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개인적이고 고통스러운 이야기
결혼은 왜 안 하느냐 물으면 안 되는 이유
동거 생활에 대한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있는 내게 비혼에 대한 이유를 묻는 질문은 매달 성실하게 오는 생리통과도 같다. 무조건 오고, 어쨌든 나는 그것을 견뎌야만 한다.
처음 이 질문을 받았을 땐 뿌연 안갯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표면에 보이는 안개에 속지 않고 더듬더듬 손을 뻗어 직접 만져보고 느껴보며 진짜 이유를 찾아야 했다. 언뜻 눈에 보이는 어린 시절 부모의 불화나 내 집 마련의 꿈처럼 구태의연한 이유를 걷어내고 그 아래 자리 잡은 진짜 이유를 찾아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결혼을 진짜 안 하는 이유가 뭐냐고?
빚이 있다. 학자금 대출 2천만 원. 지금에 와선 학비까지는 지원해 달라 부모님께 조금 더 부탁할 걸 그랬다는 생각마저 든다. 사실 졸업 후 취업만 되면 월급의 일부를 꾸준히 상환하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채무가 가벼워질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대출은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이었고 예상과는 다르게 취업 후 몇 년의 시간이 흘러도 월급에서 대출금은 상환되지 않았다. 정규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직종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몸 담고 싶었던 분야가 있었기에 어렵사리 대출까지 받아가며 마친 대학 과정이기 때문이다.
잡지 기자가 되고 싶었고, 꿈을 이뤘나 싶었다. 그러나 내 월급은 1년 동안 100만 원이었고, 6개월은 190만 원 그 후 얼마간은 140이었다. 경력이 쌓이는 것과 비례하게 월급이 높아지지 않는 기이한 분야였다. 그동안 내 월세는 꾸준히 50만 원이었다. 공과금과 교통비, 식대만으로 월급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에 더해 잡지가 다루는 세계는 옳든 그르든 겉모습까지 능력에 포함되는 분야였기에 있는 돈 없는 돈을 써가며 옷에 돈을 썼다. 없는 돈을 쓴 게 화근이었다. 생활비 명목으로 야금야금 쓴 마이너스 통장과 카드론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티끌 모아 태산이 되는 건 빚뿐이다. 제2금융권에서 1천만 원이 넘는 돈을 빌렸고 매달 나가는 상환금을 위해 안정적인 직장을 구해야 했다. 그렇게 꿈이었던 잡지 기자라는 타이틀을 내려놨다. 부서진 꿈의돈을 모으기는커녕 매달 월급의 절반에 가까운 돈을 빚을 갚는 데 썼다. 금리는 24%였다. 그렇다고 돈만이 내가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아니다.
내겐 20대 초반부터 앓고 있는 지병이 있다. 바로 섭식장애다. 섭식장애는 완치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잘 낫지 않는 병이다. 몇 년간 ‘완치가 된 듯’ 한 상태가 유지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섭식장애는 지뢰처럼 내면에 박혀 누가 밟아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섭식장애가 발병한 후로는 이를 체화해 일상생활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폭토 루틴까지 만들어 꾸역꾸역 살아내는 내게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은 집에 있을 때도 병을 숨기고 음식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연기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동거가 동반되는 결혼은 자연스레 인생에서 소거됐다. 그렇다고 돈과 섭식장애만이 내가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아니다.
20대 초반 갔던 호주 유학에서 동갑의 남자아이와 사귀었다. 185cm인 큰 키가 좋았다. 집안의 막내라는 그 아이는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랐고 유복한 만큼 본능에 충실했고 감정 표현에 적극적이었다. 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폭력이 됐다. 나는 가족도 없고 갈 곳도 없는 외국에서 185cm의 거구에게 목이 졸렸다. 태어나 처음으로 권력관계가 아닌, 그러니까 부모와 선생님이 아닌 이에게 당한 폭력이었고 새삼 내가 가진 물리적 힘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깨달았다. 누군가 나를 힘으로 제압한다면 나는 당할 수밖에 없구나. 폭력은 같은 상황에서 어김없이 반복됐다. 나는 부서진 프린터를 보며 다음이 내가 아니길 기도했다. 그렇게 나는 남자가 무서워졌다. 공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혐오가 됐다. 나는 남자를 혐오하게 됐다.
누군가 내가 ‘그런데 왜 결혼은 안 해?’라고 묻는다면 답변은 위와 같은 개인적인 이유일 확률이 매우 높다. 굳이 이를 드러내기보다는 ‘나는 비혼주의야. 굳이 결혼을 하는 인생만이 정답은 아닌 것 같더라고’라는 뉘앙스로 대화를 넘기는 것은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젠 결혼하지 않은 이유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을 것이다. 결혼 제도의 문제나 남녀 성역할의 불균형 등이 답변으로 나올 거라 예측했을 수도 있다. 이를 반박하기 위해 나름의 논리를 준비하고 물어본 질문일 테니. 하지만 내게서 나오는 답변은 그보다는 조금 더 개인적이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다. 타인의 고통을 알게 되는 건 짐을 나눠갖는 것뿐이다.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가볍지도 않고 즐거운 이야기도 아니다. 김영하 작가가 <알쓸인잡>에서 말하듯 '결혼은 중산층 이상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고 어떤 계층에게는 누리지 못해 슬픈 이야기도 하다. 뭐 결혼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다 해도 안 하는 것을 선택할 거지만 말이다.
위에 열거한 이유들로 인해 결혼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안 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저 운 나쁜 인생을 산 '네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2022년 6월 기준 ‘취업 후 상환 학자금대출’을 갚지 못한 채무자는 101만 6613명이며 대출 잔액 합계는 6조 4933억 원이다. 또한 지난 5월 8일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20대의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 잔액은 95조 665억 원이라고 한다. 2금융권 대출과 다중채무자가 늘고 있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보인다. 빚뿐일까?
아직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되지 않고 있으나 2020년 우울증, 불면증, 섭식장애로 진료받은 환자는 150만 4,181명으로 팬데믹 이후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더 이상 이를 개인 문제로 방치할 수 없다고 진단한다. 데이트 폭력의 경우 한국일보의 기사에 명시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데이트 폭력 범죄 신고만 5만 7,297건에 따르며 2021년에 비해 3배 급증했다.
통계가 말해주고 있음에도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결혼을 왜 하지 않느냐고 묻고 혼인을 강요하고 있다. 정작 결혼은 왜 안 해?라는 질문을 할 대상은 한 개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개인의 삶이 붕괴되고 짓이겨진 이야기를 들을 각오는 해야 할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궁금했던 것
https://www.youtube.com/watch?v=I10dhfclVeY
참고자료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69604
한겨레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2936.html
메디컬월드뉴스 http://medicalworldnews.co.kr/m/view.php?idx=1510943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