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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Mar 01. 2023

36번째 프러포즈를 했고 또 까였다

미혼과 비혼의 만남


<비혼주의 동거커플, 동거집>


4년째 동거 중인 우리는 내가 34살이고 반려인이 36살인 겨울에 만났다. 한두 달의 썸을 탔던 우리는 이듬해 3월부터 연애를 시작했다. 그렇게 35살이 되고 37살이 됐을 때 나는 여지없이 우리가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다.


서로 사랑하며 사회적으로 결혼하기에 딱 좋은 나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롱디 커플이었다. 반려인(가또)은 청주에서 소백산으로 출퇴근을 했고 나는 서울에 살며 서울 소재의 회사에 다녔다. 천문관측을 하는 가또는 산속의 천문대에서 숙식을 하며 일주일 동안 일을 하고 다음 일주일 동안은 쉬는 루틴을 반복했다. 퇴근한 일주일 동안은 자연스럽게 서울의 내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되며 청주의 자취방은 잠깐씩 짐을 찾으러 가는 공간이 되었다.


우리가 사귀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가또는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청주의 자취방이 당시 다음 달인 5월이면 계약 만료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프러포즈라도 받은 것 마냥 기뻤다.


우리가 사귀는 동안 어차피 서울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아질 테니 청주의 자취방은 무용했다. 그 월세로 할 수 있는 많은 일이 있었다. 꽤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결혼의 수순을 밟게 될 거라는 내 착각도 시작됐다.


그렇게 시작된 동거 생활은 참으로 달콤했다. 일주일 동안 집에만 있는 가또는 내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저녁밥을 준비해 두었고 주말이면 찜해두었던 맛집을 다니며 서로의 세계를 확장시켰다. 동거를 하면서 깨진 환상 따윈 없었다. 우리는 가사 노동을 도와가며 했고 큰 것을 바라지 않았으며 작은 것에 늘 고마워했다. 거기다 일주일 동안 출근해 있는 가또의 직업 덕에 나는 혼자만의 시간도 충분히 가졌다. 이런 완벽한 우리에게 단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이 남편감으로 딱일 것 같은 사람이 나와 절대 결혼만은 하지 않겠다는 거였다.


가또와 만나기 전 나는 비혼주의자였다. 어릴 때부터 TV드라마를 볼 때면 왕자님과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 신데렐라보다는 그 옆에서 독신주의를 외치는 주인공 친구에게 더 매력을 느꼈다. 무슨 일을 하든 커리어우먼이 꿈이었고 내 인생을 책임지는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랬던 것이 스무 살에 서울로 상경해 십여 년을 홀로 살며 불안정한 미래와 고독사의 두려움에 떨다 보니 어느새 ‘결혼도 괜찮을 것 같은데?’로 변해있었다.


전제는 좋은 사람이었다. 일찍이 20대 초반에 데이트 폭력을 당한 후 남자에 대한 오만정은 떨어져 있었고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을 꿈꿀 정도로 순진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혼자 사는 인생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게 되면 좋은 거고 안되면 혼자 사는 거고. 다만 상상만 해오던 그 과정에서 선택의 주체자는 항상 나였지 상대가 아니었다.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우리가 함께 산지 6개월 정도가 지났을까? 그날도 평소와 같이 평화롭고 고요하게 반주를 즐기는 밤이었다. 이 정도 함께 살았으면 이제 슬슬 이야기를 꺼낼 때가 됐다고 생각한 나는 가또에게 결혼에 대해 물었다. 가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결혼 극혐이야’


평화와 고요는 깨졌다.


왜? 대체 왜? 동거는 하지만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가? 그럼 대체 왜 동거하자고 한 거야? 잠깐, 나는 결혼이 하고 싶었던 건가?


 당혹감에 휩싸였지만 단호한 가또를 더 이상 물고 넘어질 수는 없었다. 그날 밤 눈앞에 있는 술을 모두 마시고 정신이 혼미해진 채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숙취로 깨질듯한 머리를 쥐어 싸매며 아침나절을 보내고 있으려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근데 왜 나랑 결혼은 하기 싫어?’


숙취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가또에게 물었다.


‘싫어..’라고 밖에 말하지 못하는 가또를 보며 답답했다.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혼이 하고 싶은가?’라고 묻는다면 내 답변 역시 ‘싫다’였다. ‘가또와 결혼하고 싶은가?’라고 묻는다면 ‘예스’. 이유는 이 사람과 함께 평생을 살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니까. 그렇다면 역시 가또는 결혼할 정도로 날 사랑하지는 않는 것인가?


이 문제를 불화로 만들기에 우리는 아직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았고, 결혼하지 않은 이 상태도 만족스러웠기에 찝찝한 마음은 뒤로 하고 가또에게 슬쩍 제안했다.


‘우리 결혼해’

‘싫어’

‘쳇, 앞으로 나는 딱 100번만 오빠한테 결혼하자고 말할 거야. 그 뒤에는 나한테 결혼하자고 애걸복걸해도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야. 101번째는 없어.’


그날 나는 가또에게 3번 정도 더 결혼하자고 했고 다 까였다. 다음 날엔 2번 그리고 그다음 날엔 1번이 됐다. 그 뒤로도 가끔 생각날 때마다 가또에게 결혼하자고 했고 그때마다 나는 까였다. 그렇게 6개월 정도가 지났고, 프러포즈는 아마 36번 정도 했을 때일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이 반주를 즐기는 저녁, 여느 때와 조금 다르게 나는 가또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결혼이 싫어? 결혼할 정도로는 나를 사랑 안 해?’ 질문이 달라서였을까? 가또의 반응도 달랐다.


가또는 ‘나는 결혼이 정말 싫어’라고 말하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가또에게 첫 프러포즈를 까였을 때보다 더 당혹스러웠다. 이렇게 펑펑 우는 성인 남자는 어떻게 달래줘야 하지? 일천한 지식을 더듬거리다 그저 아이 달래듯 가또를 달랬다. 한참을 아이처럼 운 가또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가또와 지내면 지낼수록 내가 그에게 주는 마음만큼 그도 나에게 주고 있다는 걸 알기에 결혼에 대한 그의 강박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직감적으로 건드리지 말아야 할 개인적인 영역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뒤로 더 이상 가또에게 프러포즈를 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결혼이 진짜 하고 싶어?’


얼마간은 여전히 ‘예스’였다. ‘결혼식’이나 ‘신혼집’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게 아니다. 가또와 함께 하는 삶 자체가 좋았다. 그 삶을 묶어주는 어떠한 테두리가 있었으면 했다. 결혼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나는 대체 뭘 원하는 걸까?


나는 삶을 함께 할 동반자를 원했다.


우리 집은 바닷 사람들 특유의 강성한 성격 탓인지 화목하긴 하나 애틋함은 없는 분위기였고 나는 그런 집안의 3녀 1남 중 차녀였다. 차녀가 가진 억울하지만 꼿꼿한 결기로 세상을 살아왔건만 가또를 만난 후 내 안에 결핍된 부분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사랑받고 있다는 마음의 풍요로움과 애정 관계가 주는 안정감. 그리고 그건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이미 가또가 채워주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결혼은 이 관계를 유지시켜 주는 담보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결혼은 상태일 뿐 관계를 유지시켜 주는 장치가 아니다.


나는 가또와 결혼하지 않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가또와의 관계에서 결혼이 필요 없어졌다. 굳이 테두리를 만들지 않아도 우리의 관계는 더할 나위 없었다. 함께하는 나날들이 행복했고 부족함 없었다. 이 관계에 익숙해지니 내가 비혼을 원했던 이유들이 다시금 상기됐다. 의지하지 않는 삶, 혼자로 완전한 삶, 자신의 삶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삶.


나와 가또의 관계를 좀 더 혼인과 비교하여 이야기하자면 이거다. 상대방이 바람을 피우면 천하의 죽일 것이라고 욕은 할 수 있지만 소송을 걸 수는 없는 관계. 계약 관계가 아닌 신뢰 관계인 거다. 언젠가 애정이 식으면 헤어질 것이냐 물을 수도 있다. 지금 섣불리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오래된 부부가 애정으로만 살지 않듯 동거 커플도 사랑이 아닌 애정과 우정으로 결속될 수 있다.  


나는 가또와 함께 살며 스스로의 인생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삶을 산다. 우리는 가족인 동시에 혼자다.


프러포즈가 까인 덕에 생애 처음으로 결혼관이 생겼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혼관, 비혼주의 말이다. 이렇게 우리의 본격적인 비혼주의 동거가 시작됐다. 101번째 프러포즈는 앞으로도 없다.



>더 궁금한 우리의 결혼관은 유튜브 젤라가또 채널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10dhfclVeY&t=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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