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온몸이 얼어붙은 장걸, 동평의 옆에선 천검이 갑자기 어미 호랑이를 향해 반가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가뜩이나 무서웠던 이들은 천검의 행동에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르르르릉. 끼이잉. 그르르르릉.’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미 호랑이가 천검의 가슴팍에 얼굴을 갖다 대더니 마치 고양이나 개가 어리광을 부리듯 천검에게 안기듯 달라붙어 애교를 부렸던 것이다.
“혀.. 형님, 이, 이게 무, 무슨..”
“쉿, 가만히 있거라.”
천검은 급기야 어미 호랑이의 얼굴과 목덜미를 만지며 또 말을 걸었다.
“월화야, 너 언제 여기까지 왔느냐.”
‘그르르르릉’
“그래, 기특하다, 기특해. 그래도 거기서 살아남아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가족도 꾸렸구나. 미안하다. 그리고 날 이리 알아봐 줘서 고맙다.”
‘끼이이이잉. 그르르르릉’
천검과 어미 호랑이는 마치 대화를 하는 듯했다. 어미 호랑이는 이제 아주 대놓고 바닥에 누워 배까지 드러냈다. 천검은 어미 호랑이의 배를 어루만져주며 녀석과 한동안 놀아주었다.
“도.. 동평아, 우, 우린 어떡해야 하냐..”
“형, 형님이 천검 형님에게 말 좀 해봐요.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는지. 전 지금도 무서워 죽겠는데.”
“이제 가자.”
한동안 어미 호랑이와 시간을 보내던 천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어미 호랑이도 그들이 가려는 것을 눈치챘는지 다시 돌아누워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천검을 바라보는 눈빛이 마치 개나 고양이 같았다.
“월화야, 내가 오늘은 너와 네 새끼를 구했고, 너도 우리를 이렇게 보내주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단다. 난 우리가 네 가족들과 마주치지 않았으면 한다. 무슨 말인지 알지?”
월화는 천검이 하는 말을 이해했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저 가만히 천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었다.
‘그르르르릉’
“월화야, 이제 간다. 마을에는 내려오지 말고 산짐승을 잘 찾아 먹고 지내거라. 날이 추워지는 게 걱정이다. 잘 살거라.”
천검과 일행은 그 길로 동굴을 빠져나왔다. 천검 일행이 무사히 빠져나오자 동굴 밖에서 그들을 기다리던 일행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와, 형님, 무사히 나오셨군요!”
“역시, 우리 두목님이 최고야, 아무렴.”
하지만 천검은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그들을 조용히 시키고는 사방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진둘, 말봉, 병팔이 그리고 여기에 있는 모두 다 잘 들어라.”
“네, 넷”
“우리는 착호갑사들이다. 착호갑사는 사람을 해치거나 해치려는 호랑이만 사냥한다. 그리고 착호령과 허가서 없이는 사냥하지 않는다, 알겠냐?”
천검의 단호한 목소리에 다들 기가 죽었는지 기뻐 날뛰던 목소리가 급격히 잦아들었다.
“네..”
“그, 그럼요. 형님..”
천검은 진둘을 한 번 바라보더니 다시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다.
“호랑이는 영물이다. 어떤 호랑이는 악하지만 어떤 호랑이는 제 삶만 살다가거나 사람을 돕기도 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제 영역이 있다. 제 영역을 넘지 않으면 서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게다가. 영물은 함부로 죽이는 게 아니다. 모두 알겠느냐?”
“네!”
“넵!”
‘덜컹, 덜컹, 덜컹’
‘쾅-‘
자령은 바깥에 있는 수많은 무언가가 문을 열기 위해 미친 듯이 문을 흔들어대던 중 급기야 문이 열려버리자 마치, 숨이 멎는 듯한 공포감에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스윽-‘
열린 문 사이로 새하얀 치마와 저고리를 걸친 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놀라운 건 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바깥에 있던 수많은 무언가들과 미친 듯이 문창살을 두들기던 수십 개의 손바닥들이 삽시간에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귀.. 귀신인가. 저, 저것이 정녕 귀신인 건가..’
자령은 처음 느껴본 두려움에 떨며 어두운 구석에 앉아 방 안으로 들어온 어떤 여인을 살펴보고 있었다.
“누구요.”
자령은 귀신이라고 생각했던 여인이 갑작스레 말을 걸자 이것이 귀신인지 아닌지 몰라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누군데, 그 정도 담력으로 감히 안방까지 들어와 결계들을 어지럽힌 것이오?”
은진이 안방의 등잔불에 불을 밝히자 곧 방안은 환해졌다. 방안이 밝아지자마자 자령은 또다시 자지러질 듯이 놀라고 말았다. 자령이 몰래 침입했을 때 보았던 수백 개의 부적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저 깨끗하게 정돈된 가구들과 침구류가 따뜻한 온기를 뿜는 평범한 안방으로 돌변해있었던 것이다.
‘뭐야.. 부적들은..? 그리고 바깥에 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거야..? 귀신일까, 아닌가? 호, 혹시, 저자가 은진.. 은진인가?’
“누군지 빨리 대답하시오. 내가 오지 않았다면 바깥에서 떠도는 영들이 당신을 끌고 갔을 건데 내 구해준 거니. 정체를 밝히고 내 집에 침입한 목적에 대해 이야기하시오.”
자령은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이었지 드디어 은진과 마주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정신을 다시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 근중을 아시오..?”
자령이 입을 열자 은진은 살짝 놀란 듯 흠칫하며 표정이 바뀌었다.
“이 지역에 살면서.. 근중을 모를리는 없지 않소? 겨우, 그게 그 이유요. 왜 우리 집에 몰래 들어왔고 이 안방에 침입했는지 말하지 않으면 내 당장 관아에 넘기겠소.”
“그자.. 그자가 제 아버지를.. 아니, 솔직히 이제는 그자가 원수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제 아버지의 죽음에 그자가 엮어있소. 그리고 그쪽은 한 때 근중과 연인 관계가 아니었소?”
자령의 대답에 은진은 또다시 놀라고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 그 일을, 이제는 지나간 일이라 과거가 된 일을 생전 처음 본 여자 아이의 입에서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그걸.. 그쪽이 어떻게 아오?”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오. 정말, 정말 근중은 관계없는 일이오? 정말 우리 아버지의 죽음에 산적은 관계가 없소??”
은진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혹시, 고을의 귀문지기 백귀로가 그쪽의 아버지였소..?”
“네, 맞습니다..! 아시오? 진실을 알고 있는지요?”
자령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작은 단서라도 찾아내기 위해 여태 달려왔다. 만약, 은진을 통해 무언가 얻을 수 있다면 이제는 그녀에게 보답이라도 할 판이었다.
“하아.. 그렇군요. 그분이 그렇게 외치던 이름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바로 당신이었군요.”
자령은 처음 듣는 소식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외쳤다니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