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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Aug 29. 2021

우리의 첫경험들

우리는 서로의 첫경험을 공유 중이다

<비혼주의 동거커플 동거집 ep.2>



20대 초반, 일 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연애만 두 번 정도 했던 내게 가또와의 연애는 누군가와 진지한 관계를 맺은 첫 번째 연애다. 가또 말에 의하면 가또도 그렇다.


우리는 둘이서 첫 경험들을 공유한다. 연인과의 첫 여행, 첫 1주년, 첫 커플링.



거창하지도 않고 대단하지 않은 많은 것들이 둘의 처음이라는 것만으로 의미 있어진다. 800일, 900일은 더 이상 축하해야 할 일로 여겨지지는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첫 경험을 공유하며 작은 축하를 한다.






우린 서로 만나기 전까지 연인이나 가족 없이 홀로 죽을 때까지 살게 되지 않을까 싶은 사람들이었다. 특별히 가족 구성원이 갖추어진 미래가 그려지지도 않았고, 가또는 요양 보험에 큰돈을 지불하고 있었다. (여전히 그렇다)



34살과 36살의 겨울, 우린 누군가는 혼기가 꽉 찼다고 말할만한 나이에 만났다. 혼자의 경험은 많았지만 둘이서의 경험이 부족했던 우리는 그때부터 둘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일들을 함께 해나갔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서로의 첫 경험을 공유하는 중이다.



내게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레저를 취미로 가졌던 겨울이었다. 그렇게 재밌는 건 살면서 처음일 정도로 그 겨울엔 스키장 생활에 푹 빠져 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또를 만났다.



우리는 같은 동호회 회원이었다. 강원도 지역의 스키장에는 매주 스키나 보드를 타러 오는 사람들이 하루 이틀 묵어갈 수 있도록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집을 셰어 하는 '시즌방'이라는 것이 있는데 나와 가또는 매주 같은 집에서 묵는 '입주자'들이었다.



젊은 남녀들이 많은 동호회 특성상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면 주목받게 마련이고 그 해의 뉴페이스는, 바로 나였다. 연애세포가 모두 사망해 성별을 막론하고 여자든 남자든 그저 사람으로 보였던 내게는 그런 의도치 않은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래도 초보자의 미덕은 언제 어디서든 친근한 태도와 겸손한 마음이기에 오는 부탁 막지 않고 불러주는 자리 마다하지 않았더니 시즌이 끝날 무렵에는 나름 동호회 내 '인싸'가 되어있었다.



'날 이렇게 대한 건 네가 처음이야!'류의 대사가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적당히 보드를 타고 거하게 뒤풀이를 하는 동호회 안에서 가또는 조금 특이한 존재였다. 한 시즌 내내 가또는 1. 보드를 타거나 2. 스마트폰(게임)을 했다. 특별히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수다를 떨지도 않았다.



'저 사람은 무슨 재미로 살까?' 이게 가또에 대해 그 당시 가졌던 마음이다.



시즌이 끝나기 한 달 전, 초봄의 햇볕에 눈도 다 녹아버릴 때쯤 나는 다니던 잡지사에서 퇴사했다. 일이 곧 나이고 성과가 나를 설명해주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월급이 오르기는커녕 정규직이 되는 것도 어려운 현실에 좌절할 때쯤 스키장에서 사람답게 사는 이들을 만나다 보니 나도 사람답게 살고 싶어졌다. 그렇게 조금은 대책 없이 퇴사를 하고 스키장으로 갔다. 한 달 내내 그렇게 스노보드만 탔다.



그때 가또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가또는 일주일은 출근을 하고 일주일은 퇴근을 하는 특수한 직업을 가졌는데 퇴근해 있는 일주일 동안은 스키장에 왔던 것이다. 매 끼 같이 밥을 먹고 저녁에는 술도 한 잔 하며 한 달을 보냈다. 가또는 잘 웃고, 목소리가 컸고 그리고 아이유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런 가또가 좋았다.



사실 가또를 좋아하던 내가 좋았던 것 일수도 있다. 10년이 넘도록 누군가에게 이런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내 안에서 그런 감정은 모두 없어져버린 줄 알았다. 그러나 가또를 통해 다시 설레이는 감정을 느끼게 됐고, 그런 내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싶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겨울 시즌이 끝나고 스키장도 하나씩 폐장을 할 때쯤 가또에게 '연애하자'라고 했고 가또는 '그러자'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의 연애가 시작됐다. 연애를 어떻게 하는지 모른 채 나이만 먹은 두 남녀가 서툴게 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우리는 수많은 첫경험들을 함께 했다.



함께 수제 맥주를 담그고, 바질을 심고 기분을 내고 싶을 때는 비싼 파인 다이닝에도 가보았다. 성공한 적도 있고, 그리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은 경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니 맥주 한 잔에 깔깔대며 이야기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다.



최근엔 뙤약볕을 뚫고 함께 남대문에 가 나는 꽃을, 가또는 위스키를 사 왔다. 모두 서로의 첫 도전이었다. 혼자라면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도전하지 못하고 있을 일들을 둘이 함께이기에 도전할 수 있다. 



서로 대화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말로 뱉게 되고 그러면서 생각에 힘이 생긴다. 둘이 함께라는 것은 생각을 행동으로 연결시켜주는 어떤 힘이 있다. 그렇게 우리는 앞으로도 많은 첫 경험들을 할 예정이다.


유튜브 <젤라가또> 채널에서 관련 영상도 시청 부탁드립니다 : ) 

https://youtu.be/HimPTKkDrV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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