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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Mar 03. 2024

112화 적과의 동맹



‘콰아앙!’


‘우지끈-‘


산비초가 주먹으로 옥의 가장 구석에 있는 나무 기둥을 내리치자 기둥이 한방에 부서졌다.


“무슨 일이냐..?!”


아닌 밤중에 큰 소리를 들은 포졸 하나가 졸다가 깨서 정만과 산비초가 있는 옥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정만은 벽에 기대 잠들어있었고 산비초 역시 나무살 하나에 기대어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뭐야, 분명히 큰 소리가 났는데.. 잘못 들었나?’


포졸은 다시 자신이 서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모두가 잠든 시간이라 옥중은 고요했다.


“가자.”


정만은 산비초와 함께 부서진 나무 살 아래를 통해 옥을 빠져나왔다. 옥에는 총두 개의 입구가 있었고 입구마다 감시하는 포졸들이 있었는데 최근 개화 관련 난으로 인해 상당수가 궁으로 불려 가 인원이 적었다.


“산비초, 점심 전에 시장 입구에서 만나자. 난 이 사태에 대해 긴히 물어볼 사람이 있어.”


“그러자고.”


정만과 산비초는 그 길로 헤어졌다. 정만 역시 산비초에게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탈옥을 위해서는 산비초의 힘이 필요했고, 포졸을 능청스럽게 속이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명이 힘을 합쳐야 했다.


‘오려면 오겠지. 한번 도망가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도망자 신세를 면하지 못하니까.’


정만은 빠른 걸음으로 김대감의 집을 향했다.


‘일단 양근 군의 집으로 가자. 아 근데 이 씨.. 윤대감 어떡하지? 이대로 달아나면 그냥 찜찜한데. 윤대감이 박대감 몸에서 나오기라도 하면 날 찾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잖아.. 포도부장 무리에 정말 껴봐..? 영력자들도 많아 보이던데. 쟤네들은 그래도 날 안 죽이지 않을까..? 아니다, 내가 죽인 사람이 몇이냐.. 복수심에 그냥 날 죽이려나?’


산비초는 우선 뱃나루 쪽으로 갔다. 어차피 한양에 있는 집도 뱃나루에서 멀지 않았다.


“하아.. 나 참.”


산비초는 뱃나루까지 가서 한참을 고민하더니 결정을 내렸다.


‘에이 씨.. 일단 그렇게 하자.’


—————


“방금 호랑이들도 모두 다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날이 밝으면 호랑이들이 위험 해질 테니까요.”


“선준에게서는 아직 별다른 소식은 없네요. 곧 동이 틀 것 같은데..”


할멈과 정법은 물론 천검과 근중 일행들 역시 잠을 뒤척였다. 그러다 겨우 쪽잠에 들었나 싶었는데 날이 밝기도 전에 깼다.


“산비초고 뭐고 간에 원흉을 잡아야 해. 분명 박대감도 관련이 있어.”


“선준 일행이 뭔가 제대로 확인만 해준다면야 바로 전부 총 출동하면 되는데 말이야. 히히.”


정법이 고요한 적막을 깨고 시시덕거렸다.


“역시 너답다.”


“아유, 그렇죠, 누이. 우리끼리 심각해봐야 뭐 어째, 아무튼 윤대감인가 그놈만 잡으면 되는 거 아냐?”


할멈은 동이 터오는 하늘을 가만히 응시했다. 무당도 제 운명은 못 본다고 환갑이 넘어서 이런 위기가 닥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두려움이 컸지만 사실 묘한 긴장감과 흥분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아마도 윤대감이 내 생애 마지막 대축귀겠지. 오랜만이네, 이런 기분.’


—————


“정말 당신을 믿어도 되는 거요?”


선준이 길달에게 물었다.


“그럼요. 제가 왕도깨비님 앞에서 감히 거짓말을 할까요.”


계속해서 갈팡질팡하던 길달은 이제 노선을 정했다. 겸세까지 한양으로 왔다는 소리에 완전히 마음먹은 것이다.


“아침이면 여기로 더 많은 포졸들이 올 겁니다. 어제 아침에 당신들이 들이닥친 것 때문에 지금 골머리라 일이 틀어질까 봐 전전긍긍했거든요.”


“정말 윤대감이 박대감 안에 들어가 있단 말이죠..?”


“네.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악귀군요. 어찌 감히 사대부의 몸까지 들어가 세를 늘리려 하다니..”


은진은 놀라움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죠. 저런 악귀가 제 증조부 외할아버지라는 게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자, 그럼 이제 동료들을 부르세요. 그리고 반드시 사방에서 공격해야 합니다. 단, 우선은 겁주기 용이니 윤대감, 아니 박대감이 집을 떠나 산으로 도망갈 때까지는 적당히 치는 척만 해줘요.”


“네, 이해했습니다. 어차피 박대감 집 안팎으로는 무고한 사람들이 많을 테니 조심해야죠.”


“북악산자락으로 인도하겠습니다. 거기서 윤대감을 꺼내고 담판을 짓죠.”


“그럼 길달은 언제 저희 쪽으로 돌아서죠?”


“전, 박대감을 북악산으로 데려간 뒤 여러분이 모두 도착하면 그때 돌아설 겁니다. 그래야 윤대감도 충격이 크겠죠?”


“믿겠습니다..!”


“네. 그럼.”


선준은 길달이 사라지자 곧바로 은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진은 미리 준비해 준 축귀부를 하늘을 향해 날렸다.


—————


“헉헉, 김대감님.. 김대감님을 뵈러 왔소. 포도부장이 왔다고 전해주시오.”


정만은 우선 확인이 필요했다. 포도대장은 누군가의 사주를 받는 듯 딴사람 같았고 그 윗선에 더 큰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다.


정만이 대문 쪽의 별채에서 기다리는 동안 김대감이 밖으로 나왔다.


“자네가 아침부터 웬일인가?”


“김대감님, 초아침부터 송구하오나 급히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말해보거라.”


“요즘 나라 정세가 어지럽고 여러 가지 난과 사변들이 일었지 않습니까.”


“그렇지.”


“혹시.. 혹시나 해서 여쭙는 것입니다. 전 사익을 위해 일을 조작하거나 모략을 꾸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알겠다. 내 너는 결코 의심한 적 없으니 말해보거라.”


정만은 김대감님의 대답에 실마리가 있다고 느꼈다. 자신을 의심한 적이 없다면 다른 사람은 의심하고 있다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포도대장이.. 절 옥에 가두었습니다. 뚜렷한 사유는 말을 하지도 않고 말이죠.”


“그래? 그런데 어찌 나왔나. 다시 풀어준 건가?”


“아닙니다. 탈옥했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게 갇혀있다간 억울하게 뭔가 당할 것 같았습니다.”


“허허허. 자네도 필요할 땐 명령을 어기기도 하는구만.”


정만은 김대감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김대감의 표정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리고 단서를 하나 찾았습니다. 포도대장보다 높은 윗선에서 절 가두라고 명령한 것 같은데..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


김대감은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자네 전에 나를 미행한 적이 있었지.”


정만은 마른침을 삼켰다. 김대감은 분명 바른 어른이라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지만 그 역시 윗선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었다.


“소, 송구합니다. 그땐 상부에서..”


“아니, 자네를 탓하려는 게 아니야. 자네는 전국적으로 퍼져가는 아편의 근원지와 공급자를 찾는 중이지 않았나.”


“네.. 맞습니다.”


“그때 내 뒤를 밟으라고 한 자가 누구더냐.”


“그야.. 박대감..”


‘박대감..?!’


갑자기 정만의 머릿속에 어떤 깨우침이 번개처럼 스쳤다.


“박대감입니다..!”


그러자 김대감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자에게 찾아가 묻는 게 나보다 빠르지 않겠나?”


‘이런.. 완전히 속았어. 아니, 조종당한 기분이야. 역시, 김대감님은 뭔가 다 알고 계시는 걸까..?’


“네, 맞습니다. 그런데 김대감님, 혹시..”


“미안하네만, 난 아무것도 몰라. 박대감이 평소에 날 싫어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말일세.”


평생 옳은 말과 행동을 실천하며 아첨꾼과 간신배들의 이간질, 중상모략에도 끄떡없이 이 자리까지 오른 김대감이지만, 박대감의 배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까지 알 순 없었다.


“지금 아편 때문에 한양이, 아니, 조선 전체가 난리 났습니다. 최근에는 산비초라는 괴인이 한양에 아편을 확산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는데도 관아는 물론 조정에서도 일언반구조차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 포도대장은 절 옥에 가두었으니, 이젠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정세가 매우 어지러워. 이제 조선의 운명은 국왕에게 달려있지도 않아. 미안하네. 나도 모르겠어. 다만, 박대감도 요즘 예전의 박대감이 아니란 것만은 확실해.”


“네..?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다른 사람 같아. 아니, 어쩌면 다른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갔을지도 모르지.”


‘다른 사람이? 귀신에 씌었다는 말인가..?’


“조심하게. 조정과 관련된 일은 항상 끔찍한 결정도 서슴지 않고 이뤄지니.”


“네, 명심하겠습니다..!”


정만은 김대감에게 인사를 하고 곧장 밖으로 나왔다.


‘그래 천검, 근중.. 할멈 일행에게 다시 돌아가자. 우선, 시장에서 산비초를 만나야지. 녀석, 나오겠지?’


정만은 다시 산아랫길로 내려와 용상의 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전에 산비초와 만나기로 한 시장으로 급히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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