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한독 커플(국제커플)의 실체

by 뿌리와 날개

작년 3월부터 1년 반 가까이 상담을 해오고 있다. 나를 찾는 내담자들은 주로 독일 남성과 결혼했다가 파경을 맞은 한국 여성들이며, 저마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핵심은 비슷비슷하다.



- 이혼이 대부분 독일 남성의 주도로 진행된다는 점

- 예상치 못한 시점에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를 받았다는 점

- 이혼이 너무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여성분들이 놀라 당황한 상태로 급하게 나를 찾게 된다. 상담을 시작하고 나면 가장 긴박한 문제들을 먼저 언급하게 된다.



- 독일인 남편이 비자, 양육권, 재산 박탈과 같은 법률적 문제를 야기시켜 한국인 아내를 곤란에 빠트리는 점

- 한국인 아내들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준의 독일어가 안된다는 점

-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점

- 당장 오갈 곳이 없다는 점

- 상황에 따라 독일인 남편에 의해 특정 공간에 감금 또는 강제 격리 및 강제 이송이 되기도 한다는 점.



이런 문제들을 지나고 나면 그다음에 나타나는 것이 이혼으로 치닫게 된 다양한 문제들이다.



- 애정이 식음

- 폭언, 폭행을 비롯한 정신적, 육체적 학대

- 협박, 위협

- 마약과 도박 등의 중독 및 정신병력

- 외도

- 독일 시댁과의 갈등

- 경제적 문제

- 자녀 양육의 문제

- 문화 차이



상담을 해오면서 느낀 점은, 국제 가정이나 일반 가정이나 파경을 맞는 이유가 결국은 비슷비슷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애정이 식고, 가정 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 이후의 행보에서 보통의 가정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것에 있다.


위에 내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눈 것을 자세히 살펴보자. 처음 나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계기는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다. 괜찮은 줄 알고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고, 내가 생각해 볼 틈이나 노력할 시간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아주 빠르게 몰아붙이는 것에서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나를 찾게 된다.


두 번째 부분에서 언급한 것들이 나를 찾는 한국인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다.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여기에서 국제결혼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잘 살 때는 몰랐던 것, 알 수 없었던 것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인 여성들이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서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발생할 확률이 거의 없는 일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많은 한국 여성들이 충격을 넘어 공포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이 바로 상담이 깊어지며 조금씩 드러나는 문제들이다. 이 부분은 한국의 가정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 부분의 이러한 일반적인 갈등이 왜 상담에서는 나중에서야 언급되는 것일까? 지금까지 내가 찾아낸 이유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두 번째 부분이 바로 우리가 이 독일 땅에서 외국인이기 때문에 갈등 상황을 봉합하거나 처리하는데 앞서 일단 선결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혼이고 나발이고, 일단 내가 독일에 머물 자격(비자)이 있어야 하며, 내 할 말을 내가 할 수 있어야 (언어) 일을 진행시킬 수 있다. 남편이 재산을 몰수하면 가진 돈이 없고, 집에서 내쫓으면 갈 곳이 없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여기서 자식까지 빼앗기거나 강제로 감금 및 격리, 이송(내가 꾐에 빠져 한국으로 보내진 것도 이에 해당) 등을 당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누가 제정신을 차리고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일이 첫 번째 부분에서 언급한 것처럼 독일인 남편에 의해 일방적으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순식간에 (2주-2개월 사이) 벌어지면서 이 모든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정신적, 육체적으로 쇼크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세 번째 부분에서 언급한 문제들은 한두 가지 이상 자동으로 딸려 있다. 그런 짓을 한 독일인 남편이 중독 상태이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시댁과 합심해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식으로 말이다.


고학력, 고소득 또는 상류 계층의 독일인 남편 같은 경우에는 단순 폭력이나 중독, 외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독일 사회 속 인맥과 법률 시스템을 활용해 한국인 여성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철저하게 계산해 판을 짜 나락으로 밀어버린다. 이렇게 무섭게 짜인 판에 떨어진 케이스는 유독 더 힘들다. 지옥이 따로 있는지, 아니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지옥인지 싶은 생각마저 들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상황에 놓인 여성들이 나를 찾아온다. 나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던 처지에서 아무도 없는 것 보다야 누구라도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이 일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 상담을 하면서도 내가 큰 도움이나 속 시원한 해결책을 줄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울 때가 더 많다.


또 다른 이유는, 세 번째 부분과 같은 비교적 평범한 갈등 상황은 한국 여성의 입장에서 특별한 갈등의 요소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없는 가정이 없듯이, 이미 결혼한 이상 이 정도는 안고 가려고 하는 것이다.


남편이 예전처럼 나에게 자상하게 굴지 않는다고, 시댁과 마찰이 조금 있다고, 남편이 내키는 대로 소리 좀 지르고 물건 좀 던진다고, 아이를 돌보는 대신 자기 여가만 즐긴다고, 이직 핑계로 일을 관뒀다고, 가끔 대마초를 피운다고, 술을 좀 많이 마신다고 해서 냅다 이혼을 결심하지는 않는다는 소리다.








문제는, 그런 갈등의 상황들을 그때그때 대처하지 않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다 보면, 독일인 남편의 입장에서는 본인의 문제에 대한 개선의 의지나 필요성도 못 느낄뿐더러 본인이 아는 독일인 여성들과는 다르게 남편에게 맞춰 살려고 노력하는 한국인 아내들이 만만하고 우습게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만만한 여자, 나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여자가 매력적일 리도 없거니와 내가 어떤 문제 행동을 해도 군말 없이 어느 순간부터 자신에게 목숨줄을 맡겨놓고 의존해 사는 여자의 가치가 자꾸만 떨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이것이 한독 커플의 이혼이 최악으로 치닫게 될 경우 원인이 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잘 골라서 결혼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1년 반의 상담을 생각해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결혼 당시에는 독일인 남성도 자상하고 애정 넘치는 사람이었고, 한국인 여성도 독립적이고 당당한 사람이었지만, 외국에서 결혼해 살아가면서 독일인 남성은 점점 더 큰 권력을 갖게 되고 한국인 여성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다가 종국에는 부부간 힘의 균형이 깨지는 경우가 더 많다.


한독 커플의 이혼이 최악으로 치닫게 되는 두 번째 이유는, 내가 그런 케이스만 상담을 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자생할 능력이 된다면, 스스로 이혼을 진행해나갈 것이기 때문에 내 도움이 필요 없다. 나를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케이스라는 뜻이다.


또한 자생할 능력이 되는 여성들이라면 힘의 균형을 완벽하게 잃어버리기 전에 사태를 직감하고, 먼저 손을 쓴다. 언어도 되고, 경제력도 어느 정도 있다 보니 이혼에 대한 두려움은 적고 독일 사회와 독일 남편에 대한 이해도와 판단력은 더 높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조용하게 이혼을 진행하고 조용하게 살아간다. 어차피 정리했는데 굳이 자신의 가정사를 동네방네 떠벌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한독 커플 간 정보 공유의 부재에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위에서 언급했듯이 큰 문제없이 이혼을 한 여성들이 그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을 공유해준다면 좋으련만 그럴 만한 계기나 자리가 없다. 현재 깨지지 않고 살아가는 한독 커플 역시 솔직한 그들의 상태나 정보를 서로 교환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나와 상관도 없는 누군가를 위해서 내 치부를 굳이 드러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남들이 알아봤자 손가락질이나 하고 흉이나 볼 텐데 뭐하러 굳이 나를 너덜너덜하게 만들고 싶을까? 한 꺼풀 벗겨보면 다 똑같다지만, 그래도 다들 잘 사는 것 같아 보이는데 나만 삐그덕거리는 것 같고, 이런 불안한 상태를 남들에게 오픈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혼을 경험하면서 대부분 한인사회, 독일 사회에서 2차적으로 다시 아픔을 겪는다.)


그러다 보니 다들 비슷한 과정과 문제를 겪고, 비슷한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서도 서로 아닌 것처럼 대충 덮고 몰래 각개전투만 펼치며 살다가 결국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해 억지로 오픈이 되거나, 아니면 죽지 못해 사는 처지에 떠밀려 하루하루 숨만 쉬고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18년 이상 행복하게 살아가는 한독 부부를 찾는 공지를 걸었다. 그리고 그에 해당되지 않는 커플을 정확하게 명시했다. 그것은 오래 살아온 한독 커플을 내 마음대로 점수를 매겨 판단하고 평가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나름의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국제 커플의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6년 넘게 블로그를 운영해오며 한독 커플이나 국제 커플이라는 사람들의 연락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내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놓은 만큼 내가 물은 적도 없는 자신의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하루하루 그냥 어쩌지 못해 산다는 사람, 남편도 나도 각자 외도하며 소 닭 보듯 산다는 사람, 비참해도 내가 뭘 어쩔 수 있겠냐는 사람, 그래도 이혼녀로 사느니 남편에게 맞추며 사는 게 낫다는 사람 등등 정말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솔직한 본인들의 결혼생활을 나에게 전해준다. 누가 어떻다더라 하는 실체 없는 카더라 통신은 아예 넣지도 않았다.


그런 사연들을 내가 다 소개한다면 아무도 국제결혼을 안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지금도 듣는다. 하지만 들은 모든 이야기를 떠벌릴 수는 없다. 그냥 내 안에 담아놓고, 이 자원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쓸 수 있을지 고민할 뿐이다.


무엇보다 나는 그들의 삶을 존중한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에게 최선의 선택을 하게 마련이니까. 그러니 혹시 내 공지글을 보고 내가 털어놓은 속 얘기를 이렇게 만천하에 공개했다고 노여워하거나 스스로 찔려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들 자기 얘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사람 한 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나는 누군가의 삶을 판단하려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인생에서 내 몫을 하며 열심히 사는 것만도 충분하며, 내가 가진 능력이 누군가에게 쓰임새가 있을 때 기꺼이 그것을 빌려주기로 결심했을 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언젠가 한독 커플 내지는 국제 커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전파하고 싶기 때문이다. 현재는 내가 여력이 안되기 때문에 이혼을 당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들 위주로 돕고 있다. 그들은 정말 한시가 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며, 그들을 돕기도 사실 벅차다. 그래서 지금은 “깨질 때 깨지더라도 최악의 상황은 막아보자!”는 모토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국제결혼을 한 한국인들이 깨지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국제 커플의 실태를 마주하고, 그들을 상담하는 한편 보통의 커플들에게 위험성을 경고하는 일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 역시, 그들을 보호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참고 살아라, 남들도 다 똑같이 산다, 원래 국제 커플은 한쪽이 기우는 것이니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 그래도 돈은 벌어오지 않느냐, 맞고 사는 여자도 있다더라 하는 식의 조언을 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실제로 다른 한독 가정으로부터 이런 식의 조언을 듣는 경우도 꽤 있다.)


그래서 나는 훌륭한 가정의 본보기를, 그중에서도 위기의 한독 가정이 당면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만한 실질적인 사례로써 다른 훌륭한 한독 가정(정 없다면 훌륭한 국제가정이라도)을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그들에게 묻고 싶다. 어떤 위기를 어떤 식으로 극복했고, 그래서 지금은 어떠한지.


한국인끼리도 독일인끼리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국제 커플이기 때문에 순탄한 가정을 유지하는데 더 불리한 점이 있는 것도, 더 많은 이해와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지지해줄 수 있도록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한독 가정 내지는 국제 가정 안에서 그들이 지금 겪고 있는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모든 국제 가정들이 갖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혼자 고립된 채로 고민하면, 외롭고 아프기만 하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 문제를 오픈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고, 앞서 해결해 나간 사례들을 분석해 도움이 된 방법들을 다시 적용해 갈등을 조금씩 해결해 나가는 것. 그래서 그들이 힘들게 이룬 소중한 가정을 슬기롭게 지켜내는데 일조하는 것.


이것이 내가 한독 가정 및 국제 가정을 위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며, 내 상담과 글쓰기는 그 초석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모든 국제 가정의 행복과 사랑, 평안을 기원하며, 설령 그렇지 않은 가정이 있다면 이제라도 외국인 배우자 쪽에서 무너진 힘의 균형을 되찾고 조금씩 가정을 건강하게 일으켜 세워가는 노력을 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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