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현지인 남편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두 가지 이유
“국제”라는 말에 이미 내포되어 있듯, 국제결혼은 태생적으로 거주지 이전의 문제를 안고 있다. 함께 하기 위해서 두 사람 중 적어도 하나, 때로는 두 사람 모두 모국을 떠나야만 하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남편을 따라 독일로 넘어온 것은 국제결혼에 따른 단순한 거주지 이전이 아니라 결국 “결혼이민“이었다는 것을, 나는 남편과 헤어진 뒤에 깨달았다.
살고자 하는 나라에 아무런 기반이 없는데도 남편의 나라라는 이유 만으로 선뜻 해외로 나가려는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 중 하나는 결혼이민도 바로 “이민”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만약 결혼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분명 여러 나라를 꼼꼼히 비교해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나라를 골랐을 것이다. 그 나라의 언어도 배우고, 문화도 미리 공부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나라에서 내가 무엇을 해서 먹고살지, 아니 생계가 불투명하다면 그 나라로의 이민 자체를 다시 고려해 봤을 것이다. 내 생활, 내 가족, 내 친구들, 내 나라에 남겨질 이 모든 것들과의 이별을 감수하고서라도 정말 떠나서 밑바닥부터 시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심사숙고했을 것이다. 모든 걸 차치하고라도 우리는, 애당초 그 남자가 없었더라도 과연 이민 자체를 원했을까?
나를 비롯해 사랑만으로 국제결혼을 감행한 상당수 여성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크게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나를 언제까지나 든든하게 지켜줄 것 같은, 이 매력적인 남자의 뜨거운 사랑이 어마어마한 결정에 달달한 슈가 파우더를 뿌려버리면 언어가 안돼도, 직업이 없어도, 남편 외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땅이라 할 지라도 우리는 그곳에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과감하게 “이민“을 결정하고 만다.
“사랑하는 남편의 도움 좀 받는 것이 어때서, 그게 가족 아닌가?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런 엄청난 결정을 했는데, 그 정도 믿음도 없이 어떻게 결혼을 하나? 남편이 나를 따라 한국에 왔더라면 나 역시 그렇게 남편을 도왔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름 일리가 있음에도 선뜻 마음이 놓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결혼이민의 본질이 막 탄생한 부부의 가족애 확인도, 상호 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도 아닌 결국, 아무도 책임져 줄 수 없는 나 자신의 “생존“이라는 것을 영리한 우리는 직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이민자의 자생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를 나는 크게 두 가지로 본다. 하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랑하는 남편과 우리의 가정을 위해서이다.
독일에서 혼자가 되고 나서 나의 느낌은 꼭 화분에서 뽑힌 나무 같았다. 한국땅에 뿌리내리고 살던 내가 남편에 의해 고운 화분에 옮겨져 독일까지 온 뒤 온실 속에서 편안히 지내다가, 어느 날 남편이 길바닥에 화분을 내동댕이 치자 뿌리를 드러낸 채 바닥에 나뒹굴며 죽어가고 있는 나무. 그 뒤의 과정은 모두 쓰러진 나무의 “새 땅에 뿌리내리기” 프로젝트였다.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간다는 것은 한 나무가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과 같다. 살던 땅에서 뿌리를 뽑아, 낯선 땅에 적응하는 일이 수고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은 당연할진대, 결혼 이민은 내가 묘사한 것처럼 뭔가 조금 다르다. “사랑“이라는 마취제 때문에 뿌리가 뽑혀도 아픈 줄 잘 모르고, “남편”이라는 부드러운 흙에 매료되어 그것이 온실 속 화분인 줄도 모르고 우리는 은근슬쩍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단단한 대지가 아닌 남편에게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 삶은 위태로워진다. “그”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애당초 불가능했을 일들이었기 때문에 그와 나 사이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 필연적으로 내 독일에서의 삶의 근본 자체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나의 삶에서 이탈하는 순간 당신의 화분은 깨지고, 당신은 처참하게 뿌리가 뽑힐 것이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화분 속에서 조마조마하게 사는 삶을 과연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좀 오래 갖고 있었다고 깨지지 않는다 자신할 수 있는 화분이 있을까? 그런 착한 독일 남자와 결혼해 전적으로 의지하고 상당히 오래, 괜찮게 살고 있으면서도 종종 내 글 찾아와 읽고 있는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는가. 오래오래 뿌리내리고 살았어도, 안정적인 듯 보여도 화분은 결국 화분일 뿐이라는 것을.
단단한 땅에 당신 두 발로 당당하게 뿌리를 내리시라. 볕 좋고, 바람 좋은 곳에 이미 짝꿍이 자리 잡고 서 있지 않는가. 화분에 앉아 주는 물 마시지 말고 목마를 때 남편 뿌리 더듬어 당신 뿌리로 물길까지 뻗어가 직접 드시라. 태어나서 살기로 한 이상, 스스로 살아남는 것.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의무이다. 결혼했다고 해서, 남편 때문에 희생했다고 해서 그 삶의 원리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남편과 우리의 가정을 위해서라는 것은 무슨 말일까?
결혼이민도 이민이고, 뿌린 만큼 거두는 것이 인생사 이치이다. 우리는 현지인 남편 덕분에 다른 이민자들과는 다르게 초기 고생이 매우 덜하지만, 그만큼 새로 개척한 터전에 대한 애정과 집착도 덜하다. 터전을 개척한 게 과연 맞는가도 싶다. 다른 이민자들이 맨 땅에 삽질을 하며, 집, 직장, 보험, 비자 어느 것 하나 수월하지 않게 얻어내는 것들을, 우리는 배우자를 통해 별 다른 노력 없이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살던 집에 들어가 살고, 그의 수입을 나눠 쓰고, 그의 보험에 가족 보험으로 얹히고, 그에게 묶여 배우자 비자를 받는 것. 어설픈 독일어로 호기롭게 나서다가 탈이 나 그 뒤처리를 고스란히 남편이 해야만 하고, 때로는 쓸데없는 돈도 깨지다 보니 차라리 입 다물고 있는 편이 낫겠다 싶어 어느새 남편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바보가 되어버린 모습.
우리가 한 명의 이민자로서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채 남편만 믿고 결혼이민을 오면 벌어지는 당연한 광경이다. 아무리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려보려 해도 “준비 없는 이민“이라는 민낯은 가릴 수 없다.
그렇게 해서 행복이 프리패스권으로 주어진다면 좋으련만, 슬프게도 이렇게 쉽게 얻은 것들은 별로 가치가 없다. 앞서 쓴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살면 살수록 그리움은 쌓여가고, 남편과의 문화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는데 내가 지금 가진 것들도 내 노력으로 이룩한 것이 아니다 보니 10년을 넘게 남편과 살 비비고 살아도 독일에 별 애착이 없는 것이다. 남편이 잘해준다 한들 나무꾼에게 잡혀 살며 호시탐탐 날개옷 돌려받을 날만 기다리는 선녀 마냥, 보름달 바라보며 고향 생각에 눈물짓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런 당신의 심리 상태를 같이 사는 남편과 아이들이 모를 리 없다. 바닥에서 살짝 발이 떠서 사는 아내, 엄마를 보는 남편과 아이들은 얼마나 불안할까. 결혼이민자들이 무엇이든 쉽게 얻는 것을 보며 허탈했을지 모를 보통의 이민자들은 부러워할 필요 없다. 맨 땅에 삽질하던 당신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바로 이때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지독한 타향살이를 버틸 힘은 내가 이 땅에서 스스로 이뤄내 손에 쥔 것들이다. 내 독일 가족들, 독일어 실력, 친구들, 이 사회에서 쟁취한 나의 신분과 소속, 내가 이 땅에서 공들여 가꾼 소중한 나의 삶의 터전이라는 인식. 이렇게 독일 땅에 스스로 뿌리내리고 당당하게 살지 않으면 긴긴 타향살이에 시시 때때로 찾아오는 권태를 절대 극복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남편이 안정적인 화분을 제공하더라도 당신이 스스로 대지에 뿌리를 내려야만 하는 두 번째 이유이다.
어떤 연유로 이 나라에 도착을 했든, 이 남자와 이 곳에서 살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 땅에서 진행되는 모든 것은 나의 책임이고 나의 인생이다. 물론 결혼을 했으니 서로 돕고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것이 내가 상대방에게 기대어 얹혀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더구나 집단주의가 발달한 동양 문화에서 공동체 의식을 미덕으로 체득했을 당신이, 결혼했으니 이제 내 일이 네 일이고, 네 일이 내 일이라며 뭉뚱그려 가정을 건사해나가기 시작할 때,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 사회에서 자라 집단 속에서도 개인의 자유와 스스로에 대한 책임의식을 뼛속 깊이 새긴 당신의 파트너는 당신을 점점 당혹스럽게 느낄 것이다.
이쯤 되면 당신도 슬슬 당혹스러울 것이다. 내가 누구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이런 큰 희생을 한 것도 모자라 언어도 안되고, 직장도 구하기 힘든 나더러 당장 너의 삶이니까 당당하게 너 자신의 몫을 해내라니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닌가. 맞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한 결정, 국제결혼의 실상이다.
같은 문화권에서 자라 같은 언어를 쓰며 안정적인 배경에서 경제적으로 독립한 두 사람이 결혼을 해도 맞춰가기 힘든 것을, 우리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자라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과, 그것도 한쪽이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기반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 해내 보겠다고 나섰다. 엄청난 핸디캡을 안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핸디캡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결혼 생활의 메커니즘은 보통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당신이 한 성인으로서 당신의 몫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배우자는 야속하게도 당신을 버거워할 것이다.
그러니 부디 결혼이민도 이민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란다. 더불어 비, 바람 불 때 배우자와 나란히 서서 함께 견디고, 눈발 날리면 함께 맞으시라. 굳이 사서 고생을 해야 하나 싶겠지만, “모름지기 산다는 것이 그런 것“임을 사서 고생이라고 느끼고 있다는 것 자체가 당신의 목숨줄을 지금 배우자가 쥐고 있다는 반증 아니겠나.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당신이라는 나무가 단단히 뿌리내려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햇볕 내리쬘 때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맘껏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노고와 인내에 대한 상대방의 인정, 사랑과 희생에 대한 감사 또한 그때 비로소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