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숨겨진 이야기 2

by Rooney Kim


“그분, 아니, 그쪽의 아버지는 지금 이 세상에 없습니다.”


“… 네, 돌아가셨으니까요.”


“아뇨. 백귀로씨는 돌아가시지 않았어요. 그분은.. 지금 최근 우리 마을을 휩쓸었던 악령들과 함께 사라졌어요. 아마도 영계에 계시는 걸로 짐작됩니다.”


자령은 은진을 골똘히 쳐다보았다. 영계에 있다는 것은 이미 죽었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말씀이시죠..?”


“이름이 자령이지요?”


“네..”


“자령의 아버지, 백귀로씨는 그저 귀문을 지키며 무당들을 돕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웬만한 무당들 보다 훨씬 영적인 능력이 뛰어난 분이셨죠. 축귀를 하시는 분이었어요. 그리고 이 고을의 부정부패를 알고 있었습니다. 사또와 양반 대감까지 연루된 큰 일이었지요. 하지만 결국 사또를 포함해 관아의 포졸들까지 모두 악령에 빙의되자 나중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지요.”


자령은 은진이하는 말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자신이 일본으로 건너가 있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짐작 조차하기 힘들었다.


“귀문지기였던 백귀로씨는 폐문 부적으로 거대한 악령 무리를 저기 봉우리 서너 개 너머 깊은 골짜기에 가뒀어요. 그런데 폐문 부적의 경우 영계에서 누군가 이를 봉쇄하는 짝의 부적을 사용해야 악령들을 봉인할 수 있죠.”


“네? 영계에서 봉쇄요? 문을 잠근다는 뜻인가요?”


“그렇죠. 자령의 아버지께서 직접 영계로 건너가 수많은 악령들을 봉인하고 문을 잠갔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지금 홀로 영계에서 수많은 악령들을 사로잡고 계시거나..”


“아니면요??..”


“모르죠. 반대로 제압당했을지도요. 하지만 확실한 건 육신이 그대로 영계로 넘어간 것이기에 시체도 없었던 것입니다. 산적들의 짓이 아니에요. 산적들은 오히려 자령의 아버지를 도왔죠. 정말 엄청난 사건이었거든요.”


은진은 엄청난 사건이었다는 말만 되풀이했고 자세한 내막은 아직 알려주지 않았다. 자령 역시 이에 지레짐작만 할 뿐 이 사건과 관련하여 자신이 모르는 것이 도대체 얼마나 더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엇험, 혹시, 안에 계시오? 걱정이 되어 찾아왔소이다.”


은진과 자령은 갑작스럽게 바깥에서 들려온 선준의 목소리에 둘 따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은진은 곧 자령에게 가만히 있도록 눈짓한 뒤 일어나 문을 열었다.


“네, 아까 급히 하던 일이 생각나 왔는데, 제가 조금 오래 걸렸네요. 곧 나가겠습니다.”


“아, 알겠소이다. 너무 밤이 늦어져가 걱정이 돼서 나왔습니다.”


그러자 방구석에 앉아있던 자령이 벌떡 일어나더니 은진이 살짝 연 문을 벌컥하고 열더니 선준을 바라보며 불렀다.


“선비님, 선비님!”


선준은 갑자기 은진의 안방에서 자령이 튀어나오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 아니, 그쪽이 어찌하여 그 방에..”


“어! 누이, 누이!! 여기에 와 있었당가요? 이야~ 우리 밥 먹던 중인디 같이 먹자요!”


그러자 행장이 까지 방방 날뛰며 자령을 반겼다.


“어, 선비님? 그리고 꼬마, 너도?”


자령이 어쩐지 둘의 등장을 모른 척 연기를 하자 선준 역시 이를 간파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은진 역시 자령이 몰래 침입했다는 사실은 말하지도 않은 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주시할 뿐이었다. 무엇보다 머릿속이 복잡해 보였다. 자령의 등장으로 어쩌면 영계의 귀문을 다시 열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던 것이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오?”


“이야.. 무서운데 또 신기하기도 하고..”


“두 분은 악령을 쫓고 있었다고 했지요? 두 분 다 축귀를 하시나요?”


은진이 선준과 행장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원래 저 혼자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떠도는 삶을 시작했는데, 이 아이, 행장이도 저와 같은 신세가 되었지요. 그때 제가 머물던 주막집의 아이였는데.. 둘 다 같은 악령 무리였지요. 우리는 원수가 같아요. 하하.. 아무튼, 축귀는 저 혼자 하지만 이 아이도 같이 다닙니다. 이제 슬슬 하나씩 가르쳐야지요.”


은진은 선준의 말을 듣고 행장이를 다시 살펴보았다. 처음엔 똑똑하고 당찬 아이인 줄 만 알았는데 행장이의 눈매와 귀가 보통 아이가 아님을 직감했다. 그러다가 행장이와 눈을 마주친 은진은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듯 부르르 떨더니 안색이 변했다.


“아니, 왜 그러시오?”


“아.. 아닙니다. 보통 꼬마가 아니었군요.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응? 왜요? 와그라는디요??!!”


행장이는 은진이 자신에게 갑자기 인사를 하자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래서, 그럼 그 악령들은 지금 저어기 서너 개의 고개 뒤 어느 골짜기에 갇혀있다는 말인가요? 저희 아버지도 함께?”


“네, 그런데 우두머리 악령은 거기 없을 겁니다. 아마 조무래기들이 갇혀있겠죠. 그리고 백귀로씨는 거기 없을 겁니다. 영계는 이승보다 훨씬 크고 넓습니다. 지금쯤 어디를 헤매고 있거나 싸우는 중이겠지요. 혹여나, 좋은 영가들과 만났다면 상황이 조금 나아졌을 수 도 있구요.”


자령은 은진의 대답에 점점 머릿속에 한 가지 선명해지는 것이 있었다.


“그럼, 저희 아버지는 일단 살아계시다는 거군요..!?”


“그렇지요.”


반면, 선준은 갈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윤대감 악령의 무리가 향했던 곳이 이곳 충청도인데 또 여기서 불과 수개월 전에 거대한 악령 무리가 한바탕 난리를 치고 갔다고 하니 혹시 같은 무리는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몇 개월의 차이가 있어. 아니야, 다른 악령 무리일 거야. 아직 그렇게 커졌을 리는 없어. 만약, 다른 악령 무리들이랑 세력을 합해 더 커지기라도 한다면.. 더 커지기 전에 소멸을 시켜야 한다.’


“저기, 은진 처자, 아니 은진씨, 혹시, 그 악령 무리의 우두머리에 대해 아시오? 이름이 어떻게 되오?”


악령의 존재가 너무나도 궁금했던 선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은진은 살짝 심호흡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축귀를 한다고 하셨지요?”


“아.. 네.”


“공력은 몇 년이나 되셨나요?”


“대략.. 본격적으로 홀로 시행한 건 오 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만.. 왜 그러시오?”


“그럼 축사 때, 축귀경도 외시나요?”


선준은 은진이 지나치게 꼬치꼬치 캐묻자 혹시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여 그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창기에는 외었지요. 하지만 일령을 만난 이후로는 그동안 연마한 무공과 함께 저만의 방식으로 축귀를 합니다. 아, 물론, 축귀경은 지금도 외우고 있지요.”


그러자 은진이 다시 선준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악령 무리의 우두머리가 궁금하다고 하셨지요. 이자는 축귀 대장의 용천검(龍天劍) 발언에도 눈하나 까딱하지 않더군요. 게다가, 대축사의 용천검은 물론, 태아검, 망수검, 사수검, 막야검, 비수검 등의 위력으로 겁박해도 끄떡도 안 하던 자입니다. 아마, 들어보셨을 겁니다.”


은진이 이렇게까지 설명하자 순간, 아버지 소천이 지난날, 축귀를 가르치며 입버릇처럼 일러주던 이름이 떠올랐다.


‘선준아 듣거라, 그놈은 ‘대인국 출신의 대인으로 지금은 악령이 된 자다. 나의 부모님 시절부터 나타나 악행을 저지르고 다녔고, 지금도 영계를 떠돌며 온갖 폭동과 살인을 저지르고 있단다. ‘청구야담’에 나오는 다른 대인족인 ‘우와 을’을 제압하여 더욱 강력해졌다는 소문도 돌고 있지. 그 자의 이름은 ‘이무량’이다. 명심하거라, 지금 네 실력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곧 너를 도와줄 물건과 귀인을 만날 것이다. 그전에 마주친다면 무조건 달아나거라.’


“이무량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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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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