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배우자 될 사람과 진지하게 대화해 볼 주제가 몇 가지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 결혼생활을 시작할 국가와 도시이다.
일단 나라에는 크게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겠다. 나의 나라 한국 또는 배우자의 나라 독일.
이 두 나라를 제외한 제3국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나라라던가, 현재 우리가 함께 거주하고 있는 나라 내지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현재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거나 직장, 학업 등으로 묶여있는 나라 등이다.
때로는 서로에게 동일한 페널티를 주자는 논리 하에 두 사람과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생뚱맞은 국가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국제결혼에 있어서 두 사람의 향후 거주지는 왜 중요한 것일까? 그것은 국제결혼생활을 10으로 놓고 본다면 거주지가 그중 8할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남편의 나라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던 입장에서 거주 국가가 부부 두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그 나라에 새로 정착해야 하는 사람은 큰 페널티를 안고 시작한다.
말을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은 물론, 그동안의 학업이나 직업도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할 확률이 높다. 쉽게 말해 이때까지 살며 쌓아온 나의 모든 삶과 커리어가 리셋되고, 그 나라에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 정착 과정이 얼마나 길고 고될지, 그리고 그 모든 노력이 결국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때까지 나는 현지인 배우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해 살아가야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하지만, 국제결혼의 핵심은 "이민"이다.
둘째, 반대로 그 나라에 이미 정착해 있는 사람은 둘의 관계에서 힘 있는 고지를 점령한다.
현지인 배우자 덕에 다른 이민자들에 비해 적은 노력을 들이고도 정착이 가능하기 때문에 보통 이 부분을 간과하기 쉽다.
신혼 초, 아직 부부 사이 힘의 우위를 경험하지 못한 이민자 배우자 쪽에서 상황 파악을 못하고 언제든 내 나라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본인이 갑이라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권력은 언제나 더 많이 줄 수 있는 쪽이 갖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의 나라 또는 상대방에게 익숙한 나라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우리가 경기를 뛰어야 할 운동장이 상대방에게 유리한 쪽으로 확실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뜻이다.
셋째, 그 결혼이 실패로 끝나는 때에는 두 사람에게 그 국가가 곧 전쟁터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실패로 끝나도 현지인 배우자는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계속해서 살아가면 된다.
그러나 이민자인 배우자는 그때부터 현지인 배우자 덕에 누려온 모든 것을 다 반납하고 상대방의 국가에서, 상대방의 언어로, 상대방에게 유리한 법을 혼자서 상대해야 한다.
이혼이 이별과 다르게 시궁창인 이유는, 두 사람의 사적인 감정에 법이 개입되면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도록 법적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두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발겨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가 있다면 거주지 이전의 자유는 철저하게 사라진다. "헤이그 국제 아동탈취 협약"에 의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현지인 배우자에 의해 한 도시에 발이 묶여 한국으로 돌아가지도, 다른 도시로 이사 가지도 못하고 피눈물 흘리는 엄마들이 많다.
이 점을 꼭 알아두기 바란다.
남편의 나라, 독일로 이민을 결정했다면 그다음 문제는 도시의 선택이다.
"순진한 결혼 이민자" 한국인 여성들의 경우, 독일 생활의 경험이나 당장 독일에서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큰 고민 없이 남편의 고향, 또는 현재 사는 곳에 따라와 정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운이 좋아 이 도시가 인프라가 잘 갖춰진 대도시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시골이라면 정말 위험하다.
남편과 한적하게 장보고 밥이나 해 먹으며 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외국인, 특히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주체적인 삶을 다져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입장 바꿔서 한국의 지방 소도시로 이민 온 외국인을 생각해보자.
일단 도시가 작을수록 경제활동의 기회가 적어진다. 또한 인구가 적은 만큼 외국인도 적다 보니 사람들의 태도나 분위기 자체도 외국인에게 배타적이다. 관공서를 가도 나의 케이스는 언제나 전례가 없기 때문에 넘어야 할 자질구레한 산이 많다.
그래서 독일 촌으로 이민을 한 경우, 정착한 지 20년이 다 되어도 그곳에 제대로 어우러지지 못하고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사는 경우가 흔하다. 뭔가를 해보려고 의욕적으로 나서도 지역사회의 규모가 너무나 작다 보니 한계가 있다.
그러니 독일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이 없을수록 일단 큰 도시에 정착하기를 적극 권한다.
남편의 도움을 받으며 촌구석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남편과 잠시 떨어져 지내더라도 대도시에서 스스로 정착을 시작하는 것이 어학원 하나를 다니려 해도, 아르바이트 하나를 해도, 하다못해 친구를 하나 사귈 때에도 훨씬 낫다.
무엇보다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고자 한다면, 외국인에게 필요한 인프라가 잘 갖춰진 대도시는 의심할 여지없이 생존에 유리하다.
반드시 이혼이 아니더라도, 어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남편과 아이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내 몫이 될지 모른다. 언제 어느 때 갑자기 구직을 하게 되더라도 기회가 충분하다.
당당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데에는 말할 것도 없다. 남편에게 의지해 얻어먹고 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3년, 5년, 8년이 지나도 집에만 있으면 일단 본인 스스로부터 크게 위축이 된다.
차라도 있고, 운전이라도 할 줄 알면 행동반경이 넓어져 근처 대도시로 출퇴근이라도 가능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촌으로 이민 가는 것은 정말 신중해야 한다.
참고로 다양한 한국인 이민자들의 말을 들어본 결과, 한국인으로서는 프랑크푸르트가 압도적으로 살만하고, 그 외에는 베를린, 함부르크, 뒤셀도르프, 쾰른, 뮌헨 정도 대도시들이 그나마 괜찮다.
이것은 남편과 내가 살기 좋은 도시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 이민자로서 스스로 생존이 가능하냐, 아니냐의 기준이기 때문에 본인의 능력치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남편의 나라로 결혼이민을 준비하고 있다면, 낭만이 끝난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도 반드시 심사숙고하고 최소한의 대책 정도는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이 바로 정착할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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