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이요?! 아니, 전 산 중에서 결계에 걸렸는데 그러데 거기서 절 우물로 건져냈다구요..?! 전 도무지 이해가..”
“네,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이해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그 결계에서 구출하거나 혹은 혼자 산을 헤매다 저절로 결계를 빠져나가 다시 인간 세상으로 가는 경우에는 목숨을 건지는 것이고 아니면..”
“아니면.. 그렇게 거기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오..?”
“네, 대무당 할멈도 뭔가 대비하기 위해 이렇게 결계를 걸어둔 것 같습니다.”
선준은 아까 결계 속에서 마주했던 해치와 불가살이가 생각났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공포스러웠지만 또 동아줄에 매달려 내려다봤을 때 보인 모습은 자못 귀여워 순식간에 인상이 바뀔 정도였기 때문이다.
“혹 결계 속에서 누구를 만나거나 마주했는지요?”
은진의 물음에 선준은 곧바로 해치와 불가살이와 겪은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
“전 정말 이 요괴들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느꼈어요. 일령의 공격에도 끄떡없고 일령의 기운을 그렇게 받아먹는 요괴는 일생에 본 적이 없거든요.”
“해치를 만나셨군요. 세상에나 너무 귀엽지 않나요..?!”
은진은 해치 이야기가 나오자 그동안 선준 일행에게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화사한 웃음을 만면에 꽃 피우며 격렬하게 반가운 반응을 보였다.
“아니.. 산 중에 있는 해치를 만난 적이 있소? 해치가 얼마나 무서운 요괴인지는 아시지 않소..?”
“아, 그렇지요. 길들이지 않은 해치는 귀여운 마귀로 불릴 정도로 무섭기도 하지요. 악령도 씹어 삼키는 녀석이라 웬만한 귀신들은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하, 그런데 요 녀석은 너무 사랑스럽지요. 아, 실은, 이 해치가..”
‘아구랴 귤바, 아구랴 귤바’
때마침 선준은 문 밖에서 아까 산 중에서 들었던 해치의 목소리와 똑같은 소리를 들었다.
“엇! 저, 저 목소리, 딱 저런 소리를 냈답니다. 제가 이 일령으로 공격을 했는데 그걸 꿀꺽하고 삼키더니 저런 소리를 내며.. 어?! 으아앗.”
그러다 선준은 갑자기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누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행장이를 한 손으로 가려 보호하고 한 손에는 일령을 쥐며 은진에게 조그맣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왔소.. 저 밖에.. 저 바깥에..”
“뭐요..? 해치 말이오..?”
은진은 선준의 긴장한 모습을 보며 같이 장단을 맞춰주다가 도저히 웃음이 터져 안 되겠다는 듯이 입꼬리가 실룩거리다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푸.. 푸흡, 아하하하하하. 죄, 죄송합니다. 선비님, 꺄하하, 선비님도 해치만큼이나 너무 귀여우심.. 아, 아닙니다. 푸흡..”
선준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은진 모습과 문 밖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해치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섰다.
‘설마.. 지금도 내가 결계에 걸려있는 건 아니겠지?’
선준이 일령을 쥔 손을 꽉쥐자 일령의 다섯 자의 샛노란 불줄기가 타오르듯이 튀어나왔다.
‘일령은 잘 작동되는데.. 아니야, 아까 결계에 걸렸을 때도 일령을 쓰긴 했잖아..?’
“어이구, 우리 흰둥이 왔어?”
바깥에서 할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마당에서 기르는 강아지를 대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준은 긴장하면서도 동태를 확인하기위해 문을 살짝 열고 바깥의 분위기를 살폈다.
‘아구랴 귤뱌, 귤뱌’
“밥? 그래그래, 자 여기 이거 하나 먹고 저기 마당에서 놀거라.”
‘꾸르르, 꺄아’
할멈이 붉게 타오르는 나무숯 한 덩이를 해치에게 먹이자 뒤에서 아까 산 중에서 마주했던 불가살이도 뛰어왔다.
“에구, 불덩이 넌 좀 전에 먹고 나갔잖냐. 흰둥이 먹게 좀 둬라.”
‘꾸르르르르. 꺄아 끼야’
하지만 불가살이의 애교에 할멈은 못 당하겠다는 듯이 부엌으로 들어가서 어디선가 할멈의 주먹보다 큰 두꺼비를 불가살이의 입에 던져 주었다.
‘얌냠, 꿀꺽’
큰 두꺼비를 한 입에 삼킨 불가살이는 할멈을 향해 엉덩이를 두어 번 흔들거리더니 해치가 있는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너네 둘 다, 저기 구석에서 놀아. 오늘 할미한테 중요한 손님들이 왔응께. 알겠지?”
선준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이 모든 광경을 숨소리도 못 낸 채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놀랍죠? 저도 처음엔 거의 기절할 뻔했어요. 저승에서도 쉽사리 보기 힘든, 게다가 저렇게 길들이기는 굉장히 어려운 저 영물들을 어떻게 강아지처럼 길들였는지.. 그것도 둘 다 같이 한 번에 사람과 지내는 건 처음봐요. 참, 대단한 사람들 중에서도 대단한 사람이에요. 대무당 할멈은..”
‘쾅-‘
은진과 선준 그리고 행장이가 문을 빼꼼히 열고 몰래 마당을 쳐다보며 대화하는 동안 방 옆으로 난 작은 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아, 시방, 다들 안 들려? 밥 다 차렸으니께 상 좀 들고 들어가라고. 기껏 차려줬는데 내가 이것까지 해줘야 쓰겠어?”
“아, 아닙니다. 네네, 제가 들고 가겠습니다.”
선준은 할멈의 벼락같은 호통에 얼른 식사 상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곧 안방에 모두 모여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하나같이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대무당 할멈은 안방의 제일 안쪽 구석에 앉아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 저번에 너 왔을 때 이제 그만 오라고 했잖여. 왜 자꾸 찾아와 싸, 갈 날 잡아 놓은 사람한테”
“너 그만 이 동네에서 떠라. 어차피 여기 말고도 먹고살 곳은 많잖아? 경상도가 오히려 돈은 더 되지 않아? 너네 수많은 수하들 먹여 살리려면 대감집 자제들을 털어..”
“야이씨, 또, 어디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씨부려 샀네.”
근중은 천검의 멱살을 쥐었다가 다시 놓았다. 천검은 여전히 근중을 내리 깔아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나처럼 나라님 말씀아래 규율을 지키면서 정당하게 돈을 벌던가. 어디 가능하다면.”
“너 진짜, 자꾸 이렇게 삐딱하게 나올래?”
근중은 참다못해 주먹을 들어 천검의 얼굴에 갖다 댔다. 하지만 천검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저 여유롭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