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금요일, 한 대학 동기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주말인데 밥 먹고 뭐 할 거냐고 물었더니 남자 친구네 집에 간다며 신이 났다.
“남자 친구가 어디 사는데?”
“여기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에.”
“아… 자주 보기 힘들겠네.”
“응. 그래서 항상 금요일에 갔다가 월요일에 돌아와.”
그녀와 나는 겹치는 수업이 많아 자주 보기는 했어도 그때까지 그런 사적인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물론 독일 친구들과 섹스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는 하지만, 그녀들은 기본적으로 동고동락을 함께 한 내 친구들이었다.
게다가 그녀들은 기혼이거나, 나이가 서른을 훌쩍 넘었거나 적어도 아이가 있었다. 섹스에 대한 언급이 부끄럽기보다는 세 끼 챙겨 먹고 배변 활동하듯이 자연스러운 나이라는 뜻이다.
내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때에는 나도 그녀처럼 어렸다. 20대 초반 여자들에게 섹스에 관한 대화란, 곧 우리가 얼마나 친밀한 사이냐, 내가 너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에 대한 우정의 척도와도 같았다.
대학 4년 동안 나 어제 남자 친구네서 잤다던가, 주말에 남자 친구랑 여행 가서 기대된다거나, 어젯밤 섹스가 너무 좋았다거나 하는 말을 하는 여자애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밥 먹다 말고 뜬금없이 내 앞에 앉은 열아홉 살 독일 여자아이가 남자 친구와의 사생활을 털어놓고 있다. 주말을 함께 보내다 오는데 방 두 칸을 나눠 내외한다던가 손만 잡고 자지는 않을 테니.
그때까지 20대 초반 젊은 독일인들과의 교류가 전무했던 나는 이것이, 그녀가 나를 유난히 가깝게 생각하는 것인지 독일 사회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사적인 얘기를 나한테 막 해도 되는 거야?”
“안 될 건 없지, 내가 하고 싶으면. 왜?”
“아니 그냥, 생소해서. 한국에서는 네 또래 여자애들이 남자 친구와 어느 정도까지 깊은 사이인지 그렇게 대놓고 말하고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대학을 다니던 10여 년 전에는 그랬어.”
“독일은 그런 분위기는 아냐. 오히려 나는 좀 첫 경험이 늦은 편이라 그게 조금 신경 쓰이지, 그런 거 말고는 상관없어.”
“늦어?”
“응. 열여덟 살이니까 조금 늦은 감이 있지. 보다시피 내가 엄청 섹시해서 남자들이 따르는 타입은 아니다 보니. 그래도 지금 남자 친구랑 아주 좋아. ”
그 말을 하며 남자 친구 생각이 났는지 그녀는 행복한 듯 활짝 웃었다.
열여덟이면 한국 나이로 열아홉이나 스물이다. 그게 늦다라….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대학에 와서 첫 경험을 한 것이 비교적 늦은 편이라 쑥스럽다는 것이 2018년, 젊은 독일 세대들의 분위기였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는 아주 평범하고 수수하게 생겼다. 그 흔한 화장도 없이 그냥 공부 열심히 하게 생긴 학생.
몇 년 안에 청소년이 될 아들을 혼자 키우는 엄마로서 독일 청소년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그때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독일 사회의 분위기를 물어보고 다녔다.
대부분의 대답으로는, 만 16-18세 사이에 보통 첫 경험을 한다고 했다. 한국으로 치자면 고등학교 1-3학년 사이다.
그보다 빠른 애들은 소위 말해 좀 노는 아이들이거나 유난히 예쁘고, 잘생긴 특출 난 외모의 소유자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남자건 여자건 이 평균 첫 경험 나이에서 늦어질수록 인기가 없다는 반증이라고 한다.
실제로도 그랬다. 매력적인 남녀가 자유롭게 원하는 사람과 섹스를 할 수 있는 나라인만큼, 섹스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강했다.
성이 타부가 아니며, 섹스 여부와 개인의 도덕성 또는 남녀의 차이는 별 관련이 없었다. 그보다는 “섹스 =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공식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내 동기 여자애는 첫 경험이 늦었다는 것에 조금 민망해했던 것 같다.
이것은 구글 검색에서 첫 경험 나이를 독일어로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뜨는 결과이다. 만 16-55세 사이의 사람들에게 첫 경험의 나이를 물어본 결과 만 16.9세라고 대답했다. 한국으로 치면 고1 겨울방학쯤 되겠다.
24퍼센트의 사람들이 만 16세 이전이라고 대답했고, 10퍼센트가 만 20세 이후라고 대답했다. 남자들은 만 17.1세로 만 16.8세인 여자들의 평균에 비해 조금 늦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으며 언제 시행된 것인지 자세한 정보가 나와있지 않아 조금 더 찾아보았다.
이것은 독일 중부에 위치한 란다우 대학의 연구 결과(Forschungsstelle für Sexualwissenschaft und Sexualpädagigik, Universität Landau, Augusz 2001/ Prof.Dr. Norbert Kluge und Dr. Marion Sonnenmoser)중 일부였으며, 영국의 콘돔 브랜드 회사 Durex가 2001년 만 16-55세 1,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를 근거로 하고 있었다.
2001년이면 벌써 20년 전이니 시의성이 매우 떨어진다. 차라리 지금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현재의 독일 분위기가 더 시의성 있다. 오래된 연구 결과이니 현재보다는 당시 상황을 파악하는 자료 정도로 읽어두면 되겠다.
이 보고서에는 1998년과 2001년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2010년의 상황을 예측한 도표도 있었다.
이 표에 따르면 듀렉스 사는 오늘날(2001년 기준)만 14세 청소년 8명 중 1명, 만 17세 청소년의 과반 수 이상이 이미 성경험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2010년에는 만 16세 청소년 중 절반 이상이 이미 성경험이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추세가 점차 줄어들 수도 있고, 역으로 가속화될 수도 있다며 조심스럽게 점치고는 있지만, 2001년 현재 14-17세(1984-87년 생) 청소년의 30-50퍼센트가 이미 성경험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끝으로, 보고서에서는 앞으로도 만 18세 이하의 청소년이 100퍼센트 성경험을 갖는 결과는 아마 없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 이유는, 언제나 성인이 된 뒤에야 첫 경험을 하는 청소년이 있게 마련이며 때로는 평생에 걸쳐 전혀 섹스를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란다.
이 설문에 응한 당시 청소년들이 지금 30대 중후반이 되었으니, 정확히 내가 속한 세대이다.
만 스무 살에 외국인을 통해 성경험을 처음 했던 독일 남자는, 자신이 외모나 성격 면에서 아무 여자도 자고 싶어 하지 않아 할 만큼 성적인 매력이 없는 남자라고 자조했다. 안타깝게도 다른 독일 여자들도 이에 동의했다.
20대 중반을 넘어가도록 섹스를 못 해본 남자는, 자신이 못 해본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라고 했다. 아무 여자 하고나 말고, 정말 완벽한 그녀를 만나 하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다고. 그는, 한국이었다면 귀여워서 꽤나 인기가 있었을 법한 외모였지만, 독일 여자들이 섹시하다고 느낄만한 타입과는 거리가 멀었다.
5년이 넘게 만난 남자 친구와 아직도 잠자리를 하지 않은 독일 여자는, 기독교적인 가치관의 영향도 있고, 무엇보다 섹스에 별 흥미가 없다고 했다. 함께 샤워도 하고, 애무도 하고, 여행도 가지만 삽입 섹스는 아직 하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남자 친구도 그녀의 의견을 존중했으며, 그들은 사이가 좋았다.
여러 나이대의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도 많이 나눠본 결과, 물론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여기 독일에서 섹스란 기본적으로 운전을 하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듯, 아주 어린아이만 아니면 때가 되어서 다들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첫 경험이 14세였다는 남자를 본 적이 있다. 깜짝 놀라 아는 청소년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봤다, 정말이냐고.
학교에서 공부 좀 하는 모범생으로 자란 그들 부부는, 손을 내저으며 각자 열일곱, 열아홉에 처음 경험했다고 했다. 열네 살은 너무 어리다고. 웬만큼 사고 치고 다니는 문제아가 아니면 적어도 열여섯은 넘어서 한다고.
첫 경험이 14세였던 그 남자는, 어딜 가든 어깨에 기타를 매고 다니는 187cm의 미소년 기타리스트였다.
내 남자 친구는 말한다. 네 아들처럼 잘생긴 남자아이라면 여자아이들이 줄을 서기 때문에 평균보다 빠를 확률이 높다고….
그 말을 듣고 보니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빈이가 가끔 반 여자 아이들에게 벌써 러브레터를 받아 온다. 한 번은 우리 집에 놀러 온 여자아이가 Knall verliebt라는 표현을 쓰며 빈이와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Knall은 총소리 폭음, 정신이 나감, 돎, 갑자기, 별안간 등의 뜻이다. 사랑에 빠졌는데 미쳐버릴 정도로 빠졌다는 것이다. 레고에 정신이 팔려있는 빈이 옆에서 그 여자아이는 아주 적극적이었다.
상황을 설명하니 그 집 부모도 이미 알고 있다며 괜찮다고 웃었다. 코로나로 록다운이 없었더라면 빈이는 여섯 살에 첫 연애를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아…. 내가 사는 독일은 이런 곳이다.
*자료 출처 : <Sexualverhalten deutscher Jugendlicher. Teil 1 : Das erste Mal>
독일 청소년들의 성적 태도, 행동. 제1편 : 첫 경험
Forschungsstelle für Sexualwissenschaft und Sexualpädagigik, Universität Landau, Augusz 2001/ Prof.Dr. Norbert Kluge und Dr. Marion Sonnenmoser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www.onmede.de / www.fokus.de
*제 독일어 번역에 오류가 있다면 댓글로 정정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