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체에 관대한 유럽인들

by 뿌리와 날개

유럽에 살면 낯선 남자들의 맨 엉덩이나 성기를 볼 일이 생각보다 흔하다.


남자뿐인가, 여자들의 성기도 드물지 않게 본다.


여자들의 맨가슴은 물론이고, 여름이면 브래지어 없이 젖꼭지가 도드라지는 옷을 입은 여자들도 길거리를 활보한다.


수영장에 가면 여자들은 열에 아홉이 비키니 차림이고, 심지어 입으나 마나 할 정도로 엉덩이의 대부분을 노출한 비키니도 흔하게 입는다.


유럽에서 처음 낯선 남자의 페니스를 본 것은 오스트리아의 극장 담벼락에 붙어있던 포스터에서였다.


흑백사진이었던 그 포스터에는 남자 셋이 정면으로 나란히 페니스를 드러내고 서 있었다.


걷다 말고 다시 돌아와 벽마다 붙어있던 포스터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오래도록.








그다음은 남편과 함께 다니던 헬스장에 딸려 있던 남녀 혼용 사우나에서였다.


혼용이라길래 안 들어가겠다고 했더니, 남편은 수건을 걸쳐도 된다고 했다.


여자 샤워실의 불투명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면 남자 샤워실로 가기 전 통로에 작은 사우나 부스가 있었다.


아무 남자나 마음만 먹으면 유리문을 밀고 여자 샤워실로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솔직히 기겁했다.


여기는 유럽이고, 남편마저도 괜찮다고 하니까 알겠다고는 했지만, 항상 불안했다.


언제나 그 혼용 사우나로 가는 문에서 가장 먼 샤워기에서 긴장하며 최대한 빨리 샤워를 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남편과 함께 그 혼용 사우나에 들어가 앉은 날, 함께 있던 어떤 남자도 우리처럼 아랫도리에 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남편과 함께 밖을 보고 앉아 사우나를 즐기고 있는데 곧이어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지나갔다.


배가 엄청나게 나온 50대 중후반 정도의 남자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사우나실을 지나쳐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의 광경이었지만, 다리사이에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달랑거리던 그 페니스의 움직임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내가 잔 적 없는, 나이 든, 남자의 페니스를 눈앞에서 직접 본 첫날이기도 했다.


그 남자가 사우나 부스로 들어오지 않아 줘서 고마웠고, 수건을 두른 채 들어와 준 이 사우나 부스 안 생면부지의 남자에게도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남편과 나는 다시 그 혼용 사우나를 이용했다.


이번에는 안경을 벗고 들어갔다. 남이 벗고 다니는 것을 말릴 수는 없으니 이용하고 싶으면 내가 안 보는 수밖에.


안경을 벗으면 형체 말고는 보이는 게 없으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남편과 사우나 부스 앞에 섰을 때, 다시 한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번에는 올 나체의 아리따운 20대 여성이 유리문을 정면으로 보고 두 다리를 벌린 채 양 무릎에 각각 팔꿈치를 걸치고 앉아서 사우나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안경을 벗어도 그 정도 거리에서는 적나라하게 다 보였다.


참고로,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나 남녀와 노소를 불문하고 어지간해서는 대부분 음모를 모두 제거한다. 그래서 여자든, 남자든 성기가 가리는 것 없이 아주 도드라지게 잘 보인다.


남편과 나는 문을 열고 뚜벅뚜벅 들어가 그녀 뒤에 앉았다.


남자가 들어오는데도 급하게 다리를 오므린다거나 가슴을 가리지 않고 당당했던 그녀.


젊은 여자가 발가벗고 성기를 드러낸 채 눈앞에 앉아 있는데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사우나를 즐긴 남편.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날 그 사우나 안에서 민망함은 오롯이 나 혼자 만의 몫이었다.


그 뒤로 나는 더 이상 그 사우나를 이용하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남편에게 물었었다.


그 여자가 홀딱 벗고 있었는데 정말 아무렇지 않았느냐고.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당최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서양사람이라고 해도 그렇지, 발가벗은 여자가 앞에 있는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걸까.


그럼 벌거벗은 여자를 보고 자기가 뭘 어떻게 했어야 하냐고 남편이 되려 나에게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에 어떻게 대화가 흘러갔는지는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대화를 끝맺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막 유럽 생활을 시작하던 초창기, 오스트리아에서의 남녀의 나체에 대한 충격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날씨 좋은 날 공원을 걷다 보면 발가벗은 채로 벤치에 누워 페니스를 내놓고 잠이 든 백발성성한 노인을 마주치는 일도 있었다.


야외 수영장에 가면 20대 초중반의 젊은 여자들이 탱탱한 젖가슴을 내놓고 정면으로 일광욕을 즐겼다.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누가 와서 만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저러지? 몰래 사진이나 비디오 같은 거 찍힐까 봐 무섭지도 않나?’ 하는 것이었다.


단번에 그녀들의 주변을 스캔했지만, 잔디밭 가득 찬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녀들의 가슴을 뚫어지게 쳐다보거나 휴대폰을 꺼내 사진이나 비디오를 찍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들 외에도 나이와 상관없이 곳곳에 비키니 상의를 푼 채 일광욕을 즐기는 여자들이 보였다.


주변 남자들 그 누구도 그런 그녀들의 가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현장에서 그녀들의 가슴에 유달리 관심을 갖는 것은 나 밖에 없었다.


나 빼고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무엇보다 그녀들 자신이 주변에 전혀 개의치 않고 편안해 보였다.


말로만 듣던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문화 충격.


괜히 쇼크라는 말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야외 수영장에 가면 아무렇지도 않게 바지를 벗고 팬티를 내리고 수영복을 갈아입는 남자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은 훨씬 덜하지만, 그래도 가끔 본다.


인적이 적은 강가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1-2미터 간격으로 피크닉 덱케 (Picknick Decke/유럽에서 돗자리처럼 쓰는 수건)를 깔고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고개를 돌려 주변 풍경을 구경하다가 바로 옆 자리에서 비키니 하의를 갈아입는 여자의 음부에 시선이 꽂혔다.


아무것도 가리는 것 없이 서서는, 두 다리를 번쩍번쩍 들어가며 비키니를 갈아입던 그녀의 바기나와 앉아 있던 나의 눈높이가 꼭 맞았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 미묘한 심경이었다.


생각해보니, 남자의 페니스보다 더 본 적 없는 것이 다른 여자의 바기나였다.


목욕탕이나 수영장에 가도 다른 여자들의 벌어진 다리 사이를 빤히 들여다보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나도 가졌지만 남의 몸에 붙어있어 닮은 듯 다른 은밀한 신체 부위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직접 보는 일은 정말 기이한 경험이었다.








잊고 살만하면 한 번씩 벌어지는 이러한 에피소드들 덕에 나는 점차 이런 문화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나체를 대하는 예절도 함께 익히게 되었다.


살다가 그렇게 나체를 보게 되거든, 자연스럽게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는 거라는 걸.


그들이 정말 볼 줄 몰라서 안 보는 것이 아니었다.


보려면 볼 수도 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기 때문이었다.


유럽에 산 지 10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더 이상 그런 나체 포스터 앞에서 일부러 발길을 멈춘다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부러 남녀 혼용 사우나에 간다거나, 나도 같이 벗는다거나 하는 일은 여전히 없다.


남들이 신경 안 쓴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불편하니까.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www.pixers.de 작가 Oscar Brunet / www.tagblatt.ch (Bild: Foto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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