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가 난독증이라고요?

by 뿌리샘 김여정

어린 시절의 나는 겁이 많았다. 조용한 밤에 들리는 으스스한 소리, 어두운 골목길에 비친 이상한 그림자도 모두 나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 뒤로 몇 살이나 더 나이를 먹고 나서야 그 정체가 헐거워진 현관문이 바람에 흔들리며 나던 소리와 삐죽 튀어나온 2층집 처마 그림자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은 모르는 대상을 마주하게 되면 그게 무엇이든 겁부터 먹고 본다는 걸 그 때 배웠다.


몇 년 전, 처음으로 난독증 학생을 맡았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난독증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상태로 만난 학생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 몰라 1년 내내 당황스럽고 막막해 했다. 결국 의미있는 발전이나 변화없이 아이를 다음 학년으로 올려 보내고 나서야 난독증 연수를 듣게 될 기회를 얻었다.

마침 '읽기 자신감'으로 유명한 정재석 교수님의 강의였는데, 국내 난독증 분야의 권위자인 교수님의 연수를 들으며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난독증에 대해 비로소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난독증은 골든타임인 만 6,7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조기 진단과 개입이 중요함을 절실히 배웠다.


그 뒤로 1학년 담임을 맡으며 아이들을 철저히 관찰하기 위해 노력했다. 난독증의 징후가 보이는 아이가 있으면 조기 진단과 개입이 이루어지도록 부모님을 설득하고 교육청에 도움을 요청했다. 한글을 해득하지 못하는 아이 모두가 난독증은 아니겠지만 혹시 그 중에 있을지도 모르므로 늘 안테나를 켜 두었다.


엄밀히 말하면 미소(가명)는 이 안테나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있던 아이였다. '한글을 가르치려 했지만 아이가 거부했다'는 아이 엄마의 이야기가 무색할 정도로 내 수업 시간엔 누구보다 집중하며 열심히 참여했기 때문이다. 자음, 모음과 같은 한글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익히며 글자, 단어, 문장 순으로 구성된 1학년 1학기 교육과정을 아무 문제 없이 잘 따라온 아이 중 하나였다. 단지 ㅅ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게 신경쓰여 혹시 치료가 필요한 건 아닌지가 미소에 대한 나의 유일한 걱정이었다. 학교를 방문한 언어치료사 선생님께 미소를 한 번 진단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된 건 그런 까닭에서 였다.

"아무래도 난독증같네요. 전문적인 검사를 해 봐야겠어요."

선생님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 말에 나보다 더 충격을 받은 이가 있었다.


"우리 아이가 난독증이라고요? 누가 그래요?"

예상은 했지만 핸드폰 너머 미소 엄마의 날 선 답이 돌아왔다. 교육청 소속 언어치료 전문가 선생님이 검사를 권유했다는 말에도 엄마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겨우 동의를 받아 검사를 하고 난 후, 컨설팅 날짜를 잡기 위해 다시 연락했을 때도 반응은 비슷했다.

"제가 집에서 직접 가르칠거니까 바우처는 필요없구요, 검사하라고 한 선생님 얼굴이 궁금해서 컨설팅에는 갈게요."


마침내 컨설팅 당일, 그 간의 신경질적인 목소리만큼이나 날카로운 구두소리와 함께 미소 엄마가 등장했다. 안녕하냐는 인사조차 붙이기 힘들 정도로 불편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숨소리조차 함부로 내기 어려운 그 상황이었지만, 노련한 언어치료사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꺼냈다. 지금부터 컨설팅을 시작하겠습니다, 하고. 그리고 검사에 대한 설명과 분석을 마무리 할 때 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보았을 때 미소의 비언어지능 지수는 상위 1퍼센트, 135 정도로 추정됩니다. 그러므로 미소는 완벽한 난독증입니다."


읽기는 인간의 본능이 아니다. 문자는 인류의 발명품이며 읽기 또한 사람이 노력해야 갖게 되는 능력이다. 그러다보니 선천적으로 읽기에 불리한 뇌도 있을 수 밖에 없다. 그게 바로 난독증이다. 뇌의 신경증적인 요인으로 인해 지능은 정상적인데 반해 읽기만 어려워 하는 것이다.

미소가 '완벽한 난독증'이라 진단받은 것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였다. 언어가 아닌 나머지 지능검사에서는 상위 1퍼센트에 들지만 언어 검사에서는 하위 1퍼센트가 나왔다. 그동안 왜 아이의 엄마도, 교사인 나조차 아이를 난독증이라 의심할 수 없었는지를 설명해 주는 근거이기도 했다.


아이는 높은 지능지수 덕에 수업에 집중도 잘했고 수행력도 좋았다. 만약 이번 검사가 아니었다면 아마 미소는 아무 문제 없이 다음 학년으로 진급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지능으로 모면할 수는 없다. 본격적으로 읽기를 통해 학습하게 되는 3학년부터 난독증은 더이상 숨길 수 없을테고, 국어로 시작된 부진은 곧 사회, 과학 등 다른 과목으로 이어질 것이 뻔했다.

그러니 이번 기회를 통해 놓치지 않고 골든타임에 개입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천운이자 천만다행이었다. 코끼리 뒷걸음질에 쥐 잡는 식이긴 했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어머니, 검사 결과를 듣고 나니까 어떠세요?"

드디어 말을 끝낸 선생님이 아이의 엄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는.."

한 마디 내뱉은 그녀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가득 했다.

"아이에게 미안해서.."

미처 말을 끝내지 못하고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교사가 우리 아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은 '불안함', 잘 모르는 난독증에 대한 '공포'와 '당황'같은 감정들의 제일 아래 깔려있던, 아이의 모든 문제가 마치 자신 때문인 것만 같은 '죄책감'이 비로소 밖으로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소는 언어치료사 선생님께 난독증 치료 수업을 받기로 하였다. 아마 1년 정도 수업을 받고 나면 아이는 또래 학생들을 따라 잡을 정도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나와 언어치료사 선생님께 연신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고 나서 교실을 떠나는 미소 엄마의 구두소리는 더이상 날카롭지 않았다. 그녀도 이제는 난독증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더이상 겁내고 피하려 하기 보단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든든하게 함께 있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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