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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욱 Mar 23. 2023

깨를 뿌리는 마음

당신과 나의 처음을 존중합니다.

  커피, 위스키를 좋아하던 내가 차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당연한 순서였을지도 모른다. 향을 즐기는 음식들을 좋아했기에, 다양한 향을 만들어내는 차가 어느 순간 눈에 들어왔다.

  S를 통해 순쌤을 소개받은 것 역시 그래서이다.

 

  차가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것일까, 차분한 사람이 차를 마시게 되는 것일까. 순쌤은 너무나도 차분한 분이었다.

 

  차분한 마음에 동화되어 순쌤이 주는 차를 한 잔씩 마시고 있노라면, 작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의 나는 왜 그리 힘들어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마지막 차 한잔을 마시고 문을 나서면 난 다시 현실에 허덕이겠지만, 이 잠시의 순간을 즐겨본다.

 

  순쌤은 차 이외에도 차와 곁들일 수 있는 음식을 손수 만드신다. 설탕을 줄이면서 차의 맛을 해치지 않는 정갈한 음식들을 하나씩 내어준다. 그 음식을 받아 들 때면 마치 내가 좋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음식을 내기 전 깨소금을 뿌리거나 지단 등의 고명을 올리는 것은 접시를 받는 이에게 ‘당신이 처음'임을 알리는 의미라고 한다.

  주는 이에게도 받는 이에게도 처음임을 상기시키며 서로에 대한 존중, 상대의 마음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공유하는 순간이다. 

  어머니가 첫 김장을 하신 후 내어주시던 새 김치에 잔뜩 뿌려져 있던 마음, 순쌤이 나에게 내어주던 작은 곁들임 음식들이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조심스레 깨와 음식을 함께 집어 드는 마음에는 깨를 뿌려준 상대의 배려가 함께 들어온다.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처음인 순간이 있다. 그것이 만남일 수도 있지만, 이별일 수도 있다.

마치 깨를 뿌리는 마음으로 그 처음의 순간들을 맞이했으면 한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고마움을 표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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