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아, 지금이야.”
‘휙- 휙- 휙-‘
소백의 신호에 차선이 바람보다 빠른 솜씨로 화살 세 개를 날렸다. 이에 대나무 숲으로 달아나던 사람 셋이 ‘억’하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러자 바위 뒤에 숨어있던 소백이 쏜살같이 달려가 그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역시, 아니군.”
“형, 제 말이 맞지요?”
소백의 뒤로 전신이 달려오더니 차선이 쏜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미처 대나무 숲으로 달아나지 못한 이들은 다름 아닌 싸리비들이었다.
“도대체 누굴까? 뭐지? 아니, 우리에게는 아무도 아무런 뒷얘기도 안 해주고 귀신들만 잡아오라는데, 아니, 당최 이유를 알려줘야 할거 아냐?”
“오빠, 혹시 이 근방에 무슨 큰일이 있었던 거 아닐까? 우리도 이 일 이제 몇 해를 해봤잖아. 가만 보면, 사람들이 뒷설명을 충분히 안 해주는 데는 항상 큰 이유가 있더라고.. 밀양 큰 대감댁도 그랬고, 저기, 어디야, 영천 쪽도 그렀잖소.”
차선이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사실 경상 지역에서 충청으로 넘어온 것도 이유를 불문하고 인근의 잡신과 잡령들을 거둬주기만 해도 큰돈을 준다는 말 때문에 온 거지 이에 대한 배경 설명이나 이유에 대해 알려주는 이들은 없었다.
“맞아, 야, 그래도 이 오라버니가, 아니다. 우리 신무패가 드디어 경상도를 벗어나 점점 전국 팔도로 소문이 퍼지고 있다는 건 좋은 일 아니냐. 하하하.”
소백이 또 요점을 벗어나 자화자찬하자 차선과 도희는 전신을 바라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형, 그런데 이 싸리비들은 잡신도 잡령도 아니잖아요. 이게 벌써 몇 번째인데.. 귀신들을 잡은 부적을 가져다줘야 나머지 돈도 받을 텐데요..”
“도희야, 우리 이제 얼마나 남았냐?”
소백이 묻자 도희가 주머니에 있는 모든 엽전을 꺼내 세기 시작했다.
“다섯 냥하고 칠전 정도 남았네요.”
“오빠, 이거면 우리 다섯, 열흘도 겨우 버텨. 나머지 칠십 냥을 받으려면 빨리 잡귀들 다 잡아들여야 하잖아. 아휴.. 가자 가자, 야, 금정아, 너 혹시 요즘에 뭐 본거 없니? 꿈에서 누가 뭐 말 안 해주던? 요즘 너무 조용하다 너.”
차선이 흥분하며 소백에게 칭얼거리다 말고 금정을 돌아보며 말하자 도희가 얼른 금정을 감싸며 차선을 말리기 시작했다.
“언니, 이 언니, 또 시작이네. 왜 그걸 애한테 물어봐. 금정아, 괜찮아. 부담 갖지 마, 그런 거 부담가지면 꿀 꿈도 못 꿔.”
“아, 이거 봐, 오빠! 지금 우리가 귀신을 못 잡으니까 이렇게 되잖아. 얼른, 대숲에 들어가서 진을 치고 있던가 다시 예전처럼 온 산에 부적이라도 붙이자!”
사실, 차선이 이렇게 흥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곧 소설(小雪)이 다가올텐데 더 이상 바깥에서 잠을 잘 수 도 없었다. 당장 빈집을 찾아 임시로 기거할 곳을 지내거나 허름한 움막이라도 빌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에이~ 왜 그렇게 서두르냐. 아직 낮엔 따뜻하고 또 이 오라비가 모두들 솜옷도 사주지 않았냐? 뭐가 그리 춥다고..”
차선의 말에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소백을 보니 차선은 이제 짜증 나는 것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햐아!! 진짜 우리가 오빠, 오빠 하면서 따라주니까 아주 그냥 지 맘대로야.”
차선의 불호령은 종종 있어왔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소백도 차선의 기운을 느꼈는지 움찔하며 차선을 돌아보았다.
“어.. 어허이..! 너, 지금 이 오라비한테 ‘지’라고 했어!?”
“그래했다. 어쩔 건데? 오빠면, 우리보다 몇 살이 나 더 많으면 어른스럽게 우리를 돌보고 살필 줄 도 알아야지. 지금 날씨가 안 춥다고 하는데, 오빠는 남자잖우! 나나 도희 그리고 금정이는 여자야. 그리고 금정이는 가뜩이나 아직 애기인데 밤에 얼마나 추운지 알아? 오빠는 열흘도 넘는 밤 동안 나랑 도희가 금정이를 가운데 두고 껴안고 자는 거 모르지?”
차선의 말에 소백은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 본인이 아주 훌륭하게 무리를 이끈다고 생각을 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그렇지, 알리가 없지. 가뜩이나 없는 돈에 저녁엔 꼭 약주를 한 사발 마시니 몸이 달달하고 따끈한 게 금방 잠들고 마니 알리가 없지.”
소백은 그저 마른침을 꿀꺽하고 삼키고는 도희와 금정을 바라볼 뿐이었다.
“야, 너네도 할 말 있잖아, 얼른 해! 우리 오늘 여기서 담판을 지어야겠어. 다들 이 오빠를 따르는데 이유도 있지만 이제 불만도 있잖아? 우리도, 부모 하나 없는 우리들도 어디 한 곳에 정착하고는 못살아도 따신 밥은 먹어야 하고 아늑한 곳에서 잠은 자야잖아!”
도희는 차선을 바라보았다고 다시 고개를 푹 숙였고 전신이 역시 땅바닥을 바라볼 뿐이었다.
“도희야, 금정아, 말해봐. 아니, 말해보렴. 이 오라비가 그동안 너무 정신없이 살아왔다보다. 그래 어디 모두들 얘기를 들어보자.”
“… 아니, 저희는 그냥..”
“야아! 똑바로 말해. 그냥 솔직히 말하라고. 우리가 뭐 지금 당장 헤어지자고 하냐.”
우물쭈물 대는 도희를 보며 차선이 윽박지르자 소백이 차선을 말리고 나섰다.
“야, 너야말로 그만 흥분해. 뭘 원하는지 충분히 알아들었으니까. 얘네들이 너랑 성격이 같냐? 아주 그냥 단단히 벼르다가 오늘 날을 잡았구만. 그래 좋아, 도희야, 금정아, 그냥 너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해봐.”
“아니.. 그냥 저희는 차선 언니랑 똑같은 의견이긴 해요. 따뜻한 밥도 먹고 싶고 특히 밤엔 너무 추워서 따뜻한 곳에서 자고 싶어요.”
소백은 그제야 그동안 자신이 너무 자신만 생각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어리석었네.. 아, 이걸 어떻게 만회한다.’
소백은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곧 입을 열었다.
“그래, 좋아. 일단, 오늘부터 난 술을 끊을게. 당장, 우리가 가진 전이 얼마 안 되니 아껴야겠다.”
“그리고..”
“그리고 또 뭐? 그래 말하거라.”
“전신 오빠가 다시 부적들을 그려서 대벽산자락에 모두 붙이고 또.. 마을의 저수지와 산너머 쪽에도 결계를 걸어서 덫을 놓는 게 제일 빠를 것 같아요.”
도희가 말을 마치자 소백은 다시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다시 결계들을 치자는 거지..?”
“네, 형. 제가 전에도 말했듯이 그게 제일 효율적일 것 같아요. 이렇게 같이 다니면서 잡신이나 지박령을 쫓는 건 사실..”
“맞아.. 그건 내 방식이지. 난 대놓고 붙어서 이 주먹으로 두들겨 패서 저승으로 보내는걸 제일 잘하니까.”
“그건 형이 최고죠.”
차선이 모두의 얼굴을 둘러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오빠, 이게 우리 마음이야. 이제 우리 마음도 좀 알아줘.”
소백은 이제야 모두의 마음을 알았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장 오늘부터 전신이는 부적을 만들고 도희와 금정이가 그걸 좀 도와주렴. 그리고 차선이는 나랑 같이 결계를 칠 자리들을 보러 다니자. 아까 어디 어디랬지? 대벽산이랑 저수지 그리고.. 아, 산너머 뒤쪽?“
“네..!”
살벌한 분위기가 지나가고 다시 갈등이 해결되는 분위기를 느낀 도희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이에 전신과 차선까지 긴장이 풀려 얼굴에 웃음이 띠기 시작했다.
“언니.. 오빠..”
모두들 다시 올라온 좋은 기운으로 맡은 일을 하기 위해 분주해질 참이었다.
“언니이..”
평소에도 말이 별로 없어 조용한 금정이 도희를 불러 세운 것이다.
“어머, 금정아, 응? 언니가 뭐 도와줄까?”
도희는 금정이가 먼저 말을 걸자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 앉아 금정을 바라보았다.
“언니, 나 밤에 꿈을 꿨는데..”
“어..? 어..! 어떤 꿈?”
처음에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도희는 갑자기 눈이 커지더니 적극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너.. 꿨어..? 꾼 거야..? 어, 언니이! 오라버.. 오빠..!”
갑작스러운 도희의 큰 소리에 놀란 차선과 소백이 도희와 금정이 앉아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왔다.
“왜?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금정이 아프다고 하니??”
특히, 차선은 달려오자마자 금정의 이마에 손을 대고 온몸 여기저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금정이가 꿈.. 꿈꿨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