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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Aug 20. 2021

반려묘가 떠나고 내게 생긴 변화  

룽지가 떠났다

<나의 폭식증 이야기 : 실리지 않은 이야기 #1>

  


룽지가 나에게 왔다. 룽지는 먼지에 이어 내 둘째 고양이다. 먼지와 만난 지 한 살이 되던 무렵 집에 혼자 오래 있을 먼지에게 동생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 룽지를 들였다. 많은 고양이들 사이에서 유독 룽지가 눈에 띄었던 것은 유달리 작았던 체구 때문이었다.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게 룽지가 나에게 왔다.



우리 집에 왔을 때 룽지는 태어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아기였다. 그래서인지 수컷인 먼지의 젖꼭지를 찾아 빨 정도였다. 신기하게도 먼지는 그런 룽지를 그대로 받아줬다. 룽지는 ‘똥꼬발랄’하게 잘 컸다. 자기보다 훨씬 큰 먼지를 물며 장난도 치고 호기심이 많아 집 여기저기를 다 뒤지고 다니면서 한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하룻밤만에도 쑥쑥 자라 너무 빨리 어른 고양이가 되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셋이서 작은 싱글 침대에 누워 잘 때면 안도감이 들었다. 고양이는 참 따뜻했다. 그렇게 먼지와 룽지 그리고 나는 가족이 됐다.



룽지가 태어나서 8개월이 되었을 때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 수컷 고양이와 달리 암컷은 개복 수술을 해야 해서 걱정이 컸기에 집에서는 좀 멀지만 블로그에서 유명한 병원을 찾아갔다. 한 여름이었다. 더운 날씨에 이동장에서 헥헥 거리는 룽지가 조금 가여웠지만 그것 말고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성공적이었던 수술 결과와 달리 룽지는 수술 이후 사료를 먹지 않았다. 입원을 시키고 각종 검사를 했지만 의사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 수액을 맞고 강제로라도 사료를 먹여야 한다고만 했다. 룽지는 점점 야위어 갔다. 어느 순간부터 룽지는 거실 냉장고 위에서만 지냈다. 손을 조금이라도 댈라 치면 달아났다. 억지로 사료를 먹이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었다. 그때 나는 대학교. 4학년으로 졸업 작품을 만들어야 했고 동시에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다. 바쁜 와중에 룽지의 병세를 세심하게 돌 볼 겨를이 없었다.



기력이 옅어진 룽지를 외면한 채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룽지를 봤다. 더 이상 냉장고 위에는 올라가지 못한 채 책상 위에 누워있었다.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블로그를 뒤졌다. 룽지의 증상을 적으며 도움을 청했다. 인터넷에서 평이 좋은 동네 병원에 갔다. 룽지의 중성화 수술을 했던 병원과는 다른 곳이었다. 수의사는 룽지가 오랫동안 사료를 제대로 먹지 않아 간이 손상되었다고 했다. 그제야 룽지의 귀와 눈과 피부가 누레진 것을 깨달았다. 이미 간 손상이 진행되어 황달이 심각하게 와있는 상태였다. 돌아오는 길 룽지는 수액 링거를 꽂은 채였다. 나는 룽지의 이동장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엔 링거를 높이 들고 집으로 갔다. 다른 사람들의 눈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내 고양이가 죽어가고 있었다. 나 때문에.



그날 저녁 유명한 대학 병원 소속의 동물 병원에 진료 예약을 했다. 이틀 후로 잡았다. 왜냐하면 이틀 후엔 아르바이트비가 들어오기 때문에 룽지를 병원에 데리고 갈 수 있었다. 다시 블로그로 그 병원에서 진료한 사람들의 리뷰를 읽었다. 희망이 있었다. 이틀만, 이틀만 룽지가 버텨주기만을 바랐다. 룽지는 일분이 다르게 상태가 악화되었다. 계속해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블로그의 완쾌 리뷰에서 나는 애써 희망을 찾았다.



‘그래 룽지도 큰 병원에서 치료만 받으면 나을 수 있어’



진료 예약 시간은 아침 10시였다. 몇 시간 후면 룽지를 병원에 데려갈 수 있었다. 그날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룽지가 걱정되기도 했고 과제가 있기도 했다. 과제를 하면서도 지쳐 누워있는 룽지를 계속 지켜봤다. 이상했다. 얕지만 숨을 쉬고 있던 룽지의 동공이 이상했다. 빛에 따라 홍채의 크기가 달라지는 고양이의 습성 없이 동공 전체가 까맸다.



불길했다. 새벽 3시에 룽지를 안아 들고 다음날 예약해두었던 대학 병원으로 출발했다. 아프기 시작한 후 룽지는 토를 자주 했다. 택시 안에서 내 품에 안겨있던 룽지에게 또 토 기운이 찾아왔다. 몇 번 구역질을 하던 룽지가 크게 발작이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발작이 사그라진 거라고, 토 기운이 사라진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이미 그때 나는 알았다. 룽지가 죽었다는 것을.



병원에 도착해 룽지를 그대로 의사에게 넘겼다. 차마 얼굴을 보지 못했다. 담요에 감싸 컨버스 백에 넣어  안에 안고 갔던 채로 룽지를 의사의 품으로 넘겼다. 얼마  진료실에서 나온 의사가 내게 룽지가 지개 다리를 건넜음을 알렸다. 차갑게 식은 룽지를 안고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인터넷 검색을  룽지의 화장 예약을 했다. 그때까지 내게 4시간이 남아 있었다.



죽음이 뭔지 몰랐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죽음의 모습은 그저 공포뿐이었다. 그래서 죽은 룽지를 감싸 안은 담요를 열어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내 고양이의 얼굴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담요를 들추었다. 거기엔 평온한 얼굴의 룽지가 있었다. 아팠을 때보다도 오히려 편안해 보이는 내 고양이 룽지가 자는 것처럼 누워있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났다. 자격도 없는 눈물이 염치도 없이 밤새 내내 흘렀다.



동이 트고 예약했던 반려동물 화장터에서 픽업을 위해 우리 집까지 왔다. 룽지와의 이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예약을 조금 늦게 잡을 걸. 사후 경직이 시작된 룽지의 몸은 딱딱해져 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품에서 놓지 않고 계속 안고 있을 걸. 화장터에 도착해 절차를 준비했다. 작성해야 할 서류가 꽤 있었다. 계산서가 되어 돌아올 옵션 사항들을 전부 체크하고 곧 룽지를 보냈다. 뜨거운 불 속으로 들어가자 진짜 룽지가 이제 내 삶에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작은 항아리에 담긴 룽지를 품에 안고 집으로 왔다. 나는 속죄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자격 없이 애정을 얻고자 한 벌을 받기로 했고, 채 1년을 살지 못한 채 떠난 룽지를 대신해 살기로 했다.



룽지가 떠났다. 그러나 마냥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먼지가 있었다. 나는 강해져야 했다. 먼지와 나, 둘이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생활력을 길러야 했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먼지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했다.



내가 만든 이 편협한 낡은 질서 속에 갇혀 있을 수 없었다. 완벽주의 따위 배부른 소리였다. 완벽한 내가 되기보다는 온전한 내가 되어야 했다. 식욕 따위에 질 수 없었다. 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빌어먹게도 십 년 동안 내게 관성처럼 붙어있는 식욕을 한 순간에 떼내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타협했다. 폭식증을 인생의 동반자로 삼기로 했다. 폭식증 따위가 내 인생을 막아서지 못하게, 폭식증과 타협했다. 살기 위해서 폭식증을 거부하는 것보다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했다. 음식을 줄 테니까 내 정신을 갉아먹지 말라고. 내 먼지를 지킬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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