밖에 행장이가 정면을 바라보며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선준은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행장이를 불렀지만 녀석은 도통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 멍하니 앞만 바라보며 허공에 대고 무언가 손짓을 하고 있었다. 선준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행장이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뛰어가려고 해도 행장이와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아직도..?’


그때였다. 행장이 앞으로 십 수 명의 사내가 등장하더니 행장이를 향해 곧장 달려오는 게 아닌가.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낫과 곡괭이가 들려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에 마음이 더욱 다급해진 선준은 망설임 없이 일령을 꺼내 들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주술이고 결계고 간에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야. 내 저것들을 당장’


“안돼에-! 안돼, 오지 마, 오지말라고오. 우리 엄니, 아부지는 이제 내가 지킬 거라니까에-!”


행장이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사내들을 향해 선준 역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고함을 질렀다. 이에 선준 역시 사자후에 가까운 거대한 소리에 놀라 행장이 뒤로 한 길 정도를 앞두고 멈춰 섰다. 필시, 행장이는 지금 어떤 꿈 속의 상황에 갇혀있는 듯했다. 자세히 보니 행장이의 머리와 등에서 새햐얀 빛이 서서히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행장이 앞으로 낫과 곡괭이를 든 사내들이 행장이의 사자후에 놀라 멈칫하고 놀라 잠시 섰다가 다시 달려들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잠깐, 이거 어디서 본 것이 아닌가. 혹시 이 장면은 그날과 꼭 같아.. 그 지옥의 날..’


작년 이맘때 선준이 묵었던 전라도 산골의 한 주막 그리고 그날 밤 벌어진 지옥의 대 참극 당시 악귀에 씐 마을 주민들이 행장이의 집에 찾아왔을 때에도 그들의 손에는 낫과 곡괭이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행장이의 부모님과 가족은 행장이를 지키려다 악귀들의 낫과 곡괭이에 찔려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지금 행장이는 이것이 꿈속인지 아닌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눈앞의 낯선 마을 주민들이 낫과 곡괭이를 들고 초점 없는 눈으로 살육의 광기만이 감도는 얼굴로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장이는 작년, 부모님과 온 가족을 잃은 참사를 떠올렸고 다시는 그런 끔찍한 참사를 당하지 않기 위해 홀로 맞서고 있는 중이었다. 그 당시 선준은 홀로 악귀에 홀린 주민들과 싸웠지만 스물에 가까운 장정을 홀로 상대하는 건 쉽지 않았다. 선준은 행장이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는 행장이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발현되는 것 같았다. 이는 지금 저들이 달려들 때 행장이가 맞서지 못할 수도 있음을 뜻했기에 선준은 악귀들이 그를 덮치기 전에 먼저 달려들었다.


“일령, 광!"


행장이 앞으로 세 자 가까이 공중으로 뛰어오른 선준은 일령을 쥐고 외쳤다. 낫과 곡괭이를 든 악령이 씐 주민들도 선준에게 달려들었으나 곧 태양보다 강한 빛이 이들 모두를 감싸고 그들 앞으로 까맣게 우거진 대숲까지도 환하게 비추었다. 악령이 씐 주민들은 종이가 불에 타듯 순식간에 바스라지자 선준은 이 축귀를 가볍게 끝내고 얼른 행장이와 돌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대숲이 있는 앞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를 본 선준은 그만 온몸에 소름이 돋고 말았다. 일령의 광으로 사방이 환하게 비쳤을 때 대나무로 무수하게 빽빽하게 들어찬 까만 대숲 사이사이로 수백의 원혼들이 자신과 행장이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던 것이다.


“행장아, 행장아 얼른 정신 차리거라! 어서 여길 떠야 한다. 위험하다.”


선준은 연신 행장이를 흔들었지만 행장이는 동공이 풀린 채로 대숲을 바라보며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우리 엄니, 아부지를 지켜야 한당께요.. 내가 구해야 한당께요.. 낫과 곡괭이를 든 사람들을 처치해야한당께요..”


‘이중 결계야. 그렇지 않고서는 이럴 순 없어. 우선 행장이를 들어서라도 여길 빠져나가야 해.’




눈꽃이 필 무렵은 네이버 웹소설 베스트리그와 문피아에서 동시 연재됩니다!

• 네이버 웹소설 베스트리그: https://novel.naver.com/my/myNovelList?novelId=1020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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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snow-mount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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