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대무당 할멈 3

by Rooney Kim


‘휘이익-‘


‘치이 이이이이 이이익-‘


일령으로 해치를 베었다고 생각한 선준은 다시 한 손으로 일령을 쥐고 앞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해치는 오히려 기분이 좋다는 듯 큰 입까지 벌리고 웃으며 광기 어린 눈빛으로 선준을 바라보았고 그제야, 일령의 샛노란 광채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뭐.. 뭐야, 저 녀석, 해치가.. 설마 일령의 불기운을 먹어치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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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선준아, 해치말이다. 내가 좋은 녀석이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요괴는 요괴이지 않느냐?’


‘그렇죠. 스님.’


‘해치는 부정부패를 막고 불의 기운을 먹어 마을과 나라를 돕는 이로운 일을 하는 녀석이지만 간혹 사나운 녀석도 있을 게야. 만약, 해치와 맞서게 된다면 그 어떤 불 공격도 소용이 없단다. 오히려 이는 녀석의 기운을 북돋우고 흥미만 더 끌게 할 게다. 아주 맛있는 보신 영양탕을 먹인 셈이지 명심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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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저.. 저 녀석, 일령의 기운을 흡수해 버렸어..’


선준은 일령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오른손으로 일령을 꽉 쥐어보았다. 일령이 미미하게나마 반응하는 것으로 보아 다행히 일령의 모든 기운이 흡수된 건 아니었다


‘저벅저벅’


해치는 땅바닥에 넘어져 어쩔 줄을 모르는 선준에게 한 걸음씩 다가왔다.


‘갸우뚱’


점점 가까이 다가오던 해치는 마치 강아지처럼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리더니 뭐라고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구랴 귤바"


‘응..?! 뭐야, 도대체 뭐라는 거야.’


"아구랴 귤바"


해치는 도저히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하며 다시 선준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천진한 커다란 눈망울 뒤로 무섭게 오싹한 안광이 있어 선준은 도저히 똑바로 쳐다보고 있기 힘들었다.


‘쾅-‘


‘쾅쾅-‘


‘쾅쾅쾅-‘


선준이 해치를 정면에 두고 방어 자세를 취하는 동안 선준의 뒤쪽으로 멀리서부터 문이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준이 일령으로 막아 둔 백개 이상의 문을 마침내 불가살이가 다 깨부수고 내려온 것이다.


‘꾸아아아아아아아-‘


선준은 이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선준의 뒤에서는 화가 잔뜩 난 불가살이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고 그의 앞은 해치가 무섭게 해맑은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일령, 다시 힘을 내보자..! 일령, ㄱ..’


‘툭-‘


선준이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일령으로 공격 주문을 욀 참이었다. 별안간 선준의 갓 위로 무언가 툭하고 떨어졌다.


‘으앗.. 깜짝이야. 이건.. 뭐야?’


해치와 불가살이를 동시에 감당해 볼 요량으로 단단히 마음먹은 선준의 머리 위로 느닷없이 떨어진 건 다름 아닌 동아줄이었다.


“잡아! 꽉!”


그리고 울창한 숲 위에서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준이 어리둥절하는 사이에 고함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얼른 잡아아~ 이것아, 빨랑 시간없으니께”


선준의 앞뒤로 해치와 불가살이가 한 길도 채 안 되는 거리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선준은 더 의심하거나 고민할 틈이 없었다. 이것마저 속임수라도 하더라도 일단은 당장 해치와 불가살이는 피하고 봐야 했다.


‘꽈아악-‘


‘쑤우우우우우우욱’


선준이 동아줄을 잡자마자 하늘에서 무언가 엄청난 힘의 거인이 자신을 들어 올리기라도 하는 듯 선준은 공중으로 열 길도 더 넘게 끌려 올라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선준이 동아줄을 잡고 공중으로 올라가자마자 해치와 불가살이는 본의 아니게 서로 머리를 부딪혔다.


"아고타 파랴, 아고타!!"


해치가 앞다리로 자신의 머리를 만지며 불가살이에게 뭐라고 하자 불가살이도 머리가 아픈지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큰소리로 뭐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꾸아아, 꾸에에, 꽈라라라라"


"아고타!! 아고파 파랴."


선준은 해치와 불가살이의 의외의 모습에 방금 전까지 저 둘 때문에 공포에 떨었던 자신이 오히려 조금 민망해질 정도로 아래의 둘은 마치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마냥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해치와 불가살이가 서로 통증 때문에 자신만의 언어로 투닥거리며 으르렁대는 동안 선준이 꽉 잡은 동아줄은 하염없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오옳지~ 이제 다 꺼냈다.”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선준은 빨리 동아줄을 잡으라던 나이 든 여인의 목소리가 점점 더 또렷하게 들려왔다.


‘여.. 여긴 또 어디지.. 앞이 앞이 안보..’


“아재, 아재! 눈을 떠보랑게요!”


“선비님, 선비님 눈을 뜨셔요. 이제 뜨셔도 됩니다!”


‘아니.. 이건 행장이와 은진씨의 목소리가 아닌가..?’


선준은 또다시 아까 산속에서 헤맬 때 두 번이나 마주했던 가짜 은진, 행장, 자령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거짓이면 어쩌지. 내 이제 정말 가만히 안 둔다.’


선준은 큰 마음을 먹고 부릅하며 눈을 떴다. 과연 그의 눈앞에 걱정으로 가득한 눈빛의 은진과 거의 울상이 된 행장이 그리고 그 옆에서 안심한 표정을 한 자령이 있었다.


“아재..! 으아앙~”


선준이 눈을 뜨자 곧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울음을 터뜨린 건 다름 아닌 행장이었다. 행장이는 대무당 할멈 네에 오자마자 선준이 혹시라도 어떻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었던 것이다.


“그래, 행장아.. 행장아, 난 괜찮다.. 그런데 너 자야 맞지? 넌 정말 진짜 행장이인거지..?”


“아니, 혼자 산에서 헤매다 할매가 우물에서 겨우 건졌더니 당최 뭐라고 하는교..? 흑흑, 난 아재가 우째되는 줄 알고.. 으아앙~”


선준은 도무지 행장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선준은 그제야 자신의 몸이 물에 잔뜩 젖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 날이 추우니 먼저 방의 아랫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몸부터 녹이시지요. 곧 입동(立冬)이라 대낮이지만 산 꼭대기는 제법 날씨가 쌀쌀합니다.”


선준은 은진과 자령 그리고 행장이의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엥이, 쯧쯧, 쟤가 선준이냐?”


일행이 방으로 들어가는 동안 대무당 할멈이 그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더니 입을 열었다. 이에 선준이 돌아보며 답했다.


“초면에 신세가 너무 많습니다. 네, 제가 선준입니다.”


“에구, 그리 나약해서 어째 네 대업은 다 이루겠냐? 착해빠져서 요괴하나 못 잡겠네.”


“아니.. 그건 아까 산에서 제가 결계에..”


“됐어. 얼른 들어가 몸이나 추슬러. 거기 검은 옷 입은 꼬마 아가씨는 부엌으로 좀 와봐. 이 할미 좀 도와주우.”


자령은 대무당 할멈의 부름에 부엌으로 후다닥 달려갔고 선준은 곧 사랑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아랫목에 누웠다.


“아재, 아재. 이제 괜찮은교?”


“그래, 자야, 걱정 많이 했니?”


“나야 뭐 항상 아재 걱정이지요. 헤헤.”


행장이는 이제 긴장이 풀렸는지 금세 베시시하고 웃어 보였다.


“은진씨,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전 분명히 은진씨와 얘들을 따라..”


은진은 선준과 행장이를 한 번 쳐다보더니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쉰 뒤 대답했다.


“맞습니다. 세 봉우리의 결계에 걸리신 거예요. 아마도 맨뒤에서 저희를 따라와서 그런 것 같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결계가 한 번에 풀리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거든요. 제가 여기 올 때 두 번 다 결계에 걸렸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동아줄을 잡고 저기 마당에 있는 우물을 통해 대무당 할멈이 건져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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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snow-mount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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