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기다렸지만, 기다리지 않았다.
10대의 나는 학교를 대표하는 문학소녀였다.
교내의 어떤 선생님도 내가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될 거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방송작가를 꿈꿨고, 그래서 선택한 나의 전공은 신문방송학과 문예창작 복수 전공이었다.
그러나 20대의 나는 뒤늦게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았다.
내가 써오던 글들이 세상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을지,
창작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를 계속 번민했다.
결국 나는 펜을 내려놓고, 금융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고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선택하며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내 인생 전반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조직이라는 틀 안에서 점점 나는 빛을 잃어갔고,
그저 작아지고 무뎌지기만 했다. 그 안정감 있지만 나를 속박하는 울타리 밖으로 뛰어나와서 선택한 길은 논술강사였고 그 일을 하는 동안만큼은 잠시나마 내가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숨 쉴 수 있었다.
그리고 20대의 끝자락, 이 시대를 살아내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렇듯이, 나는 결혼이라는 삶의 교차로에 섰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과 이제 막 자리 잡은 내 커리어를 더 단단히 다지고 싶은 마음이 격렬히 충돌했다.
결국 나는 결혼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내 일과 삶을 함께 이끌어줄 것이라는 기대는 금세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기다렸지만 기다리지 않았다.>
나의 아이를 만나는 시간을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간절히 기다렸지만, 그 시점의 나는 그 시기를 살짝 늦추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빠르게 나의 첫 아이가 찾아왔고
곧이어 생전 처음 겪어 본 입덧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 몸과 영혼이 한없이 침잠해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찾은 내 자리를 조용히 내려놓아야 했다.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 이 소용돌이가 걷히고
예쁜 아이를 만나는 날을 기다리는 예비 엄마가 되었다.
임신 8주 차.
작고 투명한 젤리곰 같던 생명체는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엄마, 나 여기 있어요.”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변기를 부여잡으며 구토를 쏟아내면서도 그 심장 소리가 너무 반가워 설렐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이제 나는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어느덧 10주 차 정기검진.
나는 초음파 화면을 바라보며 쿵쾅이는 소리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시간을 좀 드릴 테니… 생각해 보세요.”
내가 듣고 싶었던 건,
“엄마, 나 여전히 여기 있어요. 조금만 더 힘 내주세요.”
그 말 한마디였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고,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진료실 바닥으로 조용히 흩어지는 나의 한숨을 보았을 뿐이다.
한 사람의 엄마가 되기도 전에, 한 세계의 끝을 맞이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결심했다. 이 고통을 끝내기로.
“수술할게요. 여기까지만 아플래요.”
그날은 2014년 6월 25일이었다. 잊을 수도 없게 그렇게 철저히 나만의 6.25가 되어서 소리 없는 전쟁을 내 안에서 이어가게 만들었다.
회복실에서 맞던 링거도 중간에 뽑아버렸다.
남편과 함께 어둠이 가득한 내 집으로 돌아와 며칠을 울었다.
“그러게… 조금만 더 늦게 오지.”
원망도 해보고,
“다음엔 내 아이가 와도 떠나지 않게, 건강한 몸을 만들자.”
다짐도 해봤다. 나는 살기 위해 내 안에 가득한 어둠에 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렇게 나는 내 안에 자꾸만 드리워지는 어둠과 매일 씨름하며 내가 살아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었다.
다음에 찾아 올 아이에게도, 내 미래에게도 나는 더 이상 무너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건 어쩌면 내가 처음으로 나를 지키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비로소 온전히 기다리게 되었다.
엄마로서의 시작을. 그 시작의 첫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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