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정의 시작

<2화>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는 시간

by roonia

"아무도 나한테 전화하지 말라고 해. 제발."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남편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나에게는 무려 5인의 손위 시누이와 홀 시어머니가 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쉽게 짐작하리라 생각한다.


새롭게 가족이 된 나는 그들에게 언제나 관심과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나는 그 관심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만약 나에게 초능력이 주어진다면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싶었고,

그들의 기억 속에서 나라는 사람을 지워내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친정에서는 첫째 딸, 시댁에서는 하나뿐인 막내아들의 며느리라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하여 나를 둘러싼 가족들 모두에게 '처음'이 되는 존재였다. 그래서 모두가 서툴렀고,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그런 관계 말이다.


나의 아이는 이제 모두의 기다림이 되어버렸다.


나는 내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도 전에 가족들의 시선이 온통 나에게로 향하는 압박감 속에서 매달 배란테스트기로 배란을 확인하고, 임신테스트기로 임신을 확인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시험에 매번 낙방하는 고시생처럼 너무 서글펐다.


그때 처음, 결혼한 것을 후회했다.


나에게 오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며 제일 슬픈 사람은 나인데, 타인이 내 감정까지 간섭하려 드는 그 고통의 깊이는 느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고달픈 기다림이 계속되던 어느 날, 드디어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보였다. 다시 해봐도 두 줄이었고, 나는 그 길로 병원에 달려가 피검사까지 마치고 임신임을 확인받았다.


나는 너무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이제 행복해질 시간이야.'

가슴이 오랜만에 콩콩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얼굴에서 미소가 걷히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다음 진료일이 오기도 전에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수정은 되어서 임신호르몬이 유발되지만 착상은 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 그게 바로 화학적 유산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임스트기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갈 그런 흔한 유산의 유형이다.


나는 더 이상 이런 생활을 반복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찾아 들어간 직장에서 연수를 받으며 동료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 동안 조금 괜찮았다. 나는 아이에 대한 집착과, 상실의 아픔을 지나가는 시간의 뒷주머니에 조금씩 덜어내며 살아갔다.


나의 기다림도 그 누군가의 기다림도 약간은 흐려졌을 무렵, 몇 번의 계절이 지났을까.


드디어 나에게 생명이 다시 문을 두드렸다.


첫 번째 유산 후 1년 5개월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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