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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샘 Mar 13. 2024

무엇이 금손을 만드는가

 어젯밤,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내용물은 며칠 전 주문했던 메이크업 용 브러쉬세트와 색조화장품. 평소 화장을 하지 않는 나지만 얼마 전 있었던 일이 계기가 되었다. 반 아이들과 처음으로 만나는 입학식에서는 렌즈를 끼고 옅은 화장을 했었는데 다음 날 맨 얼굴로 갔더니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우리 반 선생님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어.”

게다가 자꾸 학부모들과 마주치게 되며 이제는 화장을 해야 될 때라는 걸 실감했다. 사실 맨 얼굴이 비매너가 되는 나이가 된 건 이미 오래전이었다.

 

몇  년간 화장의 ‘화’도 하지 않은 나와 대조적으로 늘상 메이크업을 즐기는 이가 우리 집에 있다. 시크* 쥬쥬 메이크업 세트, 티니* 메이크업 박스 등 온갖 완구류의 메이크업 장난감을 섭렵한 여섯 살 막내딸이다. 어려서부터 할머니 집에 갈 때마다 화장품을 갖고 노느라 망가뜨린 립스틱만 해도 서너 개 였던 아이는 어디서 들었는지 아이쉐도우, 치크 등의 전문적인 용어까지 들먹이며 가족들을 붙잡아 화장을 해주었다. 만화 <달려라 하니> 속 홍두깨 부인처럼 두툼해 진 입술과 하늘색 눈썹 등 우스꽝스러웠던 결과물은 수많은 연습 끝에 달라졌다. 딸 아이는 나보다 입술 라인을 잘 땄고 아이쉐도우도 눈두덩이 위에 고루 펴 발랐으며 볼 터치까지 했다. 확실히 여섯 살 치곤 누가 봐도 손끝이 야무졌다. 


 문득 의문하나가 들었다. 무엇이 ‘똥손’엄마 밑에서 ‘금손’딸이 나오도록 한 것일까? 나보다 현저히 미적감각이 떨어지는 남편을 생각할 때 유전적인 요인 분명 아닐 것이었다. 그렇다면 단순히 부단한 연습과 노력 덕이라고 여기기엔 억울한 측면이 있다. 나 또한 이십대 땐 열심히 화장을 했다. 하지만 실력은 크게 늘지 않아서 그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똥손이다. 그 때, 나에게 화장을 해주는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입술을 바라보는 반짝반짝한 눈과 바싹 집중해서 오므라든 입매, 살짝 긴장한 손길까지. 그건 애정이었다. 화장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애정. 딸의 화장에는 ‘화장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반면에 나의 화장은 어땠나. 애정 대신 의무가 있었다. 화장을 ‘잘’ 해야 한다는 의무감. 결국 ‘똥손’과 ‘금손’ 사이엔 애정과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잘 하고 싶지만 잘 되지 않아 힘든 것들을 떠올리자 내 뜻대로 따라와 주지 않는 우리 집 아이들과 우리 반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을 안아주던 나의 손은 무엇이었을까? 애정 가득한 금손이었나 혹은 잘 가르쳐야 한다는 의무감 가득한 똥손이었나? 기껏해야 몇 시간 유지되는 화장마저 애정인지 의무인지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육아와 교육에서 나는 진심어린 애정을 듬뿍 담았었는지 자문했다. 분명히 처음엔 애정이었던 것이 어느 순간 의무감으로 변해 버린 건 아니었을까. 

 

 ‘사랑은 지구를 구한다’라는 어느 책의 제목을 좋아한다. 앞으로 나는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손에 따스한 애정과 사랑을 가득 담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이 지구뿐만 아니라 어느 엄마도, 선생님도 구해 주기를, 아이를 키우는 ‘똥손’에서 ‘금손’으로, 아니 하다못해 ‘동손’으로라도 변모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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