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숨겨진 이야기 3

by Rooney Kim


‘찌르르르르르르-‘


은진이 이무량의 이름을 언급하자마자 선준의 보따리 안에서 일령이 가늘고 길게 울었다. 은진은 순간 흠칫하며 경계했다.


“아, 일령입니다. 박달나무로 만들어진 칼자루죠. 사실 그냥 맞아도 엄청 아프지요.”


“일령? 칼자루에 이름이 있나요?”


은진이 묻자 선준은 조금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설명하자면 조금 길어서. 여하튼 제가 축귀 때 쓰는 물건입니다. 아주 강력한 녀석이지요.”


선준이 보따리에 있는 일령을 살며시 감싸 쥐자 이무량의 이름에 반응하던 일령의 소리도 점점 잦아들었다.


“은진 누이, 일령 저거 저거 엄청난 물건이다요. 아재가 저걸로 얼마나 많은 귀신들을 처단했는지 아시오? 지도 함 만져보고 싶은데 아재가 한 번도 못 만지게 한당게요.”


일령의 이야기가 나오자 행장이도 거들었다. 하지만 축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던 자령에게는 이런 이야기들이 생소하기만 했다.


“이무량이 어떤 사람인데요? 그 자가 악령의 두목이라는 건가요?”


이무량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선준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윤대감 악령을 쫓아 여기까지 왔지만, 이 마을을 이무량이 휩쓸었었다는 얘길 들으니 과연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껏 수많은 축귀를 해왔지만 이름을 언급한 것만으로 일령이 이렇게 급격하게 반응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령, 잘 들어요. 아버지의 원수를 아니, 아버지를 찾고 싶다고 하셨죠?”


“네..”


“이제 자령이 귀신을 믿든 안 믿든, 축귀라는 것에 믿음이 있든 없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네”


“그쪽이 아버지를 꼭 찾고 싶다면, 귀문을 열고 영계로 들어가 아버지를 찾거나,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줄 수 있는 악령이나 귀신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귀문이요..? 제가 요..?”


“그럼 누가 하죠?”


이야기의 흐름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자령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원수를 찾는다고 했지요?”


“네..”


“그런데 아버지는 살아있고 지금 그분은 영계에 있으니 직접 찾으러 가야지요.”


너무나도 똑 부러지는 은진의 태도에 자령은 물론 이를 옆에서 듣고 있던 선준 역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자령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은진 씨, 보시오. 그런데 이 아이, 아니, 자령은 축귀는커녕 귀신의 존재도 믿지 않으려 하는 자 아니오, 그렇다면 뭔가 이 자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낫지 않겠소..? 보아하니 은진씨도 축귀와 관련된 일을 하시는 것 같은..”


그러자 은진이 무언가 깨달은 듯 다시 물었다.


“보아하니 선준과 이 아이는 이 마을에 온 지 이틀 정도 밖에 안되었으니 이 마을의 사정을 잘 알리 없고.. 그럼, 자령은, 혹시 자령은 일본에서 언제 돌아왔지요?”


“그게.. 대략, 하지(6월 21~22일)쯤이었을 겁니다. 일본에 있는 동안 여러 잡기를 많이 배우기도 했고, 아버지에 대한 오해와 원망이 알고 보니 부족한 제 잘못이라는 것도 깨달았죠. 그래서 몇 해 만에 돌아왔는데 집에 아무도 없었지요.”


은진은 자령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를 찾아 나섰으나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들이 없더군요. 이상했습니다. 사람들은 뭔가 피하는 것 같았어요. 마치,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꺼리는 것 같았죠.”


“그럼 누가 자령에게 아버지가 죽었다는 거짓말을 한 거죠?”


“그게..”


“말해주세요. 그래야 저도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자령은 마른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실은, 지금 돌아보니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자신이 너무나도 어리석게 느껴진 것이다.


“처음 그 얘기를 들은 건 동네의 꼬마였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실종 때문에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다녔지만 아무도 일러주지 않고 피하기만 하여 시장 입구 근처에 앉아있었는데 한 꼬마가 그러더군요. 산적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은진은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더니 더 이상 자령에게 묻지 않고 잠자코 앉아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산적 두목의 수하까지 그렇게 말을 하니까. 제가 복수를 하지 않을 수 없지 않나요? 그래서 사전 조사를 한 뒤 산적 두목을 치러 간 겁니다. 복수를 위해서였죠..”


그러자 은진은 살짝 웃으며 다시 자령을 쳐다보았다.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네..??!!”


은진의 대답에 자령은 물론, 선준과 행장이도 놀라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야기하자면 너무 길고 복잡하지만, 저도 그날,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자 자령이 은진의 치맛자락을 붙잡고는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말해주시오. 네? 어떻게 된 일이었죠? 왜 아버지는 죽었다는 소문까지 씌어 영계로 들어간 건가요..?”


은진은 결국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령이 쳐다보았다.


“이 마을 지방 관아의 관리들이 부패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나요?”


하지만 자령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은진을 바라볼 뿐이었다.


“녹사(상급 문관계)와 향리(鄕吏)들이 문제였어요. 물론, 그 자들은 여전히 이 마을에 있죠. 이 마을을 담당하는 아전(하급관리)들 중에서 서리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향리들이 주축이 되어 녹사들을 꼬드겨 지역 상민과 농민들의 피를 빨았죠. 수령들이야 자주 바뀌니 그런 부정을 알리가 없었고 알더라도 같이 받아먹다가 가는 일이 허다했답니다.”


자령과 선준, 행장은 어느새 은진의 안방에 모두 옹기종기 모여들어 그녀의 이야기에 경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반(문관계), 서반(무관계) 할 것 없이 오랫동안 부정부패를 저지르던 그들은 한 날 서로 크게 틀어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서리(녹사 밑의 하급 관리로 주로 향리나 상민에서 충원)들 중 향리들이 녹사층과 짜고 일부 백성들의 혈세와 쌀을 서반 아전 몰래 빼돌리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싸움이 시작되었나요?”


“아니죠. 그래봤자. 하급 무관계들이 뭘 어찌하겠습니까? 그냥 술이나 마시고 화풀이나 하는 거지요.”


선준은 은진의 이야기에 점점 더 빠져들기 시작했다. 혹시나 윤대감 악령과 이무량과의 관계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어느 날, 이들의 부정을 잘 알고, 그들에게 불평했던 나장(羅將, 나졸이라고도 한다) 하나가 죽은 겁니다. 서반 아전들은 발끈했지만, 감히 녹사들에게는 한 마디도 못했고 서리, 향리들과 점점 사이가 나빠진 겁니다. 그런데 몇몇 서반 아전(하급 무관계)들은 근중과 관계가 있었어요. 근중이 누구냐 하면..”


“척결패의 두목이죠.”


은진의 이야기를 하던 도중 자령이 끼어들어 말했다.


“척결패요..?”


자령의 말에 선준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그러자 은진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네, 조선 팔도에 알려진 큰 산적단인 척결패의 두목이지요. 한 때 저와도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 또한 어떤 연유가 있었고요. 아무튼, 근중도 이 마을 관아의 부정부패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산적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산적도 한 패인가요?”


은진은 선준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전혀요. 근중은 정말이지 깨끗한 사람입니다. 지나간 인연이지만 조선의 그 어떤 관리들 보다도 산적 두목인 근중이 제일 깨끗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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