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겸세의 비밀

by Rooney Kim


'휙- 휙-'


'휘휙- 휙-'


초가집은 금세 불에 타올랐다. 가뜩이나 겨울이라 건조한 데다 초가지붕은 마른 장작처럼 삽시간에 온 집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제 곧 나올 텐데."


하지만 활활 타오르는 집과는 달리 그 안에서 쥐새끼 한 마리 나오지 않았다.


궁금하다 못해 답답해진 천검이 집으로 달려가 불에 탄 문을 뜯어냈다.


"어.. 없습니다!"


"뭐.. 뭐라?"


정만은 어안이 벙벙했다. 분명 저 안에 있던 자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으아악-"


"크아악-"


순간 산 위에서 대기하던 갑사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천검과 정만이 이를 알아채고 갔을 때에는 이미 서너 명의 갑사들마저 처참하게 죽은 뒤였다.


"이.. 이 자식이. 몰래 빠져나와서는 갑사들을 더 죽이고 달아났어."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필시 적에 대해 더 조사한 뒤 움직였다면 오늘의 이런 피해는 막을 수 있을 터였다.


"쫓을까요?"


"아니다. 날랜 갑사 셋을 붙여 위치만 파악하고 다시 친다. 제대로 일격을 가해야 놈을 잡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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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끌끌. 야이 자식아, 니가 아무리 조용히 살다가고 싶다고 해도 니 운명은 이미 바뀌었어. 나 말이야 나! 내가 니 안에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인데. 크하하하하.'


겸세는 선잠에서 깼다. 방금 들은 목소리가 꿈인지 진짜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자신 안에 녀석이 있다는 건 변하지 않았기에.


[이십여 년 전.]


"정말이다. 아이야, 아 문을 열어주렴. 나도 너처럼 너무나도 아프단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죽을 것만 같아."


우치는 고민했다. 우선 무엇보다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확실치 않았다. 십 수년을 배를 곯아 산속 어딘가에 쓰러진 건 기억이 나는데 이후 다시 정처 없이 떠돌다 절밥이라도 얻어먹고자 이른 새벽에 어느 절에 도착했다는 것 외에 기억이 나는 게 없었다.


"살짝, 그저 조금만 열어주렴. 그럼 맛있는 걸 주겠다. 쌀밥이랑 고기를 주겠다."


'쌀밥? 고기?'


우치는 태어난 후 제대로 된 쌀밥과 고기를 먹어보기는커녕 구경해 본 적도 없었다.


'마지막 기회다. 영계로 끌려가서 저승으로 가 버리면 답도 없어. 기력은 없지만 지금이 기회야.'


우치는 천천히 소리가 나는 상자로 다가갔다. 볼품없는 나무 상자였다. 겉에는 덕지덕지 부적만 잔뜩 붙어있었을 뿐 아무런 잠금장치도 없었다. 게다가 우치는 그 부적들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래, 그래. 옳지. 살짝만 열어주렴. 내가 곧 먹을 걸 주겠다."


그럼에도 우치가 우물쭈물 대자 이제는 내지르기 시작했다.


"소원을 들어주겠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다 들어주마."


'소원..?'


우치는 상자 앞에서 살짝 고민했다. 이름도 모르는 절간의 허름한 창고 안, 작은 상자 안에서 나는 소리라니 어쩌면 이것도 꿈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다면 꿈에서라도 실컷 먹어보자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끼이이.'


'옳지. 그래 그래. 조금만, 조금만 더.'


"누구냐? 거기 누구야?"


'탁-'


우치는 바깥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얼른 상자를 도로 닫고는 창고 밖으로 나왔다.


"스.. 스님, 제가 배가 너무 고픈데요.."


정법은 피죽도 못 먹은 듯 몰골이 말이 아닌 우치를 보자마자 혀를 한 번 차고는 녀석을 데리고 부엌으로 갔다. 마침 아침 공양으로 차려놓은 음식이 있었고 우치는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그 시각, 창고 안.


'나.. 나왔다. 정말 빠져나왔어..!'


이무량은 궤에 갇힌 지 스무 해가 지난 무렵 드디어 세상 밖으로 빠져나오게 되었다.


'스으윽.'


'탁.'


기력이 하나도 없는 이무량이 창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이 누군가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드디어 나왔구만. 정신은 좀 드냐?"


이무량은 놀랄 틈도 없었다. 이십여 년 만에 나온 터라 세상을 뒤집어 놓던 기운은 고사하고 당장 일어날 힘도 없어 붙잡혀도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너는.. 뭐야.. 일부러 나를 풀어주는 건가..?"


그러자 정법은 씨익하고 소리 없이 웃어 보이더니 근처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풀어준다고? 내가? 이십 년 전에 널 잡으려고 누님이랑 나도 죽을 고비를 여럿 넘기고 소중한 친구들 목숨까지 앗아간 너를, 내가? 하하하."


이무량은 처음으로 무력감을 느끼며 정법을 올려다보았다.


"해치가 네 불의 능력을 모두 흡수했으니 네가 기력을 찾는다 해도 이젠 반쪽짜리 이무량이지. 나랑 누님이면 충분히 막을 수 있어."


"부엌에 새타니가(굶어 죽은 아이 귀신) 하나 있다. 이미 이십여 년 전에 굶어 죽은 아이 귀신이야. 가여운 아이지. 그리고 건너 방에는 아이가 하나 있다. 역시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지."


"그래서.. 그걸 왜 나한테 설명하냐..?”


"네가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전국에 잡귀들이 잠시 들끓었던 적이 있지. 널 사칭하는 잡귀도 있었고 꽤나 강력한 악귀도 있었지. 그래봐야 다들 강철이보다는 아래였지만."


"훗.. 강철이 정도야."


"부엌에 있는 새타니의 이름은 우치다. 우치는 죽은 지 이십여 년이 다 되어가지만 자기가 죽은 줄 몰라. 그저 억울하게 죽은 엄마, 아빠를 찾아 정처 없이 떠도는 가여운 혼이다."


"...그래서? 어쩌.."


"네가 거둬라. 우치를 흡수해."


"왜지..?"


"나중에, 한참 나중에 알게 될 거다. 그리고.."


"또 뭐..?"


"우치를 흡수한 뒤 건넌방에 있는 아이 안으로 들어가라."


"뭐..? 인간의 몸에?"


"응."


"싫어. 안돼."


"너 그럼 다시 궤짝에 들어갈래? 아님 다시 세상의 멋과 맛을 누리면서 업을 해소하고 덕을 쌓으며 살아볼래?"


“허.. 멋과 맛 좋아하시네. 덕? 그래 내가 쌓은 업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한 사람의 인생으로 그 업이 다 해소될까?"


"응. 거의 다 갚을 수 있는 기회야. 내가 그 기회를 주는 거라니까."


이무량은 정법을 다시 쳐다보았다. 이십 년 전 자신에게 대항하며 덤벼들 때 보았던 표정이 그대로 어려있었다. 즉, 지금 정법은 매우 진지하단 말이었다.


"하아.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새타니와 함께 아이의 꿈을 통해 몸으로 들어가 그리고 그렇게 알아서 자유롭게 살아봐."


“뭐..? 자유롭게?"


"응."


"그래봤자 또 날 감시하거나 사람을 붙여서.."


"아니. 내가 무슨 그럴 돈이 있냐. 껄껄."


"그럼 날 풀어주는 거야?"


"그런 셈이지."


"정말이지? 날 못 찾게 돼도 괜찮지?"


"응. 때가 되면 네가 알아서 찾아올 거니까."


"뭐?"


"됐다. 얼른 들어가 봐라. 나도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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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둑.'


'툭툭.'


'스으윽. 스으으으윽.'


"무슨 소리를 못 들었습니까?"


"아재 아재, 나도 들었다요."


안방에 모여 대책을 세우던 일행은 바깥에서 난 인기척에 모두 하던 말을 멈췄다.


"쉿. 뭔가 왔어."


할멈이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내가 나가 보겠소."


귀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야, 너 쟤들이 누구인 줄 알고? 또 몸부터 쓸래?"


"누이, 악귀들은 기세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저는 부적도 쓰고 기공술로 제압도 다 할 줄 아니 걱정 마십시오."


"아빠, 저희도 같이 나갈게요. 누구인지도 모르고 몇 인 지도 모르잖아요?"


'찌르르르르르.'


"뭔지는 몰라도 악한 자들임은 틀림없네요."


선준이 보따리에 든 일령의 울음에 이를 움켜쥐며 말했다.


'벌컥'


귀로가 다짜고짜 안방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다. 날은 점점 어두워져 점점 사방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누구냐! 숨어있지 말고 나와서.."


'휘이익- 휘리리리릭-'


어두컴컴한 마당 한가운데 서 있는 귀로 쪽으로 사방에서 까맣고 기다란 팔들이 쭉쭉 뻗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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