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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욱 Mar 30. 2023

안녕, 김진영

영원한 멜랑콜리의 당신에게 

  김진영 선생님, 안녕하신지요.

 

  아직도 선생님의 강의를 ‘처음’ 보았을 때가 떠오릅니다.

  처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이해할 수 없음에 무작정 관련 강의를 찾았던 때입니다. 

영상 속의 선생님은 조금은 노곤한 표정으로 느릿느릿 설명을 이어 가셨죠.

  도대체 저 책을 얼마나 읽었으면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책은 선생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길래 다양한 변주까지 생각하며 책을 읽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실 때 하는 가벼운 이야기에서도 ‘도대체 저 선생님은 생각하지 않는 시간이 존재하는 것일까?’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런 선생님의 생각들이 너무도 좋았어요. 선생님을 볼때면 처음으로 독서와 삶이 연결되는 사람을 본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선생님의 거의 모든 강의를 들었습니다

  소설 읽기, 아도르노, 벤야민,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강의를 하셨더라고요. 저는 온라인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강의를 결제했고,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솔직히 가끔 졸기도 했습니다.

  이공계생인 저에게는 쉽지 않은 내용들이었던지라 들은 만큼 얻은 것이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시간은 제 세계를 더 넓고 다양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렇게 강의를 듣자 저는 선생님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선생님이 평소에는 어떤 생각을 하실지, 선생님이 지인들과 만나서 하는 이야기들은 어떤 것일지가 궁금했습니다. 저도 거기에 함께할 수 있다면 제 세계가 더 풍부해질 것 같았어요. 

  선생님이 술자리를 자주 갖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과 꼭 술자리를 함께 해보고 싶었습니다. 저도 술자리에서는 말이 많아지고 다양한 이야기를 던지는 편인데, 선생님은 어떨지, 그리고 술이 들어간 상태에서의 선생님은 어떤 생각을 하실지 몹시도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블로그를 찾았습니다. 성격이 내성적인 저는 오프라인 강연에서 선생님께 말을 걸기는 무리였어요. 그래서 선생님의 다른 생각을 간접적으로나마 보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은 매달 블로그에 일기 형식으로 짧은 단상들을 올리셨죠. 이런 글을 기억합니다.

 

  “카페의 즐거움 중의 하나. 자꾸만 사람들이 들어와서 누군가를 찾는다는 것. 두리번거리는 눈빛들이 나와도 마주친다는 것. 빠르게 지나치며 사라지는 그 눈빛들.”

  “뼈아팠던 A의 말. 

  그때는 사실 많이 놀랐어요. 선생님이 소설 속의 인물의 아픔에는 너무나 민감한데, 정작 곁에 있는 사람이 아파하는 마음에는 둔감한 것 같았거든요.”

 

  저는 그때야 깨달았습니다. 선생님은 몹시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어쩐지 선생님에게 롤랑 바르트의 향기가 부쩍 난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그와 비슷했습니다. 바르트처럼 선생님 역시 소설을 쓰고 싶어하셨고, 항상 준비하셨지만 쓰지 못하고 있으셨습니다. 아마 그 이유 역시 롤랑 바르트와 비슷할 것 같습니다.

  롤랑 바르트와 마찬가지로 선생님은 부재의 에너지를 알고, 부재가 사랑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설명하셨었습니다. 부재가 만들어내는 고독을 힘들어하시면서도 선생님은 자기 삶에서 항상 부재를 곁에 두고 있으셨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선생님은 강의를 멈추셨고, 블로그 업데이트도 되지 않으면서 저는 선생님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활발하게 활동하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활동을 멈추시자 저는 별 생각 없이, 선생님이 또 공부하기 위해 시간을 갖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다가 잠시 선생님을 잊었습니다.

 

  시간이 꽤 흐르고 다시 찾은 선생님의 블로그에는 선생님의 제자들이 올린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병중 일기를 모아 출판했고, 그 책을 선생님의 묘소 앞에 올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득해졌습니다.

  언젠가는 선생님과 소주 한잔을 하며 삶을 이야기해보고자 했던 저에게 선생님의 이름은 이제 선생님이 그렇게 쫓던 부재를 느끼게 해주는 이름입니다. 부재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더니 선생님은 자신을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사랑하고, 그래서 직접 번역까지 하셨던 선생님은 자신에 대한 애도 일기인 『아침의 피아노』를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그 애도일기에는 ‘슬퍼할 필요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라고 쓰여있더군요. ‘마음이 무겁고 흔들릴 시간이 없다. 남겨진 사랑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다. 그걸 다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라고도 쓰셨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애도할 수 있는 방법은 선생님의 글 밖에 없습니다. 병 중에서도 어떻게든 쓰려고 했던 글들을 통해 선생님을 추억하고, 애도하고 선생님을 떠나보내려 합니다.

 

  선생님은 떠나셨지만, 저는 아직도 선생님의 책들을 빼 들 때면 가만히 읊조려 봅니다.

 

  안녕, 김진영

  안녕,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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