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내 주위 선생님들 중에는 나이가 많건 적건 대부분 배움에 열성적인 분들이 많다. 나 또한 지금껏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연수를 듣고 가끔은 교과연구회 활동에도 참여해왔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렇게 배웠던 것들 중 많은 것들이 휘발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마 누군가 정의한 대로 '배워서 남 주는 사람'인 교사답게 교실에서 적용을 해야하는 데 그러지 못하고 내 머리 속에서만 맴돌았던 까닭에서 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연수에서 배운 것 중 딱 하나, '체온인사'만큼은 내가 여전히 잘 기억하고 있으며 우리 반에서 항상 하는 활동 중 하나이다.
'체온인사'는 별 게 아니다. 아이들과 교사가 말로 주고 받는 아침 인사 대신 안아준다. 그리고 "안녕"이라는 말보다 좀 더 친밀한 대화를 한다. "밥은 먹고 왔니?", "오늘 아침 기분은 어떠니?" 혹은 늦은 학생에게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라 말해준다. 그러면 인사만으론 알 수 없던 아이의 마음이 보여 자연스레 그 마음을 어루만지게 된다. 아침부터 엄마에게 혼나서 속상한 아이, 숙제를 못해 학교 오기 싫었던 아이에게는 다독거리고 격려하는 말을 해준다. 내심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던 아이 말에는 최대한 귀기울여 들어주고, 그저 선생님이 안아주는 게 좋은 아이는 한 번 더 꼭 안아준다. 그래서 체온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이들은 어느새 마음도, 얼굴도 풀어져 있다.
물론 아침시간을 빌어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있노라면 모든 아이들과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체온인사가 번거롭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 하지만 일하느라 바쁜 내 옆에 가만히 서서 선생님이 안아주길 기다리는 아이들의 올망졸망한 눈동자와 마주치면 퍼득 교사에게 제일 중요한 게 뭘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하던 걸 절로 멈추게 된다. 그리곤 자연스레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체온, 그리고 마음을 나누는 인사를 하게 된다. 그러고나면 업무를 미처 다 끝내지 못했음에도 '선생님'이라는 본업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얼마 전, 김소영 작가가 쓴 <일상의 낱말들>을 읽다 홀로 마음 한 구석이 찔렸다. 어린이 독서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그녀는 아이의 개인공간을 침범하지 않고 존중해 주기 위한 노력한다고 하였다. 그러기 위해 아이가 커다란 비눗방울 안에 있다고 여긴다고 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비눗방울 안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라니, 상상만으로도 귀여웠다. 그런데 나는 그 비눗방울들을 매번 펑펑 터뜨리는 것과 마찬가지아닌가. 그 비눗방울을 지켜줘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그것보다 아이의 마음을 1도라도 뎁혀주는 것이 내 할 일이라 결론내렸다. 사실, 내 허리춤에 매달리는 1학년 아이들이 이빨 빠진 채로 짓는 커다란 웃음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다. 어쩌면 교사는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가르치기전에 아이들의 마음을 안아주어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학교에 간다. 아이들을 안아주러. 아니, 나에게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주는 아이들 앞에 서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