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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Nov 09. 2021

난 우울할 때 봉춤을 춰

폴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난 슬플 때 봉춤을 춰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언젠가 내가 봉춤을 추게 되리라 확신했다. <난 슬플 때 봉춤을 춰>는 곽민지 작가가 폴댄스를 시작하며 겪게 되는 생각과 몸의 변화에 대해 쓴 책이다.




내게 폴댄스란 힘 좋은 여자 아이돌들의 독특한 무대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거나 관찰 예능에서 특별한 취미로서의 도구 정도였다. 그 와중에 폴을 성큼성큼 올라갈 때 보이는 등 근육에 내 로망을 심어보기도 했다. ‘와 근력운동은 제대로 되겠네’ 그러나 저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봉춤은 내가 슬프거나 우울할 때 배워야 하는 것이 됐다.



딱히 성적인 느낌은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여기에도 통하는 건지 폴을 이용한 섹슈얼한 무언가는  경험에 누적되어 있지 않았다. 그보다는 피멍, 힘든 연습, 고난도 기술  내게 폴댄스는   스포츠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폴댄스와 폴스포츠  단어가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단다.



오늘 처음 폴에 매달렸다. 격할 거라 예상되는 어깻죽지와 팔뚝의 근육통을 감지하며 이 글을 쓰고 있는데 근육통으로 험난한 내일이 예상되지만 오랜만에 느껴지는 통증이 꽤 기분 좋다. 내 몸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감각이다.



폴댄스 스튜디오 예약은 지난주에 즉흥적으로 했다. 얼마간 답답하고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었는데 이번 건 가볍게 지나가는 우울감과는 강도와 심도가 달랐다. 마음 한켠에서 비상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몇 가지 방법 중 거의 대부분을 이미 써봤다. 가장 가벼운 단계의 방법으로는 재밌는 영화를 보거나 산책을 하고 다음 단계로는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떤다. 조금 무거운 스트레스는 여행을 가야 한다. 새로운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돌아오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돌덩이가 조약돌 정도가 된다. 마지막 스트레스의 끝판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스포츠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지난주 그 결단을 내렸다.



스포츠를 배운다는 것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스포츠는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기에 기술을 배우는 것에 대한 비용을 지불을 해야 한다. 돈이 든다는 의미다. 돈 쓰는 건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유희인만큼 수강료를 결제하는 순간 얻어지는 행복과 불안의 길티플레져가 생성된다. 그리고 스포츠의 대부분은 장비발이지 않나. 더 큰돈이 든다는 의미다. 거기에 쇼핑을 하는 재미는 덤.  



고된 훈련을 해야 하는 스포츠에 이 고통을 나눌 벗은 필수다. 스포츠를 배우면 같은 공감대를 가진 지인을 사귈 수 있다. 이 무리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떠한 것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모인 만큼 그 열정 외 다른 것이 관계에 파고들 틈이 없다. 예를 들어 스노보드를 탈 때 앞발의 각도만으로 3시간은 넘게 이야기가 가능한 관계가 바로 이 관계다. 이들을 묶어주는 것은 관계가 아닌 스포츠다. 고로 직장, 친구, 가족들과의 관계에 비해 인간관계로 인한 피로감이 현저히 적다. 거기에 마치 새 학기가 시작하는 설렘까지 느낄 수 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처음 폴 댄스를 배운 000이라고 합니다’



스포츠를 배우는 가장 큰 목적은 자기 효능감에 있다. ‘어떤 문제를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이나 기대감’ 혹은 ‘과제를 끝마치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 등으로 정의되는 자기 효능감은 성취감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감을 높여준다. 처음 스포츠를 배운다는 것은 당연히 못하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초반의 무수한 실패보다는 한 번의 성공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못 할 줄 알았던 내가 이걸 해내다니!’



중상급이 상급으로 가는 건 지난한 훈련을 거쳐야 하지만 다행히 초심자가 중급자가 되는 건 열정과 연습만으로도 가능하기에 새로운 스포츠를 처음 배우면서 얻게 되는 자기 효능감은 꽤 높다. 대단한 무언가를 성공해서 얻는 성취감이 아닌 작은 성공이 쌓여 만드는 성취감.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이 있지 않나. 성취감도 크기가 아닌 빈도다. 큰 성취감과 달리 작고 사소한 성취감은 여기저기 구멍 난 내면을 메워준다. 그래서 스포츠를 하며 얻게 된 자기 효능감은 일상 여기저기에서 얼굴을 드러낸다. 성적이 낮거나 업무성과가 낮아 좌절이 찾아올 때도 이 자기 효능감이 자신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꽉 잡아준다.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다시 하면 돼’



어리석게도 스포츠를 하기 전에는 좌절감과 우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미용 시술이나 성형을 선택했다. 외모가 달라지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게 되는 것은 길어지는 카드 할부와 ‘나는 외모가 조금 나아지는 걸로는 안 되는 사람인가 보다’ 싶은 더 큰 자신감 하락이었다. 다이어트를 통해 얻게 되는 몸 또한 그렇다. 그래서 아주 날씬하거나 아주 근육이 멋진 몸을 만드는 목적의 운동은 내게 별 의미가 없다. 꼭 기술을 배워야 하는 스포츠여야만 한다.

 


새로운 스포츠를 배운다는 것은 이런 다양한 의미로 다가온다. 새로운 스포츠는 새로운 세계다. 그 안에서 나는 걸음마부터 다시 배운다. 오늘은 폴을 잡는 법을 배웠다. 폴을 잡을 때는 절대 팔꿈치가 구부러지면 안 된다. 이 상태에서 양다리로 폴을 감싼 후 엉덩이 근육을 이용해 폴에 매달려야 한다. 처음에는 폴을 잡은 손조차 어색하기 그지없더니 10분 정도 폴과 씨름한 후 꽤 괜찮은 자세로 폴에 매달릴 수 있게 됐다. ‘내가 폴에 매달렸다고!’



1시간의 폴댄스 수업만으로 우울했던 기분은 사라졌다. 이를 일시적이 아닌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실력 향상이 필요하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안방 문에 연결해 놓고선 빨래건조대로 썼던 도어짐에 매달려 봤다. 세로 방향의 폴과는 다르지만 이것도 폴이라고 폴댄스하던 감각이 살아났다. 그렇게 한참을 매달려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이제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 폴댄스 수업에 갈 때는 항상 최상의 컨디션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잘 자고 잘 먹고 폴에 매달려 휙휙 몸을 비틀 수 있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 스트레칭과 근력운동도 해야 한다. 폴댄스를 해서 유연성과 근력이 높아질 거라 생각하겠지만 초보는 폴댄스를 하기 위해 유연성과 근력을 키워야 한다. 20대 때 키워놓은 근육으로 연명하고 있던 내게 다시 단단한 근육을 만들 이유가 생겼다.



내일은 폴에 매달려 한 손을 떼고 지탱해보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첫날에 폴에 그렇게 잘 매달렸으니 이 정도는 당연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근육통이 점점 심해지지만 뭐 이 정도야 폴에 매달리고자 하는 이 마음을 막을 수 없지. 오늘은 기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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